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미술관’ 서울 송현동 부지에?…대구·부산 등 전국 지자체 강력 반발
입력 : 2021-06-02 16:31:10 수정 : 2021-06-02 20:39:28
문체부, 서울시에 송현동 부지 제공 가능한지 문의
“서울뿐 아니라 다른 지자체 요청도 살펴보고 있어”
‘이건희 미술관’ 유치 의사 밝힌 지자체 14곳
‘이건희 미술관’ 건립 방안을 검토 중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서울시에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제공할 수 있는지 문의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던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날벼락을 맞은 듯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문화부는 “서울뿐 아니라 다른 지방자치단체 요청도 살펴보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2일 전국 지자체 등에 따르면 현재 이건희 미술관 유치 의사를 밝힌 지자체는 14곳에 이른다. 대부분 고(故)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 일가와의 인연을 강조하며 유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유치위원회까지 가동한 상태다. 하지만 문화부의 송현동 부지 검토 소식에 지자체들은 미술관이 사실상 서울에 자리 잡는 방향으로 기울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며 반발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미술관 건축비 전액 부담’이란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유치 총력전에 나선 대구시는 송현동 부지 검토와는 별개로 문체부에 조만간 유치 제안서를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제출한다. 시는 미술관 건립 장소로 북구 산격동 옛 경북도청 후적지(3만2000㎡)로 정하고, 시비 2500억원과 시민 성금을 모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접근성을 이유로 서울 등 수도권이 유력하단 이야기를 접한 뒤 허탈감을 감출 수 없다”면서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미술관은 반드시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건립해야 하며 최적지는 준비된 도시 대구”라고 강조했다.
부산시도 허탈하긴 마찬가지다. 부산시는 이날 “문화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별도의 입장문을 낼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체육문화국장 등 관련 공무원들을 3일 문화부로 보내 사실 확인과 부산시의 유치 입장을 다시 한 번 전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해안남중권발전협의회 소속 영·호남 9개 시장·군수는 이날 하동군청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지방의 문화 황폐화를 방치하는 것은 지방의 생명력을 잃게 하는 요인이므로 이건희 미술관은 수도권이 아닌 남해안남중권 지역에 유치돼야 한다”고 정부에 강력히 요구했다. 권오봉 전남 여수시장은 “정부는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에 기증자의 숭고한 뜻을 존중해 동서화합의 상징지역인 남해안남중권 지역에 건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태완 경남 의령군수와 조규일 진주시장은 전날 의령군청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이건희 미술관을 남부권에 설치해 국가 균형발전을 견인하는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령은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출생지고, 진주는 이병철 회장의 모교인 옛 지수초교가 있다.
‘이건희미술관 유치 세종범시민추진위원회’도 문화부의 서울시 부지 타진에 강력히 반발했다. 이태근 범시민추진위원장은 “문화부의 이번 행태는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문화예술기관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이건희 미술관마저 서울에 건립한다는 것은 지역민들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성토했다.
경기 수원과 용인, 평택 등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던 수도권 지자체들도 문체부의 송현동 부지 검토 소식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앞서 이건희미술관 유치전에 뛰어든 경기 남부지역 지자체들은 문화부의 송현동 유치 의사 타진 소식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서울이 아닌 경기지역 유치 가능성에 기대를 갖고 있는 상태다. 삼성전자 본사 소재지로 이건희 전 회장의 묘소가 있는 수원시는 이달 중순 정부의 공식 입장이 나오면 정식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표면적으론 직접 유치 운동에 뛰어들지 않았지만, 도시정책실과 문화체육교육국 등 관련 부서에서 후보지 물색에 나선 상태다. 아울러 수원에 지역구를 둔 여당 의원 등이 유치에 힘을 실으면서 지원사격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 사업장이 있는 용인시도 물밑 작업에 나섰다. 지난달 31일에는 시청사에서 ‘이건희 미술관 용인유치 시민추진위원회’가 출범식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건희 미술관 용인유치 시민추진위원회는 시민을 비롯해 용인예총, 용인문화원, 경기도여성단체협의회 용인시지회 등 지역 53개 단체가 자발적으로 나서 구성했다. 문화교육도시를 내세운 오산시는 최근 곽상욱 시장이 나서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할 경우 운영비를 시비로 대겠다고 약속했다.
문화부는 미술계를 비롯해 지자체들이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놓고 경쟁이 과열되는 상황 등을 고려해 신설 방향 논의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부 관계자는 “서울시에 송현동 부지가 어떤 땅인지 면적 등에 대해 문의한 건 맞지만, 구체적으로 ‘이건희미술관’ 건립 의사를 확인한 건 아니다”며 “부지 선정을 두고는 여러 지자체에서 요청이 나오고 있는 만큼 다각도로 살펴 이달 중 투명하게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부산·하동·세종·수원=김덕용·오성택·이보람·강은선·오상도, 박성준 기자 kimd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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