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0.12.12 07:00 수정2020.12.12 13:06
中포털 '바이두', 구체적 근거 기술 없이 '매체 보도'라며 소개
"절임채소, 북위 35~45도 농경문화권서 보편…김치엔 韓독자적 발효기술"
한국 전통 복식 한복(韓服)에 이어 이번에는 김치가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중국발로 나왔다.
11일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百度) 백과사전에서 파오차이(泡菜·중국 채소절임)를 검색하면 한국 김치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중 '기원논쟁' 항목에서 "한국 파오차이(김치)는 여러 차례 중요한 단계를 거쳤으며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전해졌다"고 소개하고 있다.
◇바이두, '매체 보도'라며 삼국시대 중국유래 기술…구체 근거 제시 안해
바이두가 '김치가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전해졌다'는 기술을 하면서 어떤 근거를 제시했는지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이두는 "2013년 10월26일 어느 매체 보도"라며 '삼국시대 중국서 유입'을 거론했는데, 각주를 찾아 들어가면 '어느 매체 보도'는 관영 신화통신 계열 뉴스포털인 신화망(新華網)의 기사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해당 신화망 기사를 찾아 보면 다른 매체 기자의 취재 내용을 인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신화망 기사는 "법제만보(法制晩報·관영 베이징청년보 산하 매체) 기자가 자료를 열람해보니 한국 파오차이는 깊고 두터운 중국 유가(儒家)문화 흔적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적었다.
신화망 기사는 이어 "중국의 시경(詩經)에는 '菹'(절이다 저)자가 나오는데 그것은 중국 사전에서 '쏸차이'(酸菜·발효시킨 채소)로 해석되며, 바로 이런 종류의 소금에 절인 반찬이 한국으로 전해졌다"고 썼다.
그러면서 "한국 파오차이는 여러차례 중요한 단계를 거쳤으며,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전해졌다"고 서술했다.
여기서 삼국시대는 맥락상 중국 후한말기 위·촉·오나라가 맞섰던 시기가 아니라, 고구려·백제·신라의 한반도 삼국시대(4∼7세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화망 기사는 김치가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한반도로 어떻게 건너갔는지를 설명하는 고대 문헌자료 등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9일 중국의 관영 영자 매체인 글로벌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내용은 지난 8일 추가된 것이다.
대신 바이두의 파오차이 관련 이전 내용 중 "한국 김치는 3천 년의 역사가 있다"는 대목은 삭제됐다.
바이두의 김치 관련 내용 수정은 지난달 말 시작된 중국발 '김치 논쟁'에서 비롯됐다.
대외 문제에서 중국 내 강경론을 대변한다는 평가를 받아온 환구시보는 파오차이의 국제표준화기구(ISO) 표준 인증 소식을 전하며 "한국 김치도 파오차이에 해당하므로 이제 우리가 김치산업의 세계 표준"이라고 주장했고, 한국 국내에서 반발 목소리가 빗발쳤다.
이 과정에서 바이두에 '김치가 중국에서 기원했다'고 기록된 사실이 알려졌고,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의 요구에 따라 해당 내용이 수정됐지만, 이번에는 '삼국시대에 중국서 전래했다'는 내용이 들어간 것이다.
바이두는 현재 김치에 대한 정보를 네티즌이 수정하거나 추가할 수 없도록 막아뒀다.
이에 연합뉴스는 저명한 김치 연구자를 상대로 중국발 주장에 근거가 있는지를 취재했다.
◇전문가 "韓·中 절임채소 삼국시대 이전부터 분화…김치 발효기술 독자 발전"
결론부터 말하면 '김치의 중국 유래설'은 신뢰할만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김치 역사의 권위자인 박채린 세계김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1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김치의 중국 기원이나 전파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김치의 기원과 제조변천과정에 대한 종합적 연구' 논문을 발표한 박 책임연구원은 "채소를 오래 저장하기 위해 소금이나 술, 식초 같은 담금원에 두는 것은 인류 보편적인 문화"라며 "특히 절임 채소는 위도가 북위 35도~45도에 위치한 농경 문화권 지역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박 책임연구원은 절임 채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각 나라와 지역별로 사용된 기술과 방식이 다르고, 이에 따라 고유한 음식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두 문화권의 침채(沈菜·절임채소)류 계통이 이미 삼국시대 이전부터 분화됐으며, 한반도는 독자적으로 발효기술을 정착시켜왔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채소절임은 오랜 기간 저장할 채소를 말리거나 익힌 뒤 살균력이 강한 술이나 식초 같은데 담가두는 '초산저장(醋蒜貯藏)' 방식의 비중이 높고, 소금절임을 하더라도 강한 신맛을 갖는 게 특징이다.
반면, 한반도의 채소절임, 즉 김치는 채소를 장기간 저장하면서 발효까지 시키는 '젖산발효' 음식이다.
익히지 않은 생채소를 장과 소금에 절이거나 생채소 자체를 활용하며, 고유의 저장용기인 옹기(甕器)에 넣어 발효하는 과정을 거친다.
부패를 막기 위해 공기가 통하지 않는 용기에 밀봉해 보관하는 중국 파오차이와 다르다.
오히려 중국의 파오차이는 김치보다는 서양의 피클이나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 일본의 쓰케모노(漬物)와 더 비슷하다.
◇中 고대문헌 '저채'는 김치 아닌 절임채소 지칭·中역사서엔 "고구려가 발효음식 잘해"
김치의 중국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신화망 기사가 거론한 중국 '시경'의 기술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시경에는 '밭 안에 오이가 있으니 이것을 벗겨 저(菹)채를 만들어 조상께 바친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서 '저(菹)'자는 채소나 생선을 오래 보관하면 물러지는 모습을 본뜬 상형문자다.
학자들이 김치 관련 과거 기록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절임 채소를 유추할 수 있는 문자가 기록된 이 문헌을 거론하게 됐고, 학자중 일부는 김치가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견해를 제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박 책임연구원은 "그러한 주장은 오래전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문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비롯한 평면적 결론"이라며 "이런 논리라면 전 세계 모든 채소절임 음식의 원조가 중국이 된다"고 말했다.
또 한반도의 음식 발효 기술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을 담은 중국 문헌도 있다.
중국 진수(陳壽)가 편찬한 정사(正史)인 삼국지위서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에는 '고구려가 장양(藏釀·발효음식 제조 기술)을 잘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박 연구원은 "중국 황하문명보다 1천 년 앞선 요하 문명 발굴로 고대 절임 기술을 발달시킨 동이족 문화가 새로 조명되고 있다"며 "고대사와 연계된 김치의 기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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