바이든의 ‘날카로운 팔꿈치’… 열달째 중국 때리는 44세 천재 보좌관
[송의달의 글로벌 프리즘] 제이크 설리번 美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탐구
입력 2021.10.10 10:10
이달 6일 스위스 취리히공항 인근 호텔에서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양제츠 중국공산당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을 만나 6시간 마라톤 회담 끝에 올 연내 미·중 화상(畫像) 정상회담 개최에 원칙적인 합의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하루 뒤인 7일, 윌리엄 번스 CIA(중앙정보국) 국장은 설리번과의 조율을 거쳐 중국을 표적으로 삼은 ‘차이나 미션 센터(China Mission Center)’ 신설을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 최고의 국가안보 및 외교 전략 책사인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올해 8월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언론 브리핑하는 모습/AP연합뉴스
번스 국장은 “차이나 미션 센터는 21세기에 미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위협, 즉 점점 더 적대적인 중국 정부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 업무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을 달래면서도 압박하는 바이든 정부의 ‘화전(和·戰) 양면 전술’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 랭글리(Langley)에 있는 CIA 본부 모습/조선일보DB
◇“바이든의 공격이 트럼프보다 더 아프다”
지난달에는 바이든 정부의 ‘和’와 ‘戰’이 나흘 간격으로 교차했다. 9월 11일 바이든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90분간에 걸친 전화통화로 중국에 유화(宥和) 제스처를 보였다. 그로부터 4일 후인 15일에는 최첨단 핵전략 잠수함 보유를 매개로 미국·영국·호주 3개국 간의 오커스(AUKUS) 동맹 출범을 선언해 중국을 당황케 했다.
미국의 이러한 대(對)중국 정책에 대해 중국 관영 영자신문 ‘차이나데일리(China Daily)’는 올해 7월18일자 사설에서 “‘바이든의 새 병(甁)에는 트럼프의 오래된 와인만 들어 있다. 모든 국가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바이든의 신(新)트럼프주의가 트럼프 때 보다 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같은 달 13일 미국 블룸버그통신도 “바이든의 ‘날카로운 팔꿈치(Sharp-Elbows)’ 대중 정책은 트럼프 방식의 더많은 고통을 중국에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0여년 동안 시진핑 총서기를 8차례 만난 ‘친중(親中) 바이든’의 ‘반중(反中)’으로의 표변(豹變)이 중국에 더욱 뼈아플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2017년 2월 17일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 캘리포니아 사우스게이트에 있는 국제 연구 러닝 센터를 방문해 '미중 양국의 우의를 발전시키자'는 뜻의 문구를 새진 티셔츠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블룸버그/게티이미지 코리아
리처드 하스(Hass) 미국 외교협회(CFR) 회장은 <포린 어페어즈> 최신호에 ‘아메리카 퍼스트의 시대(The Age of America First)’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트럼프와 바이든 정부간의 최초이자 가장 두드러진 연속성은 중국 정책에 있다. 두 정부의 중국 정책에선 ‘닮음’이 ‘다름’을 압도한다”고 밝혔다.
◇양제츠 보다 27살 젊지만 실력으로 승부
중국을 상대로 한 바이든 정부의 ‘극한 경쟁(extreme competition)’과 ‘가차없는(relentless) 외교’의 설계자 겸 집행자는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 국가안보보좌관이다. 1976년 11월생인 그는 맞상대인 양제츠(楊潔篪·만71세, 1950년 5월생) 보다 27세나 어려 거의 아들 뻘이다. 하지만 올해로 외교관 경력 47년째인 양제츠와의 협상이나 회동에서 힘이 부친다는 보도는 전무(全無)하다.
오히려 바이든 정부 출범 10개월째인 지금, 외교가에서는 설리번의 역할과 실력에 대한 긍정론이 우세하다. 엘리스 래봇(Labott) 미국 아메리칸대 교수는 “제럴드 포드와 조지 부시 대통령때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외교정책에서 전략적 사고의 황금률(黃金律)을 제시한 브렌트 스콧크로프트(Scowcroft)에 비견된다”고 말했다.
미국 백악관의 국가안보보좌관 자리는 대통령과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핵심 참모이다. 사진은 미국의 역대 국가안보보좌관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헨리 키신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콘돌리자 라이스(조지 W. 부시 행정부), 제임스 존스(오바마 행정부)./조선일보DB
◇“설리번은 한 세대 통틀어 최고의 천재”
트럼프 때보다 더 광범위하고 더 집요하게,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구사하는 미국의 새로운 중국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설리번은 누구이며,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걸까?
“설리반은 한 세대(世代)에 한번 나올만한 최고의 천재 책사(策士)이지만, 한 세대에 한번 있을만한 도전(挑戰)에 직면해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가 올 4월 그를 소개하면서 내린 평가이다. 백악관의 최중요 부서인 국가안보회의(NSC·National Security Council)를 총괄하는 설리번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최연소(最年少)의 최고위직 공무원이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42세에 국가안보 보좌관에 발탁된 맥 조지 번디(McGeorge Bundy·1919~1996년) 이후 60년 만에 최연소 국가안보보좌관이다. 만 44세인 설리번은 46세에 닉슨 행정부 국가안보보좌관이 된 ‘외교 천재’ 헨리 키신저(Kissinger)보다 더 젊은 나이에 기용됐다.
이른 나이에 중책(重責) 발탁은 다방면에서 능력을 인정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바이든은 작년 11월 23일, 설리번을 지명하면서 “한 세대를 대표하는 지성(once-in-a-generation intellect)”이라고 극찬했다.
설리번은 2020년 11월23일 국가안보좌관 내정 발표 후 대통령 인수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는 외교와 국가안보 부문에서 리드를 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백악관 인수위 트위터 캡처
◇토론과 논리·문장력이 최대 무기
설리번은 인생의 절반 쯤인 20여년여를 미국 외교·안보 핵심 수뇌부에서 보냈다. 바이든이 상원외교위원장이던 2002~2008년,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총괄국장으로 일한 게 시발점이다. 이어 2008년 대통령 선거 경선에 뛰어든 힐러리 클린턴 캠프에서 외교 연설문과 토론을 책임졌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무장관에 기용된 ‘힐러리 클린턴의 오른팔’이 돼 국무장관 비서실 차장과 정책기획국장(Director of Policy Planning)으로 그림자처럼 수행했다. 2011년 2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설리번은 112개국을 방문했다.
힐러리가 국무장관에서 물러나자, 오바마 대통령은 설리번에게 “바이든 부통령의 국가안보 보좌관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설리번의 전임자는 토니 블링컨(Blinken) 현 미국 국무장관이다. 설리번은 2014년 8월까지 당시 블링컨 백악관 국가안보부(副)보좌관과 호흡을 맞추었다.
2011년 5월 8일 미국 백악관 상황실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등이 NSC 참모들과 함께 위성으로 전송된 동영상을 통해 '빈 라덴의 최후'를 지켜보고 있다./백악관
미국 중서부의 미네소타주에서 성장한 설리번은 자타가 인정하는 엘리트 수재(秀才)이다. 예일대를 전체 3등(전공은 국제정치학)으로 마쳤고 최우등 졸업생에게만 자격이 주어지는 로즈 장학생(Rhodes scholar)이 돼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유학 중이던 2000년, 세계대학생 토론대회(world debating championship)에 출전해 준우승(2위)했다. 지금도 누구보다도 토론을 즐기고, 좋아하며, 잘 한다.
◇“겸손한 성품에 리더십·전략적 사고도”
고등학교 때는 학생회장을 맡아 리더십을 키웠고 예일대 학부와 로스쿨, 영국 유학시절 모두 대학 및 대학원 신문사의 편집장을 맡았다. 그만큼 글쓰기 실력, 즉 문장력과 논리가 발군(拔群)이다. 설리반은 로스쿨과 연방대법원 서기(clerk) 근무후 워싱턴DC 대형 로펌의 100만달러 초임 연봉 근무 제의를 거절하고 고향 미니애폴리스의 작은 로펌을 택했다. 거기서 일하던 중 에이미 클로부셔(Klobuchar) 연방상원의원(미네소타주)의 권유로 보좌관이 되면서 공공(公共) 분야에 투신했다.
1824년 설립된 예일대 로스쿨 모습. 1987년부터 매년 '미국 로스쿨 랭킹'에서 부동의 1위로 미국 법조계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예일대 로스쿨 제공
제이크 설리번과 같이 일해 본 사람들은 대체로 호평한다. “지적(知的)인 열정 뿐 아니라 듣는 방법, 사람들을 모으는 방법, 목표를 향해 전략화하는 방법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힐러리 클린턴), “매우 영리하고 우수하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겸손하다.”(에이미 클로부셔), “지치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세부 사항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는 인물이다.”(윌리엄 번스 CIA 국장)
고위 공직자로서 설리번은 미국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충성, 헌신 의지로 충만해 있다. 그는 올 3월 알래스카에서 양제츠 공산당 정치국원, 왕이(王毅) 외교부장 등 중국 외교 수장(首長)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앞줄 가운데)이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오른쪽),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과 2021년 4월 2일 미국 워싱턴DC 인근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한미일 안보실장 3자회의에서 함께 걸어가며 대화하고 있다. /대한민국 외교부 제공
◇美의 ‘개선’과 ‘회생’ 확신하는 공직자
“자신있는 국가는 자신의 단점들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그것을 개선하려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비밀 소스(secret sauce)이다.”
최근 수년동안 많은 난맥(亂脈)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회생(renewal)력을 확신하는 그는 혼란과 위기를 딛고 스스로 다시 도약하는 게 중국과 구별되는 미국 민주주의의 힘이라고 강조한다. 설리번 외교의 전략적 큰 그림은 전임자들과 두가지 측면에서 크게 다르다. 첫 번째는 미국 중산층을 위한 외교 정책(a foreign policy for the middle class)을 표방한다는 점이다. 그는 작년 11월 국가안보보좌관 내정후 첫 발언에서 새 정부의 외교안보 방향을 이렇게 제시했다.
러스트 벨트(rust belt)에 해당하는 미국 북동부 5대호 주변 주(州)들. 공장설비에 녹이 슬어 쇠락한 지역을 뜻한다. 뉴욕주와 펜실베이니아주를 포함해 웨스트버지니아, 오하이오, 인디애나, 미시간, 일리노이, 아이오와, 위스콘신주 등이다. 설리번이 성장한, 위스콘신주와 바로 인접한 미네소타주도 포함된다./조선일보DB
“국민들이 정부가 자신들을 위해 일하고 있지 않다고 여긴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외교안보 문제와 함께 국내의 불평등과 혼란, 노동자와 정부 사이의 단절 문제를 백악관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
올 4월에는 “외교정책과 국가안보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가정의 삶을 얼마나 좋고 안전하고 편하게 만드는가?’라는 기준으로 측정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인들의 삶과 동떨어진 외교안보 정책을 평범한 중산층과 연결해 밀착관리하겠다는 다짐이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이런 구상에 따라 과거에는 별개로 움직이던 안보와 경제를 바이든 정부는 일체화하고 있다”며 “설리번 보좌관이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글로벌 공급망을 직접 챙기는 게 증거”라고 말했다.
◇중산층 도움되는 외교...‘안보와 경제’ 일체화
실제로 올해 4월 12일 백악관에서 글로벌 기업 CEO들을 불러 개최한 ‘글로벌 화상 반도체 대책회의’의 경우,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기판의 기초 소재인 웨이퍼를 손에 들고 10여분 모두(冒頭)발언을 했을 뿐 나머지 1시간 20분은 설리번 보좌관이 끝까지 주재했다.
대만에 있는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인 TSMC의 공장 내부 모습. TSMC는 올해 4월 백악관 회의 한 달 뒤 120억달러(약 15조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5㎚(나노미터) 공정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TSMC제공
지난해 <포린 폴리시> 기고문에서 설리번이 “미국의 국내 투자 부족이 국가 부채(負債) 보다 국가 안보에 더 큰 위협이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는 국가안보보좌관의 업무 범위를 외교안보와 국방정책으로 제한하지 않고 국내외 산업·경제로 넓히고 있다. 반도체 수급난 대응과 대만 TSMC, 삼성전자의 미국내 대형 반도체 공장 및 LG, SK 등의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도 그의 소관인 것이다.
두 번째는 중동 및 반(反)테러리즘 위주이던 외교 정책의 초점을 현재와 미래의 국가안보 위협, 즉 중국의 패권 부상 억제와 미국 주도 세계 질서 유지로 옮기고 있다는 점이다.
◇4대 對中 원칙의 첫번째는 美 내부 정비
이와 관련해 설리번 보좌관은 올해 1월29일 워싱턴DC 소재 ‘미국평화연구소(USIP)’ 화상 세미나에서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에 임하며 중국을 꺾기위한 미국의 4대 원칙을 천명했다. 그것은 ▲인종 불평등, 경제 불평등 등 미국 내부 문제 해결 및 정비 ▲중국에 대항하는 국제적 동맹 규합 ▲인공지능(AI), 반도체 같은 중국과의 첨단기술 경쟁 ▲중국에 대한 분명하고 일관된 목소리와 행동 등이다.
2018년 3월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오는 양제츠(楊潔篪) 중국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 위원 모습. 1975년 외교관 경력을 시작한 그는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의 맞상대이면서 세계 각국을 상대로 공세적 외교 언사를 펼치는 중국 '전랑 외교(戰狼外交, Wolf Warrior Diplomacy)'를 주도한다./조선일보DB
이런 전략적 접근을 바탕으로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9개월동안 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 장관급 협의체이던 쿼드(Quad)를 국가정상들의 연례 회의체로 격상시켰다. 20년 만의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완전 철수, 오커스(Aukus) 출범, 중국에 대한 25% 고율(高率) 관세 유지도 결단했다.
이와 함께 정권 출범 6개월 만에 군산(軍産)복합체로 의심되는 28개 중국 기업을 미국 개인과 기업의 주식 매매 금지 대상인 ‘블랙리스트’에 지정했다. 이는 트럼프 정부 4년간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기업이 31개인 것과 비교된다. 바이든 정부가 겉으론 부드럽지만 중국을 더 깊숙하고 아프게 때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설리번은 미국 재정비를 목표로 백악관 내부에서 국가경제위원회, 국내정책위원회와 긴밀한 협조에도 주력한다.
대만계 미국인인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2021년 10월 4일 워싱턴DC 소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25% 고율 관세 유지를 골자로 한 대중(對中) 무역 로드맵을 밝히고 있다./CSIS 제공
하지만 제이크 설리번은 ‘쓴 맛’도 봤다. 2016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힐러리 클린턴 진영에서 외교안보 수석보좌관 겸 토론팀장으로 활동했지만 클린턴이 참패한 게 대표적이다. 올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 결정 때도 최악의 시나리오 대비를 약간 소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국제관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명석한 두뇌로 창의적인 외교를 펼치는 설리번이 얼마나 중국을 후려치고 다루느냐가 최고의 승부처”라며 “당장 미·중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는 대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갈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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