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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삶

눈으로 그린 사랑

 눈으로 그린 사랑



봄이
그려지는가 싶더니
여름이 지나가고

산마다
단풍잎 물들이는 가을이
왔나 싶더니

겨울이 머물러 있는 이 마을엔
   달과 별들도 부러워한다는
                 금실 좋은
    노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밭에 일하러 나간다는
할아버지의 등 뒤엔 지게가 아닌
할머니가 업혀져 있었는데요

“임자...
밖에 나오니 춥지 않아?“

“영감 등이 따뜻하니까 춥지 않네요”


앞을 못 보는
할머니를 업고 다닌다는 할아버지는

“임자..
여기서 앉아 쉬고 있어
밭에 씨 좀 뿌려놓고 올테니...“

씨앗 한 움큼을 던져 놓고
할머니 한번 쳐다보는 것도 모자라

“초가 삼가..♬
집을 짓는 ♪내 고향 정든 땅♪♩“

구성진 노래까지 불러주고 있는 모습에

   이젠 할머니까지 손뼉을 치며
 따라 부르고 있는 게 부러웠는지
           날아가던 새들까지
  장단을 맞추어주고 있는 걸 보는
           할아버지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오고 있었는데요

           “나만 볼 수 있는 게
                   미안하다며....”

      눈물짓고 있는 할아버지는

​            봄처럼 푸른 새싹을
              여름 햇살에 키워

​         가을을 닮은 곡식들로
   행복을 줍던 날들을 뒤로한 채
    찬 서리 진 겨울 같은 아픔을
         맞이하고  말았는데요

  고뿔이 심해 들린 읍내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소리에
  할머니 몰래 진찰을 받고 나오는
            할아버지의 얼굴엔
        하얀 낮달이 앉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걸
할머니에게 말하지 않은 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산과 들로 다니며
        행복을 줍고 있었지만

​                     갈수록

​         할머니를 업기에도..

         힐체어를 밀기에도...

​힘에 부쳐가는 시간을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만 있었습니다




노부부의
앞마당 빨랫줄에 매달려
놀고 있던 해님이

       달님이 불러서인지
    점점 멀어지고 있을 때

“임자...
됐어…. 됐다구“

“읍에 갔다 오더니 뭔말이래요?“

“그동안 고생했어.”


할머니에게
망막 기증을 해준다는 사람이
나섰다며

봄을 만난 나비처럼
온 마당을 들쑤시고 다니고 있는
할아버지의 애씀이 있어서인지

시간이 지나
할머니는 수술대에 누워 있습니다


“임자..
수술 잘될 거니까 걱정말어”

“그래요....
이제 나란히 손잡고 같이 걸어갑시다“



이다음에
    저승에서 만나면
            꼭 그렇게 하자는 그 말은

            차마 하지 못한 채
돌아서는 할아버지가 떠나시면서
남기고 간 선물로 눈을 뜬 할머니는

               펼쳐진 세상이
        너무나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시더니
     이내 할아버지를 찾습니다


“임자....
이제 그 눈으로 오십 평 생 못 본 세상 실컷 보고 천천히 오구료
세상 구경 끝나고 나 있는 곳으로
올 땐 포근한 당신 등으로 날 업어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 못다 한 이야기나 해주구려“


          비록 멀어졌지만

                우린 함께
   세상을 보고 있는 거라고....


                    씌여진
    편지를 읽고 난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하늘가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등 뒤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가 더 행복했다고...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