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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

나는 순진 했던 한 종교인이었다.

 

나는 순진 했던 한 종교인이었다.

 

 

"순수""순진"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어원만으로 따져본다면 순수(純粹)라는 말이나 순진(純眞)이라는 말이나 모두 잡스러운 것이 섞이지 않았다는 뜻의 순()자를 공유하고 있고, ()나 진()도 글자는 다르지만 내용으로 들어가면 역시 비슷한 뜻이라 큰 차이가 없다.

 

 

순수의 사전적 의미는 "잡것의 섞임이 없는 것",

그 안에 깨끗한 물이 담길 수도 있고, 더러운 물이 들어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순진"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이 꾸밈이 없이 순박하고 참되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함입니다.

 

 

순진이라는 말은 순수하기는 하되 어딘가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데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의미가 개입해 있다. 따라서 누군가가 순진하다고 하는 말에는 안타깝다”, “딱하다”, 때로는 바보 같다는 의미가 곁들여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순진" 이란 말은 어릴 때만 간직할 수 있는 말입니다.

어른이 되어도 순진하다면 세상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입니다.

 

 

반면 순수는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순수한 사람이 있습니다.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사람은 순수한 사람이 있고 순진한 사람이 있다. 순수한 것은 좋지만 순진해서는 안 된다하는 말을 긴 소송 가운데 피부로 느낀 적이 있다. 그 증거가 바로 그들이 부르짖는 자유율법 즉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는 교리에 집착 했던 것 같다. 재판이 끝나고 나중에 그 말을 곱씹어 보았는데 나름대로 나는 순진한 바보 이였다는 말을 실감 했던 일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도 순수함을 그대로 지닌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가 들수록 세상 물정에 휘둘려 땟국이 반지르르한 사람이 있다. 순수한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순수란 간단히 얘기하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불순한 사람을 많이 만나 그들로부터 피해를 보는 일이 잦게 되면 결국 사람은 그들의 사술과 불신에 맞설 수 있는 인식과 행위패턴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개연성을 넘어 필연성에 접근하면 결국 부정적 인간관과 세계관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똑같이 불순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면 기만과 술수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누군가가 자신을 기만하든 술수를 쓰든 마치 그가 한없이 정직하고 선의로 가득한 것처럼 여기고 행동하란 말인가?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는 남을 기만하려 드는 사람, 신뢰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고, 그것을 아는 것은 불가피하고 필요한 일이다.

 

 

(子曰 不逆詐 不億不信 抑亦先覺者 是賢乎) -논어, 헌문 제33-

자왈 불역사하며 불억불신이나 억역선각자 시현호인저

 

공자께서 말했다. “남들이 나를 속일까 미리 짐작하지 말고, 남들이 나를 믿어주지 않을까 억측하지 말라, 그러나 나를 속이는지 믿어주는지를 미리 아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니라.”

 

문제는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선의와 신뢰에 바탕을 두되 그러면서도 상대의 기만성과 불신성을 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짐작으로 의심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하지만 무조건 믿으라는 말씀은 아니다.

속이는 것인지 의심하는 것인지를 미리 알아서 대처해야 현명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험난한 세상살이에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의심하지 말고, 미혹되지 말고, 불신하지 말라. 하지만 늘 앞질러 깨닫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바로 때늦게 나는 깨달은 삶이요 신앙심이다.

 

 

순수하되 순진해서는 안 된다던 말은 결국 맞는 말이었던 것 같다. 다양한 경험은 우리를 어리석은 순진에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경험들 속에서 우리가 확보하는 날카로운 인간 논리는 우리를 그 무수한 경험들의 어지러움에도 불구하고 언제까지나 순수하게 지켜줄 것이다.

 

순수하게 살아간다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좋은 습관을 가지려 노력하면 순수해질 수 있습니다. 누가 봐도 아름답고, 누가 봐도 부담이 없는, 순수를 사랑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