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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보다 독한 놈이 왔다…英 지옥에 빠뜨릴 12㎜ 곤충

코로나보다 독한 놈이 왔다…英 지옥에 빠뜨릴 12㎜ 곤충

중앙일보

입력 2021.10.08 20:59

이민정 기자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경기 침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가 부른 기름 대란,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각종 위기의 늪에 빠진 영국이 또 다른 악재에 발목이 잡혔다. 바로 ‘노린재’다.

갈색무늬 노린재는 사과 등 과일을 파고 들어가 즙을 빨아먹고 갈색 흔적을 남긴다. [미국 농업 연구청]

6일(현지시간) BBC 등 현지 언론은 몸길이 12~18㎜에 불과한 이 작은 곤충이 영국 농가를 지옥에 빠트릴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고 보도했다. 최근 남동부 지역 정원을 중심으로 노린재가 속속 모습을 드러내면서다. 이 곤충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로 유명하다. 위기 상황마다 화학물질을 내뿜는데, 그 냄새가 방귀 또는 쓰레기 악취만큼 지독해 ‘방귀벌레’로도 불린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 서식하는 노린재가 영국에 상륙한 건 지난해 여름으로 추정된다. 화물에 실려 미국으로 확산하더니 지구 온난화로 기후가 따뜻해진 틈을 타 점차 유럽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갈색무늬 노린재. [미국 농업연구청]

영국에서 발견된 종은 ‘갈색무늬 노린재(썩덩나무노린재, Halyomorphahalys)’다. 한국에서도 다른 종에 비해 개체 수가 많은 종이다. 지난 3월 자연사박물관과 원예 연구기관인 NIAB EMR 연구팀은 갈색 무늬 노린재의 영국 유입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당시 연구팀은 “노린재는 성장 속도가 빠르고, 생존 기간이 길어 농작물 피해가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그로부터 7개월 뒤인 지난주 왕립원예협회(RHS Garden)가 “위즐리 정원 등 런던 및 잉글랜드 남동부에서 노린재가 발견되고 있다”고 보고하며 우려가 현실이 됐다. 과학자들은 노린재가 어디까지 분포했고 개체수가 어느 정도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영국에 터전을 마련하는 건 “이제 시간 문제”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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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안에 알 낳기도…美 사과산업 연간 428억원 손해 

노린재가 주는 가장 큰 공포는 농작물 피해다. 과일과 채소를 파고들어 과즙을 빨아 먹는 습성 때문이다. 노린재가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갈색 흔적이 남고, 질병에 취약해져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그중에서도 복숭아와 포도, 딸기, 자두 등 육질이 부드러운 작물의 피해가 크다. 열매 안에 알을 낳기도 한다. 결국 성장을 방해해 작물 산업 전반을 파괴할 수도 있다.

노린재 피해를 입은 콩. [경기도농업기술원]

특유의 냄새도 문제다. 섬세한 맛으로 품질을 평가받는 와인 업계가 긴장하는 가장 큰 이유다. 노린재가 들어간 포도를 갈아 와인을 만들면 악취가 발생하기 때문에 노린재의 접근을 무조건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 3월 남동부 켄트주 일대 포도 농가에서 노린재가 발견돼 비상이 걸렸다.

노린재가 노리는 건 농작물만이 아니다. 노린재는 10~11월 성충이 된 뒤 겨울을 나는데, 주로 헛간과 차고지, 집 안 등 따뜻한 곳을 서식지로 삼는다. 독성이 없어 인체에 유해하지는 않지만, 사람을 물거나 목재를 갉아먹어 흔적을 남긴다. 한 번에 15~30개의 알을 무더기로 낳고, 집단생활을 하는 등 높은 번식력과 긴 수명도 위협적이다.

연구팀 “노린재 잡을 천적은 말벌과 거미”

1990년대 중후반 노린재가 유입된 미국은 이미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현재까지 노린재가 확인된 지역은 44개 주에 이른다. 과일은 물론이고 콩·옥수수 등 매해 100여 종의 농작물이 노린재의 공격을 받고 있다. 사과 산업의 경우 매해 평균 2650만 파운드(428억 원)의 경제적 손해를 입고 있다. 노린재가 유럽으로 건너온 건 2004년으로 추정된다. 스위스에서 처음 발견됐고, 이후 프랑스와 이탈리아까지 영역을 넓혔다.

영종도의 한 야산에서 발견한 장수말벌. [중앙포토]

RHS는 현재로서는 노린재의 서식지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는 입장이다. 이후 천적을 풀어 확산을 막을 계획이다. RHS의 식물파트 책임자인 글렌 파월 박사는 “2004년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시아산 무당벌레(할리퀸 레이디버드)의 경우 무당벌레의 알과 유충을 먹는 토착종을 이용해 확산을 막았다”며 “이 사례처럼 노린재의 천적인 새, 거미, 딱정벌레, 말벌을 이용해 확산을 막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