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평론

"내부 총질이 더 무섭다"…내편 네편 다 죽인 대선 내전사

"내부 총질이 더 무섭다"…내편 네편 다 죽인 대선 내전사

[중앙일보] 입력 2021.08.14 05:00

 

기자

현일훈 기자

“정치를 해보니 내부 총질이 더 무섭다. 진짜 내 편 네 편 다 죽더라.”
 
13일 통화한 한 정치 원로의 말이다. 차기 대선 경선 일정과 맞물려 점점 거칠어지는 여야 각 당 상황을 언급하면서 한 말이었다. “대판 싸우는 게 흥행에도 도움이 된다”(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는 말도 있지만, 사생결단식 당내 경선은 ‘내전(內戰)’에 비유될 만큼 후유증이 크다. 이 원로가 거론한 내전 사례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이명박 vs 박근혜)이었다. 당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한 장면.
 

2013년 2월 25일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거행된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자리를 함께한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2007년 7월 30일 인천 도원체육관 한나라당 4차 합동연설회장. ‘경제 대통령 이명박’이란 슬로건이 적힌 버스가 도착하자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이 “불법 선거운동”이라고 막아 세워 행사장 주변이 아수라장이 됐다. 이명박 후보는 연설에서 “올 초부터 늘 이명박은 한 방에 간다고 했지만, 헛방이었다”고 했고, 박근혜 후보는 “부패한 지도자가 경제를 실제를 살린 적이 있느냐”고 맞붙었다.
 
당시 경선 과정에서 “도곡동 땅은 이명박 땅, BBK 주가 조작 해명하라라는 박근혜 캠프의 공세에 이 후보는 “박근혜는 정수장학회를 강탈했다. 최태민 일가의 허수아비”라고 반격했다. 결국 이 후보가 승리하긴 했지만,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여당 내 야당’이었던 친박계와의 갈등은 큰 정치적 부담이 됐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그때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의 폭로전이 결국 10여년 뒤 두 사람(이명박·박근혜)을 법정에 세우고 보수 정당을 뿌리까지 뒤흔든 기폭제가 됐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2017년 3월 27일 광주여대에서 열린 호남 경선에서 60.2%의 지지로 승리했다. 왼쪽부터 최성·문재인·이재명·안희정 후보. 중앙포토

 
지난달 민주당에서 타 후보들의 집중 견제를 받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권투하는데 발로 차나”라며 불만을 표시하자, 박용진 의원은 “2017년 대선 경선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이재명 후보는 거의 UFC 수준으로 공격했지 않나. 지금 이재명 후보를 공격하는 건 잽 정도”라고 반박한 적이 있다. 실제로 2017년 민주당 경선도 분위기는 간단치 않았다. 다음은 그해 3월 17일 민주당 대선주자 합동 토론회의 한 장면.
 
이재명 후보=“난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에 정치생명을 걸었다. 그런데 문 후보는 거국중립내각, 2선 후퇴, 명예로운 퇴진을 얘기했다가 탄핵을 얘기했다.”
문재인 후보=“정치는 흐르는 것이다. 촛불민심을 따라가는 게 정치가 할 도리다.”
 
당시 인터넷 정치 커뮤니티에서도 양측 지지자들이 “저쪽 후보가 되면 본선에서 질 것”이라며 날 선 글을 올려댔다. 이와 관련, 당시 문재인 캠프의 핵심이었던 김경수(징역 2년형으로 수감 중) 전 경남지사가 연루된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2016년 11월~2018년 4월)때도 드루킹 일당이 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공격한 사실이 수사 결과 드러났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선출 전남 선거인단대회가 열린 순천 팔마체육관에서 2002년 4월 14일 노무현,이인제후보가 정동영후보의 연설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선 이인제·노무현 후보의 충돌이 거칠었다. 국민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노 후보의 기세를 꺾기 위해 이 후보가 노 후보 장인의 좌익 활동 의혹까지 들고 나왔지만, 노 후보가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라며 정면 돌파에 성공, 결국 본선 티켓을 손에 쥐었다. 이 후보는 경선 확정이 발표된 날, 행사장에 불참하고 돌연 출국했다.
 
‘문재인 vs 비(非) 문재인’ 구도에서 치러진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은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내내 분열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경선 룰에 완전히 합의되지 않은 채 경선을 시작됐다. 문 후보에 대항하는 손학규·정세균 상임고문과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공동전선을 구축해 모바일 투표의 문제점을 물고 늘어지며 경선판은 요동쳤다. 결국 당시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 대선주자로 확정됐지만, 한동안 앙금은 가시지 않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YTN미디어센터에서 열린 YTN 주최 TV토론에서 이낙연 후보를 지나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한 정치권 인사는 “사실 경쟁 정당에 지는 것보다 내 옆 동지에게 지는 게 훨씬 견디기 힘들다”며 “여러 선거를 치러보니 당내 경선에서 지면 ‘차라리 경쟁 정당 후보가 당선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더라”고 털어놨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내부 총질이 더 무섭다"…내편 네편 다 죽인 대선 내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