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도 통일신라처럼 불교국가…동질의 문명 시대죠…1350년 ‘변상도’ 그림 보면 당시 고려 사회상 알 수 있죠
입력2019.07.08 09:00 수정2019.07.08 09:00
이영훈 교수의 한국경제史 3000년 - (21) 고려의 사회와 문화 (상)
불교의 시대
10∼14세기의 고려 는 8∼10세기의 통일신라와 동질의 역사 시대다. 두 시대는 혼인, 가족, 친족, 촌락, 노동 등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펼쳐지는 공간에서 동질적이었다. 그 공간을 지배하고 그로부터 각종 잉여를 수취하는 국가의 지배체제에서 두 시대는 연속적이었다. 두 시대는 그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나아가 우주와의 관계, 곧 종교가 대변하는 정신문화를 공유했다. 두 시대는 공통으로 불교의 시대였다. 고려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는 불교의 정신세계에 의해 규정됐다.
안은 부처의 세계인데, 현실에서는 왕족과 귀족의 세상이다. 성벽 밖의 속세는 그들의 지배를 받는 천한 서민의 세상이다. 사람의 크기는 위에서 아래로 점점 작게 그려져 있다. 맨 아래는 밭 갈고 추수하는 농부들인데, 손가락만큼 작게 그려져 있다. 불교의 정신세계에서 인간은 원리적으로 평등하지만, 현실의 사바에서 귀족과 서민의 신분 차등은 신체의 대소로 명확하게 감각됐다.
변상도에 나타난 풍경
둘째는 농부들이 거의 바지를 입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123년 중국 송의 서긍(徐兢)이란 관료가 사신단의 일원으로 고려를 방문해 3개월간 체류했다. 서긍은 귀국 후 그가 살핀 고려의 제도와 현실을 《고려도경(高麗圖經)》이란 책으로 적었다. 그에 의하면 고려의 하층 서민은 단갈(短褐), 곧 짧은 겉옷으로 몸을 가리고는 아랫도리는 입지 않는다고 했다. 바로 그 모습을 변상도에서 생생하게 살필 수 있다.
변상도 맨 아래에는 8명의 농부 외에 1명의 여인이 추가로 그려져 있다. 여인은 움집 속에 앉아서 남자들의 일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고려 서민의 주거는 일반적으로 반지하 움집이었다.
물론 왕족이나 귀족의 집은 지상의 웅대한 저택이었다. 그와 관련해 서긍의 고려도경은 개경 성내의 일반 주거를 가리켜 벌집 및 개미굴과 같이 밀집해 있는데, 서까래를 양쪽에 잇대고 풀을 베어 지붕을 덮어 겨우 바람과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지배세력이 모여 사는 개경이 이러했으니 농촌으로 내려가면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그 점을 변상도는 숨기지 않고 전하고 있다.
윤회의 고리
불교 세계에서 사바는 윤회의 한 고리일 뿐이다. 고려 귀족들은 깊은 불심에서 즐겨 불경을 필사했다.
제시된 그림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어느 사경(寫經)에 전하는 한 장면이다. 불경을 비방하다가 죽으면 구렁이로 태어나 기어 다닐 때 작은 벌레들이 비늘 밑을 빨아먹어 고통을 받고, 온몸이 옴과 버짐으로 얼룩진 여우로 태어나 어린아이들의 매를 맞고, 어쩌다가 사람으로 태어나도 난쟁이, 절름발이, 시각·청각·척추장애인으로 태어난다는 내용이다. 고려인은 일반적으로 두건을 썼는데 그 같은 복식이 확인되고 있는 점, 서민의 주거로 움집이 그려져 있는 점도 연구자의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하편에 계속)
통일신라와 고려 두 시대는 그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나아가 우주와의 관계, 곧 종교가 대변하는 정신문화를 공유했다. 두 시대는 공통으로 불교의 시대였다. 고려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는 불교의 정신세계에 의해 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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