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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과 이름의 의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과 이름의 의미

 

성씨의 유래

 

영어권에서의 성씨제도는 지명 별명 가족관계 직업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서양에서 성씨는 주로 유태인들로 부터 그 뿌리를 찾기도 한다. 유태인들은 자신의 성씨를 자신들의 거주하던 도시명이나 직업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구약에서 나타나는 12지파가 그 뿌리가 된다.

성씨는 일정한 인물을 시조로 하여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혈연집단의 한 명칭이며, 곧 씨족적 관념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동양에 있어서 처음으로 성을 사용한 것은 한자를 발명한 중국이었다. 처음에는 그들이 거주하는 지명이 산명, 강명으로 성을 삼았다. 신농씨(神農氏)의 어머니가 강수(姜水)에 있었으므로 성을 강씨(姜氏)라 하고, ()임금의 어머니가 요허(姚虛)에 있었으므로 성을 요씨(姚氏)라 했다.

 

성은 혈족관계를 표시하기 위해 재정 된 것이다

 

한국인에게 성씨의 발생근원은 정확한 기록이 없어 상세히 알 수는 없으나, 대략 중국 성씨 제도의 영향을 받아 고조선(古朝鮮)시대에 왕족(王族)에서 부터 사용한 것으로 전해 온다.

 

고대 씨족사회로 접어들면서 그 집단을 통솔하는 지배자가 나타나는데, 통솔에 필요한 정치적 기능을 부여함에 있어서 다른 씨족과 구별하기 위한 호칭(呼稱)이 성()으로 나타나고, 점차적으로 지방 세력이 중앙 귀족화 되면서 다수의 부족을 통솔하기 위한 칭호이며, 정치적 신분을 표시하는 중요한 의미로 나타났다.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는 기원전 57년경 양산(楊山) 기슭 나정(蘿井)옆에 있는 숲속에서 표주박 같은 커다란 알에서 탄생했다 하여 표주박 박()씨를 성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고,김씨의 시조의 김알지(金閼智)65년 탈해왕 9년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숲 속에서 금함(金函)으로부터 나왔으므로 김()씨라 하였으며,가야국 시조인 수로(首露)42(신라 유리왕 19) 금관국(金官國) 북쪽 귀지(龜旨)봉에 떨어진 6개의 황금알에서 나왔다 하여 김()씨라 하였다.

 

따라서 성()은 초기에 왕실(王室)이나 귀족(貴族)에서만 국한되어 사용하다가, 국가에 공이 큰 공신(功臣)들이나 귀화인(歸化人)들에게 세거지역(世居地域)이나 강·산의 명칭을 다라 사성(賜姓)을 하면서 확대되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반 서민들의 성씨사용은 과거제도(科擧制度)가 발달되는 고려 문종(文宗 1047) 이후에서부터 보편화되었으며, 상민(常民)과 노비(奴婢)를 포함한 모두가 성()을 갖게 된 것은 조선말 개혁정치가 시행되면서부터 이다.

 

동일한 가문의 후손이라도 국가 사회공헌 한 선대가 있는 경우에는 직계 후손들이 자랑으로 삼고 종파의 중시조로 모시었다. 성은 부계 위주의 가계 그 자체를 본위로 한 칭호로서 한국인이면 자기성에 대한 자부심만은 모두 대단하고 훌륭한 선조를 둔 훌륭한 성씨들임이 틀림없다..

 

 

 

 

한국인이 지닌 이름이 의미

 

한국인이 지니고 있는 인명을 살펴보면 성과 본관은 가문을, 이름은 가문의 대수를 나타내는 항렬과 개인을 구별하는 자로 구성되어 개인 구별은 물론 가문의 세대까지 나타낸다.

 

성명학은 선천명과 연관하여 좋은 이름을 지어서 부르고, 불려지고, 쓰고 하는 과정을 통하여 운로를 길운으로 이끄는 작용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성명학은 한 개인의 사주에서 나타난 음양오행의 과부족을 분석하여 필요한 오행들을 성명학에 적용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균형을 잡아주는 학문으로 이를 통하여 인간의 불완전한 사주에 보다 나은 기운을 더해줄 수 있기 때문에 성명학의 존재 가치가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름은 육체와 정신의 유도 작용을 통하여 선천적인 운의 범위 내에서 어느 정도의 변화와 조절이 가능하게 되므로 좋은 이름은 운을 좋게 유도하고 나쁜 이름은 운을 나쁘게 유도하게 된다고 한다. 이것은 어디가지나 동양 한자문화권에서 주장하는 신앙과도 같은 것이 아닐가 싶다.

 

좋은 이름은 평생을 통하여 아기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고 나쁜 이름은 그와 반대가 될 것이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될 때 혹은 삼촌이나 고모 이모가 될 때는 누구나 한번쯤 새 생명을 위한 좋은 이름을 지어 보려고 고민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새 생명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막연하게 큰일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그 동안 생각해 본적이 없던 항렬을 따지거나 족보를 찾게 되고, 작명하는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져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자식에게 나쁜 이름을 지어줄 이유가 없지 아니한가?

 

 

태어난 사주는 바꿀 수 없으나, 그것을 극복하고 좀 더 좋은 쪽으로 변화시켜서 인생을 사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작명은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사주의 부족한 부분을 이름이 어느 정도 보강할 수 있고, 이름이 어느 정도까지는 운명에 영향을 줄 수가 과연 있을 수 있는 것인지 의문되기 때문이다.

 

 

운명을 결정짓는 요소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천지인 삼재와 비유해 보면, 정해진 시간이 첫 번째이고, 태어난 지역과 환경이 그 두 번째이며, 사람이 가진 의지와 개인의 인과응보가 셋째라 할 것이다.

 

 

태어난 순간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사주는 고정된 것으로, 숙명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이 다른 것일까? 태어난 환경이 다르고 만나는 인연이 다르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조상의 음덕이 다르고 개개인의 자유의지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성명학에서 점과 선으로 구성된 문자는 문자발음 표시에 심오한 뜻과 함게 신령스러운 수리를 함축하여 문자의 영혼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름글자의 뜻과 한글 소리 내어 발음하는 소리오행, 수리가 함축된 글자의 획수 또한 대단한 영동력을 발휘 한다 하는 것이 성명학의 힘이라는 주장은 받아드리기 어렵다.

 

사람은 제각기 이름이 있지만 반듯이 그런 것만 아니었다. 근대 서양 문물이 들어오기 전 만해도 우리사회에서는 평생 성과 이름 없이 개똥이 말뚝이 돌이 순이 등으로 불러지었다. 그들은 성명학의 근거 없이 그들의 세대 삶을 누리고 간 사람들이 아닌가? 주어진 시대의 환경에서 불행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요즘에도 알려지지 않아서 무명가수’ ‘무명학자라 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는 뜻이다. 그러므로 어떤 명칭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길이며 그 인정은 이름의 소유자의 부단한 삶에서 녹아 있는 노력이지 성명학에서 주장하는 원리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 하고 싶다.

 

이름은 상대의 영혼을 불어 일으키는 신호이다. 라면공장에서 라면하나 하나에 바코드가 뭍어 나오듯이 인간이면 누구나 자기 바코드를 붙어서 살아가고 있다. 사생활보호 측면에서 인간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이 비밀보호 대상이 될지라도 성명은 될 수가 없다. 이름마저 비밀보호 대상인 자라면 이 세상에 존재 할 수가 없는 사람 일 것이다.

 

인간은 자기이름 섯 자의 바코드를 어떻게 평가 받는가를 위해 일생 살아가고 있다. 개개인이 자기가 속한 집단 안에서 어떻게 행동하며 살아왔는지에 의하여 그 사람의 이름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품격과 인격이 메겨지고 좋은 이름과 나쁜 이름으로 뭍사람들의 뇌리 속에 각인 되어 진다. 결코 숫자조합이 양호하고 부르기 아름다운 이름이라서 좋은 성명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름 때문에 좋지 못한 별명을 얻거나 놀림감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름으로 인하여 학교나 사회에서 장애를 겪는 사례가 종종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처음으로 주는 선물이 이름인 만큼 느낌이 좋은 이름이나 어감이 좋은 이름, 기억에 남는 이름 등 좋은 이름을 지어 주는 것도 또 다른 부모의 도리라 할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이름으로 인해 피해를 본다면 개명도 고려해 볼 만한 일이다.

 

나의 경우도 한가문의 자랑스러운 장손으로서 증조부님 회갑년에 태어나서 작명대가를 월급을 주어가면서 한 달 만에 작명한 본명은 文 甲熙 (문 갑희)이였다. 한문으로 뜻을 보면 얼마나 좋은 이름인가? 그러나 학창 생활 내내 내 이름을 바로 불리어진 일은 없었다. 한글 닿소리 법칙을 모르고 한 학자가 지었던 결과이다. 직장 생활하면서 전화로 수많은 사람을 상대 하다 보니 통성명하여 상대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물기가 일수이었다. 족보에 따른 항렬 끝 글자가 섭자 임에 따라 文 鐘燮(문 종섭)으로 개명하였는데 이름으로 큰 해택이나 피해도 없이 주어진 공직생활 마치고 정년퇴직 하였다.

 

 

개명은 운명의 전환점이 되는 어떤 순간에 필요한 경우도 있다. 예컨대 속세를 떠나 산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계를 받는 스님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이혼이나 사고 등으로 자신의 삶에 크나큰 변화가 생긴 경우, 짧게는 스스로의 마음을 다짐한다는 의미에서도 개명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명에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법원에 개명허가 신청을 해야 하는데, 이름이 놀림감이 되기 쉽거나 성별의 구별이 곤란하거나 사회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등 지금까지는 뚜렷한 사유가 있어야만 개명을 허가하였다. 그러나 200511월 대법원 판례에 의하여 개인의 인권과 생존권을 중요시한다는 면에서 이제는 누구나 자기가 갖고 싶은 이름이 있다면 자유롭게 개명할 수가 있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