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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삶

효성스런 성인들에 대한 단상

 

새벽 이 글이 읽었습니다.ㆍ
늘 불효자로 살아서 맘이 아픕니다.
이미 때는 늦었지만 후회합니다.

父生我身하시고
아버지는 내 몸을 낳으시고

母鞠我身이로다
어머니는 내 몸을 기르셨다.

腹以懷我하시고
배로써 나를 품어 주시고

乳以哺我로다
젖으로써 나를 먹여 주셨다.

以衣溫我하시고
옷으로써 나를 따뜻하게 하시고

以食飽我로다
밥으로써 나를 배부르게 하셨다.

恩高如天하시고
은혜는 높기가 하늘과 같으시고

德厚似地하시니
덕은 두텁기가 땅과 같으시니

爲人子者가
 사람의 자식된 자가

曷不爲孝리오
어찌 효도를 하지 않겠는가?

欲報其德인댄
그 은덕을 갚고자 하면

昊天罔極이로다
하늘처럼 다함이 없도다.
그러나 하나도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往而不可追者年也
去而不見者親也

나무는 고요히
머물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님이 기다려 주지 않네.

한번 흘러가면 쫓아갈 수 없는
것이 세월이요, 가시고 나면
다시 뵐 수 없는 분 어버이라.
***♡♡♡***
綠陰이 짙어가는 푸르른
5월입니다. 온통 울긋불긋 봄을
戱弄하는 듯 꽃단장을 한
山河의 모습이 눈부십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天壽를 누리지 못하고
먼저 가신 어버이를 생각하며
不孝의 恨스러움을
위로하고자 읊조려 보는
두 편의 詩가 있습니다.
***♡♡♡***
千里라 내 故鄕은
첩첩 산골 저 쪽인데,
돌아가고 싶은 마음
언제나 꿈속이네.

寒松亭가에는
외로운 달빛이요,
鏡浦坮앞에는
한 떼의 바람이라.

모래밭의 갈매기는
모였다가 흩어지고,
물결 위의 어선들은
오락가락 하는데,

어느 때 다시 고향 길 밟아,
색동옷 입고 춤추며
부모님 곁에서 바느질할까?

千里家山萬疊峰
歸心長在夢魂間
寒松亭畔雙輪月
鏡浦坮前一陣風
沙上白鷗恒聚散
波頭漁艇每西東
何時重踏臨瀛路
綵舞斑衣膝下縫
***♡♡♡***

朝鮮朝의 대학자이신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어머니
신 사임당 (申師任堂)이 읊은
“사친(思親 : 어머니 그리워)”
이라는 詩의 全文입니다.

年老하신 어머니를 임영
(臨瀛 : 강릉의 옛 이름)땅에 두고
온 것이 항상 마음에 걸리고
가슴속 깊이 사무쳤는데,
이런 心境을 眞率하게
表現한 詩입니다.

가끔 꿈에서 어머니를 뵙게 되고,
아울러 달빛 외로이 감돌던
寒松亭과 세찬 바람이
불던 바닷가 모래 위를 갈매기가
날고, 고기 배들이 바다 위를
떠돌던 어렸을 적 江陵
경포대의 風景과
색동저고리를 입고 어머니 앞에서
어리광을 부렸던 그 때를
回想하며 지은 애절한
愛親詩입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처럼 언제쯤이나
어머니에게 다시 어리광을 부리면서
어머니를 다시 모실 수 있을까를
念願하는 至極한
孝心의 詩입니다.
***♡♡♡***

백발의 늙으신 어머님은
강릉에 계신데
내 몸은 서울로 향해
홀로 떠나는구나.
때때로 머리를 돌려
북촌을 바라보니
흰 구름 날아가는 아래
저무는 산 빛만 푸르구나.

慈親鶴髮在臨瀛
身向長安獨去情
回首北村時一望
白雲飛下暮山靑

이 詩는 泣別慈母
: 눈물로 어머니와 이별함)라는
詩의 全文입니다.

신사임당은 媤宅인 파주(坡州)
율곡리(栗谷里)와 수진방(壽進坊
: 청진동)에서 살았는데, 이 때에
홀어머니를 강릉에 두고 서울로
가게 되어 大關嶺을 넘으며
말 할 수 없는 애틋한 그 심경을
시로써 吐露하였습니다.
***♡♡♡***

위 두 편의 詩는 近世
까지만 해도 시집을 가는 딸이
지니고 가는 필수품이었습니다.

친정아버지나 스승이 붓글씨로
써서 병풍을 만들거나, 아니면
치마폭에 써서 평생토록 간직하며
어버이를 생각하라는 뜻에서
그리하였던 것입니다.

유난히도 오월의 햇살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습니다.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부끄러울
정도이나 햇살은 그 어떤 편견
偏見도 없이 온 누리를 따사롭게
 비추어 주고 있습니다. 
 
옛聖賢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햇살을 “애일(愛日)”
이라 표현했고, 그런 햇살이 나날이
다시 비춰짐을 하늘의 큰 은혜로
알고 살아갔습니다.
 
특히“애일(愛日)”은 부모님께
孝道할 수 있는 날이
지속되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그런 해(日)를 사랑스럽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매일 매일 같은 모습으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저 사랑스러운
햇살 덕분에 부모님이 살아 계시고
내가 孝道할 수 있는 날이
다시 왔구나.” 하는 마음에 하루해를
아껴가며 부모님과 조상들께 정성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朝鮮朝 中宗때의
文臣인 농암(聾巖)이현보
(李 賢輔) 선생께서는 어버이를
위하여 “(愛日堂)”이라는
亭子를 지어놓고 매양 좋은
때와 좋은 節侯에 늙으신
어버이를 모시고 동생들과 함께
이 愛日堂에 모여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희채(戱綵 : 어린
아이처럼 재롱떠는일)하며
어버이를 즐겁게 해 드리기를
삼십여 년이나 하였다고 합니다.

중국 고대 周나라의
老來子는 그의 나이
70세임에도 불구하고 늙으신
부모님 앞에서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떨고 응석을 부려가며
어버이를 기쁘게 해 드렸다는
逸話에서 綵衣
娛親이라는 故事가
생겨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先賢들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어버이를 생각하며
섬기기를 지극 정성으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입에
膾炙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孔子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어버이께 孝道한다는 것은
오로지 어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버이를 편하게 해 드리는 것
그 자체가 나를 편하게 하는 것"
이라고.

"家和萬事成"은
子孝雙親樂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슴깊이 새겨 실천하는 마음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가르침인가요?

새기고 새겨 실천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
-단군기원4354년 5월8일
어버이 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