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대란 팔걷고 나선 美…12일 백악관 회의 소집
제이크 설리번 안보보좌관이
韓·美·대만기업 불러 긴급회의
美투자땐 40% 세액공제 등
파격혜택 내세워 증산 압박
장기적으론 `반도체 자립` 노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나서면서 증설 압박을 받고 있는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 오스틴 반도체 공장. [사진 제공 = 삼성전자]
"반도체는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척추(Backbone)다. 역내 생산 능력과 재고 확보를 동시에 꾀해야 한다."
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바꾸기 위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백악관이 12일(현지시간)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등 핵심 반도체 기업 및 미국 완성차 업체들과 만날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반도체 업계는 현재 아시아 지역에 생산 역량이 집중된 반도체 공급망에 보다 거센 변화 압력이 가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회의를 이끌 책임자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작금의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를 사실상 `국가 안보` 이슈로 간주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안보 정책을 설계하는 국가안보보좌관이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말 코로나19 사태 이후 공급 부족을 겪고 있는 반도체, 희귀광물, 대용량 배터리, 의약품 등에 대해 100일 내에 공급망 현황을 분석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바이든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미국 내에 제조시설을 갖고 있는 반도체 기업들의 생산량 확대를 압박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자국 반도체 기업 육성을 꾀하고 있다. 이에 화답해 미국 인텔은 지난달 23일 미국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 2곳을 증설하기 위해 200억달러(약 22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만 TSMC와 한국 삼성전자가 양분하고 있는 파운드리 시장에 인텔이 다시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전날에는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이 일본의 낸드플래시 제조사인 키옥시아 인수를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공장 증설과 인수·합병(M&A)을 동시에 추진하며 `반도체 독립`에 뛰어들겠다는 얘기다. 이 보도가 나오자 미국 반도체 업계에서는 "반도체 생산 역량과 공정 개선을 함께 늘리는 것은 수년이 걸리는 작업이다. 해외 기업 M&A가 성사되도록 정부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바이든 정부가 2조달러 규모의 인프라스트럭처 부양안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분야에 500억달러(약 56조원)를 배정한 것도 이 같은 계획의 일환이다. 2024년까지 투자 비용의 40%까지 세액공제를 해주기로 한 것도 파격적 지원이다.
미국은 1990년대까지 수익성이 높은 부문을 중심으로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의 37%를 차지했으나 지금은 13% 수준으로 쪼그라든 상태다. 보스턴컨설팅그룹과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 분석에 따르면 특히 10나노미터(㎚) 이하 첨단 공정의 미국 생산 능력은 사실상 제로(0%·생산지 기준)다.
문제는 반도체 공장 건설에는 최소 5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단기간에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묘안은 없기 때문에 바이든 정부도 삼성전자를 비롯한 동맹국 기업들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바이든 정부가 대만 정부와 외교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반도체 업계는 12일 회의에서 백악관이 우선적으로 작금의 반도체 수급 불균형이 얼마나 지속될지를 청취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역내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한 세제 감면과 각종 보조금 지원 의지를 밝히면서 삼성전자, TSMC, 인텔, 마이크론 등 해당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를 적극 독려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이번 반도체 부족 사태 이후 다른 자연재해·지정학적 위기로 유사 부족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고 보고 시나리오별 공급망 충격을 점검하는 이른바 `스트레스 테스트`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컨대 중국이 대만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면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TSMC에 미치는 입김도 거세질 수 있다. 미국은 1979년 대만과 외교를 단절했고 이후 외교관 사이의 접촉도 금지해 왔으나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식에 샤오메이친 주미 대만대표부 대표를 초청하는 것으로 관계 개선 의지를 보인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설리번 보좌관은 2일 열리는 한·미·일 3국 안보실장협의에서도 반도체 공급망 개선 문제를 안건으로 올려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1일(현지시간) 사전 브리핑에서 "한·미·일 3국은 반도체 제조 기술의 미래에서 많은 열쇠를 쥐고 있다"며 "민감한 공급망을 안전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 인사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직접 개입해 회의를 주재한다는 것은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기업들의 협조를 당부한다는 뜻"이라며 "향후 반도체 부족 사태가 재발할 경우 미국 자동차 기업에 반도체를 우선 공급해야 한다는 압박이 가해질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 서울 = 노현 기자 /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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