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 다스르기

숨겨진 무의식이 드러나는 ‘말실수’[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숨겨진 무의식이 드러나는 ‘말실수’[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21-09-15 03:00수정 2021-09-15 03:04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말실수는 밀어 넣었던 것이 자신의 의도와 달리 불쑥 튀어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망각은 침묵하려는 노력이 일단 성공한 결과이고, 말실수는 일부 실패한 것입니다.

말실수를 영어로 ‘혀 미끄러짐(slip of the tongue)’이라고 부릅니다. 직설적이지만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언어학 연구자들은 혀가 잘 미끄러져야 언어 기능이 순조롭게 발달한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심리학적으로 살피면 ‘혀 미끄러짐’은 성취가 아닌 실수입니다.

말실수의 사촌 격으로 프로이트도 관심을 가졌던 ‘단어 놀이’가 있습니다. 언어학적으로는 ‘혀 놀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데 말장난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일단 말실수를 하고 나면 “미끄러진 김에 쉬어 가려고” 다른 말로 덮으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말실수를 한 사람은 늘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 여러분이 내 말을 곡해한 것이다”라고. 하지만 당황한 마음에 그런 식으로 계속하다가 더 큰 말실수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면 결국 침묵하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우기는 쪽으로 돌아섭니다. 망각이라는 현상은 전의식에 주로 머뭅니다. 전의식은 얕아서 무의식과 달리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잊었을 때 생각이 날 듯하면서 안 나고, 안 나다가 갑자기 나는 겁니다.

 

무의식의 힘은 의식의 통제권에 속하지 않으므로 제멋대로, 힘차게 작용합니다. 말실수는 ‘덮고 싶은 무의식적 소망’을 ‘터뜨리고 싶은 소망’이 이긴 결과입니다. 무의식 내부에서 한구석은 가리고 싶고 다른 구석은 열어젖히고 싶다가, 갈등과 긴장의 압력이 지나치게 올라가면 결국은 터집니다. 그래서 비밀을 끝내 지키기는 어려운 겁니다.

정신분석 상황이 아니어도 말실수를 꼬리 삼아 살살 잡아당기면 무의식적 소망이라는 몸통에 도달할 수 있지만 분석 상황과 사회적 상황은 방법의 차이가 있습니다. 비교적 협조적인 상황인 분석에서는 피분석자가 이야기하는 추가 연상이 도움이 되고, 사회적 상황에서는 당황해서 실수로 추가되는 말이 단서가 됩니다.

말실수는 분석에서 말하는 ‘착오 행위’의 일종인데 착오 행위에는 망각이 포함됩니다. 그 외에도 글쓰기 잘못, 물건 잘못 챙기기, 장소나 시간의 착각, 서투른 짓 등도 있습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에 후유증이 큰 것에는 말실수도 있지만 글 실수도 있어서 두 가지가 합쳐진다면 책임을 져야 할 일은 일파만파(一波萬波) 퍼져 나갑니다. 그러니 공개된 장소에서 방명록을 쓸 때도 조심하길 권합니다. 이제는 어떤 착오 행위이든지간에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다고 말해도 뚜렷한 동기나 숨은 의도가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의심합니다.

 

실수가 그냥 단순한 실수일까요? 정신분석으로 읽으면 실수는 실수이면서 동시에 실수가 아닙니다. 숨겨진 무의식적 동기가 드러난 행위입니다. 혀가 미끄러져서 엉겁결에 입 밖에 뱉은 말이어도 뒤에 다 의도가 있다는 말입니다. 말이나 글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조심해서 말하고 신중하게 써야 합니다.

끝으로, 말실수와 망각의 해석법은? 그 사람이 살아온 길에 쌓여 있는 관련 자료와 비교해서 차분하게 검토하면 객관적 해석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