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주영 기자
- 입력 : 2020.12.31 15:32:01 수정 : 2020.12.31 15:51:07
`대구 음식`이라고 했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음식은? 제일 먼저 “막창!”을 외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음식을 칭하는 말 `소울푸드`. 정작 대구 사람들에게 `소울 푸드`가 무엇이냐 물어보면 막창은 자연스럽게 후 순위로 밀려난다. 막창은 매일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아니고 특수부위이기 때문에 호불호도 꽤나 갈리기 때문이다.
대구는 밀가루 소비량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도시로 유명하다. 다양한 면 요리와 밀떡, 그리고 수제비 같은 음식은 특히나 외식을 할 때나 출출할 때 간식으로도 자주 먹는다. 서울과는 달리 가정집이 많은 동네에서 수두룩하게 발견할 수 있는 가게가 떡볶이집, 칼국수 가게이다. 요식업계 자영업자 비율도 많기 때문에 맛 경쟁도 치열하다. 웬만큼 음식 맛이 뛰어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든 곳이 대구라는 말도 있다.
서울살이가 지치고 힘들 때 생각나는 대구 음식 세 가지 정도를 꼽아보니, 그 공통점이 밀가루 음식이었다. 길쭉한 판에 오랜 시간 졸인 밀떡볶이와 금방 튀겨낸 납작 만두가 첫째. 둘째는 둘이 먹어도 배가 부를 만큼 푸짐한 시장표 칼국수와 오이고추. 마지막으로는 제피가루를 듬뿍 뿌린 어탕국수이다.
이미지 출처 = giphy
01. 밀떡볶이와 납작 만두
떡볶이는 국민 소울푸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대구의 떡볶이집들 중에는 참 희한한 곳들이 많다. 그 중 팔달시장의 자매분식이라는 곳을 소개한다. 24시간 문을 닫지 않고 영업을 하는 떡볶이 집이다. 안타깝게도 얼마 전 새벽 1시까지만 영업을 한다는 소식도 있다. 물론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내리기 전 얘기다. 새벽시장이 열리는 것도 아닌 동네 시장에 밤새 영업을 하는 분식집이라니 이상하게도 여겨진다. 즉석 떡볶이도 아니고 밤새 커다란 판에 쫄쫄 끓여지는 판 떡볶이가 손님을 기다린다.
낮에는 동네 주민들의 새참 역할을 제대로 하는 이 떡볶이 맛집. 새벽에는 배가 출출해 엄마 몰래 뛰쳐나가는 학생들도 간혹 있다. 하지만 이 떡볶이집의 본색은 새벽에 드러난다. 집에 그냥 돌아가기는 아쉬운 아버지들의 쉼터 같은 곳이다. 떡볶이와 소주, 그리고 중년 남성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조합인 것 같기도 하다. 안줏상을 슬쩍 들여다보면 주연처럼 빛나는 조연 메뉴들이 인기가 좋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납작만두, 그 위에 듬뿍 올라간 매콤달짝한 간장소스와 대파, 또 오징어 튀김도 빼놓을 수 없다.
대구에서 이사만 아홉 번을 넘게 다녔지만 늘 맛있는 떡볶이집은 근처에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부담 없이 사갈 수 있는 떡볶이 집이 하나쯤은 있다는 것. 정말 행복했던 시절을 보냈다는 걸 서울살이 하며 알게 됐다.
누른국수 / 사진 = 대구푸드
02. 시장표 칼국수와 오이고추
다음은 시원한 멸치 육수 베이스의 칼국수이다. 한 골목에만 칼국숫집이 이십여 개는 되는 서문시장에서는 정말 아무 가게나 들어가도 맛있다. 괜히 인터넷에 `서문시장 칼국수 맛집`이라 검색할 필요 없다. 양도 푸짐하지만, `후루룩후루룩` 면치기를 하며 시장 상인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는 곳이다. 대구 시장 칼국수의 특징이라고 하면 면발이 납작하고 얇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르신들은 이 칼국수를 ‘누른국수’라 부르기도 한다. 간혹 칼국숫집마다 누르스름한 면을 내어주는 곳이 있는데 그 국수가 누른국수이다. 색의 비밀은 노란 콩가루다.
칼국숫집의 인심은 오이고추를 보면 알 수 있다. 테이블마다 산더미처럼 쌓인 오이고추를 보고 간혹 놀라는 외지인들도 있다. 뜨끈한 칼국수에 ‘무한리필’ 오이고추를 쌈장에 푹 찍어 먹으면 ‘음양의 조화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대구의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콩국수만큼 잘 팔리는 뜨끈한 칼국수의 비결이 시원하고 상큼한 오이고추 덕분 아닐까.
코미디TV 예능 `맛있는 녀석들` 캡쳐
03. 제피 가루 듬뿍 올린 어탕국수
어탕국수집은 팔공산 가는 길, 앞산 자락 이 쯤에 맛집이 하나씩 꼭 있다. 등산 후에 먹는 시원한 생선 매운탕 국물이 기가 막히다. 가끔 어르신들 하는 말씀을 들어보면, 매운탕보다 어탕국수가 잘 팔리는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대구 사람들 성격이 급하니 어느 세월에 전골식 매운탕을 끓여 먹겠나.
주인장이 생선 살을 다 발라 진하게 끓여낸 어탕육수에 그때 그때 손님이 오면 손 수제비식으로 숭덩숭덩 떼어내거나 소면을 넣어 끓여낸다. 어탕국수에 들어가는 국수의 면은 대부분 소면인데 칼국수를 넣는 집도 있고 스타일은 제각각이다. 개인적으로 어탕국수 국물을 퍽퍽 퍼먹으려면 수제비가 딱이다. 메뉴에 없어도 “칼제비요!”하면 알아서 섞어 준다.
어탕국수는 서울에 잘 없다. 그 맛은 끓일 만큼 끓여내 진한 매운탕 국물이라 상상하면 된다. 이 국수를 맛있게 먹는 법은 제피 가루를 뿌리는 것. 경상도에서는 비린 음식의 향을 잡고자 쓰는 `제피`, 가끔 진피, 지피(할머니들 발음)라고 부르는 이도 있는데 `산초` 맛과 비슷하다. 혀끝에 알싸한 감각을 남길 만큼 톡 쏘는 맛이 특이한 향신료이다. 쓰면서도 침샘이 폭발한다. 제피가루를 듬뿍 넣은 어탕국수는 겨울이 되면 꼭 생각나는 음식이다.
한 고장에 오래 살다 보면 그 지역의 색이 담긴 음식들을 자연스레 사랑하게 된다. 코로나가 끝나면 당장 달려가 먹고 싶은 이 세 가지 음식, 대구 출신의 소울푸드를 소개했다. 여러분의 영혼을 달래주는 고향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요?
[배혜린 여행+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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