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20.12.10 00:08 | 종합 34면 지면보기
거대 여당의 폭주가 점입가경이다. 민주당은 법사위 강행 처리에 이어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을 밀어붙일 작정이다. 이어 논란투성이인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 국가정보원법도 다수의 힘으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은 공수처법 등에 대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방해)를 신청해 저지에 나섰지만 소수당의 한계가 명확해 시간 지연 효과밖에 낼 수 없을 전망이다. 국민의힘이 각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에 들어가도 민주당(174명)을 포함한 180명이 동의하면 토론 종결 신청이 가능해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할 수 있다.
민주당, 오늘 공수처법 단독 강행 처리 수순
타협하지 않는 사회는 전체주의나 다름없어
21대 국회 들어 지속적으로 보여준 거대 여당의 독주는 수적 우세를 앞세운 다수의 횡포로밖에 볼 수 없다.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얻었다고 모든 걸 제멋대로 하겠다는 건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처사다. 민주당은 그저께 법사위에서 공수처법을 처리하며 최대 90일까지 이견을 조종할 수 있도록 규정한 안건조정위원회를 개최 1시간 만에 끝낸 뒤 법사위 전체회의를 열어 약 8분 만에 기립 표결로 법안을 처리했다. 회의장에서 기자들을 밖으로 내보냈고, 야당의 반대 토론은 그냥 무시했다. 처음부터 심의나 이견 조정 없이 밀어붙일 심산이었다. 이래놓고 어떻게 민주주의를 한다고 할 수 있는가.
절차도 폭압적이지만 쟁점 법안들이 시행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공수처법은 결국 야당의 비토권을 없애 공수처장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사로 선정하도록 했고, 공수처 검사의 자격 요건도 완화해 공수처를 친정부 조직으로 만들려 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오죽하면 ‘권력 수호처’란 말이 나올 정도다.
대공수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은 국가 안보에 구멍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크고,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은 대북 전단과 확성기 방송 등을 막아 군이 수행하는 심리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법들을 사전에 충분한 토론 없이 시행할 경우 그 부작용에 따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현 정부 출범 후 최저 수준(37.4%)까지 떨어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대립 정국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보면 민주적 절차와 합의를 무시한 채 폭주하는 여권에 대한 염증이 지지율 하락을 이끈 요소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 번이라도 야당과 협상하고 타협하는 협치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절차와 과정이 그야말로 막무가내다. 타협이 없는 사회는 전체주의나 다름없다. 민심의 이반이 이같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여권이 폭주를 멈추지 않고 오만과 독선으로 일관한다면 임기 말로 향하는 문재인 정부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출처: 중앙일보] [사설] 힘을 앞세운 거여의 독주, 민주주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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