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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평론

다음 대통령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아니다

다음 대통령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아니다

 

성한용,성한용

 

2021.08.15. 13:45

 

© 제공: 한겨레 김성식 전 의원 블로그신문과 방송, 인터넷에는 내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 얘기가 넘쳐납니다. 유튜브, 페이스북, 디지털 대화방에도 마찬가지입니다. 8월 14일 치 한겨레신문 정치면 두 기사의 제목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경준위 ‘후보 토론회’ 놓고 국민의힘 자중지란

경준위 “발표회로 바꾸면 또 분란”

‘후보 토론회 유지’ 결정했지만

조수진·김재원 반발···지도부 내분

윤석열 쪽 “조율 안 되면 불참”

지지 의원 16명, 이준석 비판 성명

홍준표, 이 대표 옹호하며 윤 견제

원희룡은 “이 대표 독선적 당 운영”

이재명 “모든 경기도민 재난지원금 지급”

여권 대선주자들 “매표정치” “반역” 반발

이 지사 “도 90%·시군 10% 부담”

© 제공: 한겨레각 정당에서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합니다. 당내 경선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대선 국면이 펼쳐질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치 뉴스에서 대통령 선거는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정치 뉴스가 대통령 선거에 집중되는 현상은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사실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여당과 야당 내부에서는 각각 ‘다음 대통령’ 자리를 놓고 물밑 싸움을 치열하게 벌였습니다. 임기 5년 대통령 한 사람 뽑아 놓고 그 직후부터 5년 내내 ‘다음 대통령’을 놓고 싸우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정치의 현실입니다.

1992년 김영삼 대통령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어느 기자가 김영삼 당선자에게 “후계자가 누구냐”고 물어서 빈축을 산 일도 있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다음 대통령’에 관심이 많은 것일까요?

첫째,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나만 다치지 않는다면 싸움 구경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권력 투쟁을 다룬 대하소설이나 무협지나 디지털 게임이 재미있는 이유입니다.

둘째, 기복 신앙입니다. 우리는 ‘재림 예수’나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을 기다립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절대자가 홀연히 나타나 우리의 고단한 삶을 구원해 줄지도 모른다고 믿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미국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미국의 대통령제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권력을 의회와 절반씩 나눠 갖습니다. 책임도 절반만 집니다. 바이든 행정부라고 하지, 바이든 정부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권력을 절반 밖에 갖고 있지 않지만, 책임은 무한대로 져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라는 말은 있어도 문재인 행정부라는 말은 없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비판하는 이유입니다.

스웨덴 출신 혼성 그룹 아바가 1980년 발표한 ‘더 위너 테익스잇 올’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묘사한 가사인데, 우리 말로 번역하면 ‘승자독식’이겠지요. 우리나라 대통령제의 가장 큰 특징이 아마도 승자독식일 것입니다.

승자독식 시스템은 여당과 야당의 극한 대치와 무한 투쟁으로 이어집니다.

야당은 정권을 무너뜨려야 집권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정권을 공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는 지금 대통령이 잘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고, 야당이 다음 대통령을 차지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선동합니다. 물론 거짓말입니다.

여당의 차기 대선주자들은 지금 대통령과 적절한 밀고 당기기를 통해 여당의 대선후보 자리를 차지하려고 합니다. 혹시라도 정권이 야당으로 넘어가면 곧바로 지옥이 도래할 것처럼 선동합니다. 물론 거짓말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정말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갖고 있을까요? 이재명 대통령이나 이낙연 대통령이나 윤석열 대통령이나 홍준표 대통령 시대가 오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해결하고, 청년 일자리 문제도 해결하고, 저출산 고령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다음 대통령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은 거짓 예언입니다. 이런 거짓 예언에 우리가 언제까지 휘둘려야 할까요?

박근혜 정부의 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따로 있는 것일까요? 여당의 정책과 야당의 정책은 얼마나 다른 것일까요? 2017년 대통령 선거의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후보 공약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문재인 후보의 공약과 비슷한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정책 가운데 대부분은 그냥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입니다. 홍준표 대통령, 안철수 대통령, 유승민 대통령, 심상정 대통령이었어도 같은 정책을 내놓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정권교체만 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거나, 또는 정권이 넘어가면 대한민국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일까요?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김성식, 김관영, 채이배 전 의원이 공공정책전략연구소를 출범시킨 것은 지난 2월이었습니다. 세 사람은 20대 국회에서 바른미래당 소속이었습니다. 정책에 무척 밝은 정치인들이었습니다. ‘제3 지대’를 고집하다가 21대 국회 진입에는 실패했습니다.

최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들을 영입하려 한다는 뉴스가 나오자, 세 사람이 매우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는 바람에 화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공공정책전략연구소가 8월 11일 '어젠다 K 2022'라는 제목의 방대한 정책 자료집을 발간했습니다. 내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정당과 대선주자들에게 제안하는 미래 구상 정책 보고서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전문가 세미나와 토론회를 열어 내용을 촘촘하게 채웠습니다. 국회의원 300명과 여야 대선주자들에게 우편으로 발송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정책자료집 https://kipps365.com/?page_id=5061

정책 자료집 총론의 제목은

입니다. ‘승자독식·진영대립 정치 대신 정책 연정의 시대 열어야’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승자독식 권력구조의 한계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중요한 부분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제공: 한겨레

나라 경제의 지표는 좋다는데, 수출은 다시 늘고 있다는데, 국민의 삶의 지표, 인간 존엄성의 지표는 왜 이리 우울한가. 이것이 성찰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고용의 양과 질만 나빠진 것이 아니다. 노인 자살률, 출산율 모두 오이시디(OECD) 최악이다. 행복지수는 오이시디(OECD) 35위이고 갈등지수는 29위이며, 성 격차(gender gap) 지수는 세계 102위다.(세계경제포럼, 2021)

거리에서는 독재 타도를 외쳐 대통령 직선제도 쟁취했다. 대통령은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았으나, 민주공화국다운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을 가꾸지 못했다. 생애의 위험을 짊어지고 무한 경쟁 속에 아등바등 각자도생해야 했고, 함께 사는 상생의 공적(公的) 제도는 제대로 축적하지 못했다. 민주화는 했지만 국정은 민주적이지 않았다. 전쟁 같은 대통령 선거에서 한바탕 진영 대결을 치르고 나면 우리의 시민권은 다시 장롱 속으로 들어갔다.

한마디로 우리는 선거 민주주의는 획득했지만, 민주공화국다운 공동체를 제대로 가꾸지 못했다. 독재권력이 물러간 자리는 시장을 지배하는 경제권력, 강한 교섭력을 바탕으로 기득권화된 노조, 그리고 전가(轉嫁, 떠넘기기) 구조로 채워졌다. 시장에서 갑질할 수 있는 힘, 협상 판을 깨고 공장을 멈출 수 있는 힘, 철밥통의 힘이 우선이었다. 불공정과 불평등이 커졌고, 세대 간 가치 충돌로 번졌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위험은 사회화했다. 구의 전철역과 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젊은이들이 위험 작업을 떠맡다가 계속 죽어가는 현실이 단적으로 말해준다.

역대 정권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 신기루를 띄웠다. 대부분의 정권은 단기 경제 수치에 매여 땜질 처방을 반복하며 폭탄 돌리기를 해왔다. 융합적인 해법이나 굵직한 전환의 돌파구는 승자독식 이분법 정치와 청와대 비서 중심의 국정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고난도 과제였다.

정권교체도 여러 번 했는데, 도돌이표가 반복되고 있다. 이제 사람과 편을 따지는 수준을 넘어서서, 국정하는 방식, 정치하는 틀, 경제사회 정책의 시야를 바꾸어야 할 때다. 이번에도 깨닫고 행하지 못하면 미래는 밝지 않다.

지난 10여년, 대한민국은 과거에 맴돌았다. ‘국정농단 대 가치농단’, ‘퇴행 대 무능’의 프레임 위에 진영대립이 격화되었다. 전환의 골든타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이분법이 아닌 융합의 해법이 필수적이다. 우리가 제안하는 차기 대선 정책 의제 ‘어젠더 K 2022'는 진영논리를 뛰어넘는 융합 해법을 추구한다. 청산과 배제의 시각 대신에 새로운 균형과 패키지딜의 접근법이다.

혁신-고용-복지의 패키지딜은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삶의 질을 개선하며, 불공정과 불평등을 완화하는 선순환 기획이다. 이러한 융합 해법은 연합정치를 통해서 풀어갈 수 있다. 정치권이 승자독식의 정치와 독주의 국정을 그만해야 하는 이유이다.

‘대권의 시대’에서 ‘시민권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국정과 정치의 혁신이 바로 ‘민주공화국 2.0’의 출발점이다. 역대 대통령 스스로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피해자였고, 국민은 대권에 시민권을 의탁해보았지만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시민권을 꾸준히 확장하고, 민주적 시스템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상생의 공적 제도를 잘 가꾸는 것, 이것이 민주공화국 2.0으로 가는 길이다. 시민적 권리뿐만 아니라 시민적 책무도 동반되는 길이다.

국정의 틀부터 민주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청와대 비서 중심 국정에서 책임 총리와 책임 내각 중심의 국정, 국회와 정당의 자기 개혁과 적극적 역할, 정책 연합 혹은 연립 내각 등 연합정치의 시도, 실질적인 지방분권 등이 요체가 된다. 이것이 현행 헌법 정신이다. 나아가 대선 공약으로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내걸고, 차기 임기 중에 여야 합의로 권력구조 개헌을 하는 것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국회 의석에 국민의 대표성과 득표에 따른 비례성이 제대로 반영되도록 선거제도를 진화시키는 것도 시민권 시대를 여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래야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약자들에까지, 상식의 국민들 마음까지, 정치의 감수성이 닿을 수 있다.

그간 40%대의 득표율로 당선된 대통령들이 100% 독식과 독주의 국정을 밀어붙였다. 헌법에 한 줄도 없는 청와대 비서실의 참모들,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도 않고 청문회도 거치지 않은 비서들이 국정을 좌우했다. 국회와 정당과 내각은 동원 기구로 전락했다. 문고리 권력, 비선 실세, 순혈주의가 작동했다. 87년 직선제 쟁취 이후에 대통령 선거는 무려 7번, 국회의원 선거는 매번 40% 안팎의 물갈이를 하며 9번이나 치렀다. ‘우리 편 이겨라. 권력을 틀어쥐고 시원하게 밀어붙이자’, 수없이 해봤지만 왜 실패의 반복인지 성찰해야 한다.

차기 대선 주자들에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얼마짜리 현금 프로그램을 내놓을 것인가가 아니다. 승자독식할 것인가, 국정과 정치의 틀을 민주적으로 바꿀 것인가, 바로 이것이어야 한다. 대통령의 권한을 어떻게 분권화하고 견제와 균형과 책임의 원리는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널리 인재를 구할 것인가, 책임 총리제와 정책 기반의 연합정치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국민에게 답해야 한다. 독주와 진영 대결을 반복하겠다면 기대할 것이 없다. 대전환기 국정 과제의 난이도는 너무나 높아졌고, 한 정당, 한 정권이 해결할 수도 없다.

어떻습니까? 공공정책전략연구소에서 만든 자료집의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사이트로 들어가서 직접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정치, 행정, 재정, 외교, 경제, 노동, 복지, 교육, 에너지, 에이아이(AI), 젠더, 청년, 농업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글을 읽기가 편합니다. 정치 분야는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이 썼습니다. 내용이 탁월합니다.

최근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정책 공약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에 너무 치우쳐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특히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만 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그건 곤란합니다. 지금 국회는 더불어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대통령이 당선되더라도 더불어민주당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은 연합정치 방안을 반드시 내놓아야 합니다.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더불어민주당의 협력을 어떻게 구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합니다.

여당의 대선주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이 돼도 국회에서 모든 법안을 날치기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대통령 시키는 대로 법안을 처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설사 날치기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고 해도 야당의 무한 투쟁에 직면하게 되면 법률의 효과가 크게 떨어지게 됩니다.

공공정책전략연구소의 제안처럼 대통령이나 여당의 정책이 아니라 여야가 합의한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이어야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제부터 대선주자들이 내놓는 공약 중에서 권력구조 개헌과 선거법 관련 공약을 주의 깊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연합정치를 어떻게 실천하겠다는 것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연합정치 방안이 빠진 정책 공약은 허풍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