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은 이스라엘 '단 지파' 민족이다
창세기 49장에 기록된 야곱의 다섯 번째 아들 '단'이 국조단군
한민족은 이스라엘 단지파 민족이다
모세를 따라 애급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도착한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하나인 단지파는 장장 100년을 두고 블레셋 군대와 싸우다가 단지파의 용맹한 장수 삼손이 블레셋 여자 데릴라의 계략에 말려들어 비참한 최후를 마친 후부터 패배하기 시작했다(삿18장).
성경:사사기18:1-10 본문에 보면 단지파가 아직 기업의 땅을 다 차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1절). 조금 특이합니다. 벌써 가나안 땅에 들어온 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을 텐데 아직도 기업을 다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니 말입니다. 그 동안 단지파는 무엇을 했는지 참 궁금합니다. 이러한 궁금증이 여호수아 19장에서 풀립니다(수19:40-48). 즉 단지파는 기업으로 받은 땅이 있었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노력하여 더 많은 땅을 기업으로 얻게 된 것입니다. 본문은 어떻게 단지파가 기업을 넓히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단지파는 그들의 얻은 기업 중 소라와 에스다올에 우선 정착하여 살다가 자신들의 세력이 커지자(예를 들어 '인구') 더 많은 경작지가 필요하였기에 본격적인 기업 확장에 나선 것입니다.
그 후생활의 터전을 찾아 그들의 본거지였던 소라와 레바논의 동쪽으로부터 시리아, 이란, 이라크를 거쳐 계속 동북방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여 소련의 남부, 중국의 북부 경계의 일부를 타고 중앙아시아를 거쳐 알타이 산맥을 넘고 몽고와 만주를 거쳐 압록강을 건너 마침내 하나님이 예정해 놓으신 우리 한반도에 정착하게 되었다.
우리 조상들이 ‘라이스’라고 하던 땅의 지명과 ‘레센’ 땅의 지명을 고쳐 ‘단’이라고 부른 것이 지금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으며 우리 조상의 국조(國祖)를 그대로 ‘단(檀)’이라고 부르며 물동이를 이고 다니는 생활풍속이나 농경법 또는 제사법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닮은 점이 많다.
우리민족은 고대에 히브리어를 사용하였다
중국 북부 알타이(Altay) 산맥에서 약 100년간 머물면서 그곳 원주민과 교류하면서 그곳에서 태어난 후손들이 알타이어에 동화되므로서 현재 우리민족을 언어학상 알타이어족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한반도에 도착하고 나서도 우리민족의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히브리어 언어와 문자도 사용하였다.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히브리어의 사용 흔적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예) 히브리어: 애기(아기),에미,애비, 고시레,꼭두각시, 실로(구세주), 단(심판자), 실로 대단하다→구세주는 위대한 심판자이다. 라는 뜻으로 그 당시 장래에 올 구세주를 찬양, 염원하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본래의 뜻은 망각되고 크게 감탄하는 뜻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대동강에서 발견된 3000년 전의 유물인 와당(둥근 기와)에는 고대 히브리어가 씌여져 있었다.
고대 히브리어가 씌여져 있는 단군 지석이 백두산에서 발견되었다.
1911년 일제 식민지가 시작된 무렵 백두산에서 벌목을 하던 일본인이 알 수 없는 글이 씌여 있는 지석(誌石)을 발견하고 평북 도청에 옮겨 놓았다.
그러나 해석 할 길이 없어 당시 의주 천주교당에 와있던 프랑스 천주교 신부에게 판독시킨 결과 고대 히브리어로 씌여진 단군 지석임을 알게 되었는데 압록강 건너 안동현 천주교 신부도 와서 히브리어로 된 단군 지석임을 확인하였다.
평북 의주 출생 독립운동가 고정록씨 증언의 진술에 의하면 그 이후 단군 지석은 일본인이 가져갔다.
인종 (외모, 골상)이 같다
노아의 세 아들 중 황인종의 조상인 셈(Shem)의 후손이다.(창세기 9:25)-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은 갈데아 우르에서 이스라엘에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갈데아 우르는 메소포타미아문명 말기에 수메르 민족이 거주하던 곳으로 현재의 이라크 유프라테스강 남단 지방이다. 수메르(Shumer)는 셈(Shem)에서 유래된 말이다.
머리카락이 검고 키가 작았다. (민수기 13: 33)- 서구 유태인들은 백인들과 혼혈이 되어 백인과 같은 모습이 되었지만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우리 선조와 같이 키가 작고 머리가 검었다. 백인과 서구 유태인을 구별할 때 머리카락에 검은 빛을 띤 것을 보고 구분하였다고 함.
골상이 똑같다.─ 1950년 미군으로 한국에 와서 거주한 인류학 박사가 2년 반 동안 무덤의 유골을 조사한 결과 유대 민족과 우리민족의 골상이 똑같다고 발표하였고 이러한 사실이 동아일보에 보도되었으며 동아 백과사전에도 기록되어있다.
머리가 가장 좋다-인류 중에 한민족이 머리가 가장 좋은 민족이며 그 다음 유대인이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고 1970년 미국 하버드 대학 인류학자들이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
생활 풍습이 같다
귀신 쫓는 양식이 같다.
귀신 들어오지 못하도록 양의 피를 집문 좌우 문설주와 안방에 바름 (출애굽기 12:7,23) : 애굽(이집트 )탈출 후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를 기념하여 유월절 행사로 명명하여 계속 행하여 왔음.
가축이 귀한 한반도에 와서는 양의 피와 색깔이 비슷한 팥죽을 동짓날에 문설주에 대신 뿌렸으며, 고사떡에 붉은 팥을 사용하고, 결혼식 때 신부에게 붉은 연지, 곤지를 사용하고, 옷고름에 붉은 댕기를 하였음.
흰옷을 즐겨 입는다.
백의민족이라 불릴 만큼 흰옷을 즐겨 입는 우리 선조와 같이 옛 이스라엘 사람들도 흰옷을 즐겨 입었는데 지금도 유월절 첫날 흰옷을 입고 출애굽의 역사를 재현하며 밤을 지샌다. 사마리아 이스라엘인(사마리탄)들은 유월절에 조선시대 선비와 똑 같은 흰 두루마기를 입고 그리심 산에서 양의 피를 얼굴과 옷에 뿌리고 바르며 제를 지낸다.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 제사장의 세마포 옷이 우리의 도포와 같다
우리민족이 흰 두루마기를 즐겨 입어 백의민족으로 불렸는데 이스라엘 민족도 흰옷 입기를 좋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창세기 37:34). 가계 혈통적인 측면을 보면 두 민족 모두 본처 장자가 상속을 하였다(창세기 17:19).
형수 취수제 등이 같다
형수 취수제란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부인으로 맞이하는 제도로서 고구려와 부여에 행해졌던 풍속인데 유다의 며느리 다말과 아들 3형제의 결혼과정에서 형수취수제도(창세기 38:1~30)가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데릴사위제(부여), 처가살이(3년), 신부의 얼굴을 가리고 결혼하는 예식이 있었는데 야곱의 결혼과정에서 처가살이를 했던 기록이 창세기29:21-31에 있다. 그뿐만 아니라 중동이나 이스라엘 여인들이 바깥 나들이를 할 때 얼굴을 가리고 다니듯이 조선시대의 한국여인들도 얼굴을 가리고 나들이하는 풍습이 있었다.
장례의식과 제사의식이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삼베옷을 입고 ‘아이고 아이고’ 하며 통곡하였고, 이스라엘에서는 굵은 베옷을 입고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했다(창세기)고 기록되어 있다. 또 두 민족은 높은 산에서 돌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다고 기록되어 있다(창세기 22장, 타민족에게는 이런 것이 없다).
산소마다 돌 제단을 놓아두는 민족은 우리 민족과 이스라엘 민족 밖에 없다. 그리고 따로 돌 제단을 쌓아서 제를 지냈다. (예: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단을 쌓고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릴것이며 (신명기27:6), (창세기 28:22), (여호수와 8:31)
사람이 죽으면 향을 피우고 베옷을 입고 아이고, 아이고하며 곡을 하였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의 생활 풍습서 내용 중-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토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창세기 37: 34 )
이장제도가 같다.
집 가에 돌담(積石)을 쌓는다.
이스라엘 북부나 중부에 사는 일부 종족들은 지금도 돌담을 쌓은 집에 산다.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외출시 얼굴을 천으로 가리는 풍속이 조선시대 우리 선조와 같았다.
이스라엘 내에서 유목, 천막 생활을 하는 베드윈족은 지금도 고대 유대의 남녀 유별과 남존 여비사상의 전통과 풍습에 따라 부인이 아들을 낳지 못하면 첩을 두거나 이혼 할 수 있게 하며 처녀들이 긴 머리를 하고 있다가 결혼하면 머리를 틀어 위에 얹으며,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다니고 외출시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다닌다.
장대 위에 놋 뱀을 달아놓음(민수기21:9)
우리 선조들은 솟대를 동네 입구에 세움. 족보를 가지고 중시하는 민족, 산당과 성황당, 폐백을 드리는 풍속이 같음.
멧돌을 사용, 등불과 청사초롱으로 신랑을 맞이하는 풍속이 같다.
설, 추석, 상달 등 세 절기를 지키는 것이 같다.
파, 마늘, 부추등 매운 음식을 즐겨 먹는다.
우리가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민수기 11:5)...
타민족에 없는 숟가락, 부삽, 부집게 그리고 제사 용기로 놋그릇을 사용하였다.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 쓰는 놋그릇을 다 가져 갔으며 (열왕기하 25: 14)
중국, 일본에 없는 우리민족의 꽃 무궁화는 원산지가 레바논,시리아이다.
율법이 엄하다
두 민족 모두 엄한 율법으로도 매우 유사한데 단 민족에게 8조 금법, 간음녀를 돌로 쳐서 죽임, 성범죄와 정조관념을 중시하였다. 남녀칠세부동석, 고려시대 환향녀 천대, 충신 열녀비 등이 있다면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모세 십계명, 간음녀를 돌로 쳐서 죽임, 약혼하면 다른 데로 시집을 못 가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
참고사항
단지파가 우리민족이란 역사적 문헌은 성서외 아직 나오지 아니하였고 나올수도 없습니다. 우랄산맥을 넘어 온 사실은 중앙 아시아 각국 역사서에 의하여 민족의 대 이동을 입증하고 있으며, 성서상 입증은 1956년 천부교 창시자 박태선 장로님 설교에 최초 언급 된사실을 기독교 각교파가 언급하게 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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