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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이건 해도 너무한다"…금융권 발칵 뒤집은 靑 '낙하산 인사'

"이건 해도 너무한다"…금융권 발칵 뒤집은 靑 '낙하산 인사'

이호기 기자 · 정소람 기자

입력 2021.09.02 17:30 수정 2021.09.02 19:15 지면 A1

20조 뉴딜펀드 운용책임자
'무자격' 靑 행정관 꽂았다

한국성장금융 투자운용본부장 '낙하산' 논란

문재인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한국판 뉴딜펀드’ 사업을 총괄하는 한국성장금융의 투자운용본부장에 관련 경력 및 자격증이 없는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 선임돼 낙하산 논란이 일고 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성장금융은 지난 1일 주주서한을 발송해 오는 16일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황현선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신임 투자운용2본부장에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한국성장금융은 이사회를 열어 황 전 행정관의 본부장 선임 안건을 통과시켰다.
황 전 행정관은 더불어민주당 당직자 출신으로 기획조정국장 등을 거쳐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전략기획팀장을 지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으로 옮겼고 조국 전 민정수석과 함께 약 2년간 호흡을 맞췄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3월 국내 은행들이 출자해 설립된 구조조정 전문기업인 연합자산관리(유암코) 상임감사로 임명됐다. 당시에도 구조조정 관련 경력이 전혀 없어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문제는 황 전 행정관이 낙점된 한국성장금융 투자운용2본부장은 5년간 20조원 규모로 조성될 뉴딜펀드의 운용을 총괄하는 자리라는 점이다. 그는 관련 경력은커녕 펀드매니저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조차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현행법상 10억원짜리 소형 펀드 하나를 맡더라도 투자자산운용사 시험에 합격하고 금융투자협회에 등록해야 하는데 20조원에 달하는 뉴딜펀드의 운용 책임자에 무자격자를 앉히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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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한국판 뉴딜펀드’(20조원 규모)의 운용을 총괄하는 한국성장금융 투자운용2본부장에 펀드매니저 자격증도 없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 출신 인사가 선임되자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국성장금융의 주요 주주인 산업은행과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조차 ‘낙하산 인사’에 대해 사전에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형 뉴딜펀드가 문재인 대통령의 역점 추진 사업인 만큼 철저하게 현장 전문가 위주 인사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차기 정권에서 흐지부지될 가능성만 높일 것이란 지적이다.

文대통령 역점 사업인데…

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서 발표한 뉴딜금융 지원방안에 따르면 2025년까지 정부 예산(3조원)과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4조원)을 합쳐 총 7조원의 모펀드를 조성하고 여기에다 민간자금 13조원을 매칭해 총 20조원의 자펀드가 결성된다. 이 펀드는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로 나뉘어 정보통신기술(ICT), 신재생에너지 등 분야에 집중 투자된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의 출자로 2016년 설립돼 그동안 성장사다리펀드 등을 조성, 운용해온 한국성장금융이 이 같은 뉴딜펀드의 운용 총괄 책임을 맡았다. 한국성장금융은 이를 위해 최근 기존 투자운용본부에서 뉴딜펀드 운용 기능을 떼어내 투자운용2본부를 신설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하기도 했다. 기존 투자운용본부를 이끌었던 서종군 전무는 1본부장으로 이동하고 새롭게 만들어진 2본부장에 황현선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이 선임된 것이다.
황 전 행정관은 조국 전 민정수석과 함께 2019년 3월까지 일한 뒤 연합자산관리(유암코) 상임감사로 옮겨 현재까지 재직해 왔다. 2년 임기를 약 반년 남겨뒀지만 한국성장금융 이직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성장금융 내부에서조차 이번 인사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관계자는 “백 번 양보해 유암코 감사는 직접적으로 사업을 수행하는 자리는 아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낙하산으로 오더라도 큰 영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그러나 투자운용본부장은 뉴딜펀드 운용을 직접적으로 책임지는 자리인데 관련 경력은 물론 자격증도 없는 인사가 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권이 바뀌면 가뜩이나 사업의 지속 가능성 여부가 문제가 될 텐데 이런 낙하산 인사로 제대로 된 성과가 날 수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한국성장금융 측은 “청와대나 정부와의 소통도 운용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라며 “본부장이 직접 운용에 관여하기보다는 운용 방향이나 철학, 위탁 운용사 관리 등 업무에 집중할 계획인 만큼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금융위도 몰랐던 밀실 인사

이번 인사에 대해 주무부처인 금융위조차 사전에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번 인사와 관련해 한국성장금융 측과 어떠한 사전 협의도 없었다”며 “인선 배경 등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성장금융의 대주주인 산업은행 측도 “주주서한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인사에 개입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인사를 주도한 성기홍 한국성장금융 대표와 청와대 고위직을 지냈던 한 인사의 친분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성 대표 본인도 친정인 한국벤처투자에서 한국성장금융으로 올 때 이 같은 인연이 바탕이 됐다는 해석도 적지 않았다”며 “정권 말로 가면서 금융권 전반에 이 같은 낙하산 보은 인사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호기/정소람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