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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평론

[류근일 칼럼] 결전 앞두고 ‘콩가루 집안’ 만든 이준석 대표

[류근일 칼럼] 결전 앞두고 ‘콩가루 집안’ 만든 이준석 대표

李대표가 싸워야 할 상대는 대한민국 부정하는 세력
北 한마디에 안보 눈감고 민주주의 파괴하는 이들이다
野 후보들 위해 봉사해야지, 개인 야망 앞세울 때 아니다

류근일 언론인

입력 2021.08.16 03:20

 

대통령 선거판이 이상야릇하게 돌아가고 있다. 2022 대선은 무엇과 무엇이 싸우는 판인가? 대한민국 73년의 정당성을 긍정하는 계열(A)과 그것을 부정하는 계열(B) 사이의 내전이다. 주사파 민족·민중 혁명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A를 아군, B를 적군으로 쳐야 옳을 것이다.

이 상식을 저버리고 만약 A에 속했다면서도 같은 A 소속을 적대하는 사례가 있다면, 더군다나 대선 7개월을 앞둔 이 시점에는 그거야말로 황당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최근 그런 역설적 당착(撞着)을 드러냈다. 그는 야당이라면서도 김정은·김여정·주사파·문재인·대깨문을 공격하기보단, 윤석열·안철수를 더 치고 깠다. 왜 그랬나? 이 질문에 국민의힘 C 의원은 전화로 이렇게 말했다.

“이준석을 유승민 아바타라고들 하는데, 그렇진 않다. 그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저런다. 그가 말을 부적절하게 하는 점은 있다. 그러나 그가 대표 된 후 젊은 층 모바일 입당이 급증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3월 제작된 영상에서 이준석은 “윤석열 대통령 되면 난 지구를 뜰 것. 유승민 대통령 만들어야”라고 했다. 이준석 현상과 유승민 대통령 만들기 사이에 ‘선택적 친화력’이 있음을 유추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 때문인지, 정권 교체를 위해 다양한 A 계열이 막판 단일 후보 중심으로 하나가 돼야 한다고 믿는 쪽 여론이, 이준석에게 썩 좋지 않게 돌아간 게 사실이다. 단일화 대의를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그가 잘못 짚었다는 것이다. 야당 대표로서 그는 자신의 야망을 앞세울 때가 아니다. 자기 당 후보들을 위한 봉사에 전념할 때다. 그래서 그는 윤석열·안철수를 물어뜯기보단, 대한민국의 주적을 향해 날을 세워야 했다.

문재인 캠프 노동특보를 지낸 ‘충북동지회 간첩단’ 같은 게 대한민국의 주적이다. 간첩들은 스텔스기 도입 반대, 미군 철수, 보수 타도 등 모든 현안을 추동했다. 김여정이 꽥 하니까 여권 의원 72명이 “한·미 훈련 연기요~~”라고 복창했다. 안보의 주적들인 셈이다. 드루킹·김경수의 선거 여론 조작, 인천 연수을 재검표로 발견된 가짜 투표용지, 울산시장 선거 개입 피소 등은 민주주의의 주적이다. 선거 철 남·북 ‘사기 평화 쇼’는 공명 선거의 주적, 삼복더위에 원전(原電)을 깨는 건 생명의 주적이다.

 

이준석이 야당 대표라면 그가 목숨 걸고 싸워야 할 상대는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나 그가 우군 아닌 적군을 향해 칼을 빼 들었다는 소리는 들은 적 없다. 김영삼·김대중이 언제 야당을 깨고 야당 지도자 됐나? 그들은 2중대 야당 민한당을 깨고, 선명 야당 신한당을 만들었을 뿐이다.

이준석 현상이 초래한 난맥상을 김어준은 ‘내가 바라던 콩가루 집안’이라고 반겼다. 이준석 현상은 정권 연장을 바라는 기준에선 “잘했다” 평을 들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정권 교체를 바라는 기준에선 이준석 현상은 “잘못했다” 평을 들어야 맞을 것이다. 이 잘못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순리적 방법과 비상한 방법이 있다.

순리적 방법은 이준석 스스로 사태의 심각성을 깨쳐 내부 공격 아닌 야권 대동단결과 ‘민중주의 파시즘’ 종식 투쟁에 나서는 것이다. 이럴 때 예비 후보들은 기꺼이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 순리가 정 안 먹힐 때는 비상한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다. 이준석 눈금에 맞추지 말고 더 보편타당, 공명정대, 공평무사한 눈금에 맞추는 것이다. 그리고 이준석이 뭐라 하든, 일일이 대적하지 말고 오직 정권 교체 여망만 바라보고 달리는 것이다.

세상이 편하려면 순리적 방법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이 그 가능성을 허물 수도 있다. 이준석에게 힘을 실어주어 그가 윤석열과 맞짱 뜨도록 부추기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청와대가 이준석을 여·야·정 3자 협의에 초대하는 건 바로 그 효과를 노린 것 아닐까? 이준석이 정권의 반간계(反間計)에 맞출 경우, 그는 ‘제 식구를 주적 취급하고 외부와는 샴페인 터뜨리는’ 격이다. 제 집안은 콩가루 만들고 ‘늑대와는 춤을’ 추는 격이다. 순서가 거꾸로 됐다.

정권 교체 국민 연합이냐, 정권 연장 통일 전선이냐 하는 숨 가쁜 결전을 앞두고, 전자(前者)를 선도해야 할 제1 야당 대표가 ‘딴생각’에 더 바쁜 셈이다. 이럴 땐 당내 걱정하는 마음들이 일어나 외쳐야 한다. 더는 그 꼴 볼 수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