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첫사랑과 나의 이야기
아름다운 사람, 단테
단테는 1265년에 이테리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며, 피렌체 는 플로렌스 로 더 알려진 도시입니다. 단테는 9살 때 "베아트리체 " 들 처음 만납니다. 1274년 5월초 따뜻한 봄날에 피렌체의 명문 귀족 "폴코포르티니라" 가문에서 피렌체의 저명인사들을 초빙하여 축제를 베풀게 됩니다.
피렌체에 거주하는 거물,귀족,들은 모두 축제에 참석하게 됩니다. 이때에 단테 의 아버지 "알리기기에로"씨도 아들 "단테"를 데리고 참석하게 됩니다.
단테는 이 파티에서 단테의 명작 <신곡>에 나오는 운명의 여인 "베아트리체"를 처음 보게 되는데 베아트리체의 그때의 나이는 8 살입니다.
베아트리체는 축제의 호스트인 귀족 "포르티나리" 의 귀엽고, 영리하고,예쁜 딸 입니다.
9 살베기 청순한 소년, 단테의 눈에 비친 8살 베기 "베아트리체"는 하늘의 천사 그 자체 이었습니다.
그 여아는 축제의 선녀 이었고, 파티의 꽃 이었습니다.
단테는 첫눈에 "베아트리체"에게 반하였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여인으로 단테의 가슴에 진하게 남게 됩니다.
"베아트리체" 는 단번에 단테의 혼을 빼앗아간 여인으로. 단테의 첫사랑은 입니다.
단테는 훗날의 새로운 저서 <새로운 인생>이란 책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나게 되는 순간을 다음 과 같이 표현 했습니다. "진실로 이야기 하자면, 그녀를 보는 바로 그 순간에 내 심장의 비밀스러운 곳에서 생명의 기운이 너무나 깊고, 크게, 요동치는 바람에 미세한 혈관 까지도 하나도 남김없이 심히 떨려왔다."고 묘사 했습니다.
단테는 그 후 9년 뒤인, 18 살에 아주 우연히 17 살인 "베아트리체"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이번에도 어떤 이유로, 정식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우연히 피란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 강, 가 "베르지오" 다리 옆 을 친구들과 스쳐지나가는 베아트리체 를 보게 됩니다. 물론 말도 한번 던져보지 못했습니다. 그 마지막 만남은 단테에게 사랑의 감정을 더욱 깊게 만들었으며... 단테는 이후부터 사랑의 열병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단테가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베아트리체 의 상대는 단테가 아니라 피란체의 거상이나타납니다. 그리고는 결혼을 하게 되지만 불행하게도 베아트리체는 24 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을 합니다.
단테의 마음에 깊숙히 자리한 베아트리체는 그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는 뮤즈로 남아 단테 필생의 대작인 신곡에서 신의 경지로 찬양을 받으며 숭고한 사랑의 이상형으로 재탄생됩니다.
베아트리체가 사망한 10년 후에 단테는 공적인 일로 피렌체에서 영구 추방당했으며 평생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추방당한 후에 이탈리아와 유럽 전역을 떠돌며 외롭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단테의 유일한 위안은 죽은 베아트리체를 향한 그 열정적인 사랑의 힘으로 마침내 신곡이 탄생되었는데 신곡을 완성한 직후 단테는 열병으로 객사했다고 합니다.
단테의 마음과 영혼에는 베아트리체 가 영원히 살아남아서 훗날 단테의 거작 <신곡>에서 찬란한 꽃으로 활짝 피어납니다. 참 아름다우면서도 가슴을 여미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남성들에게 연인의 상징으로도 일컬어지는 그 베아트리체는 단테가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칭송되고 뭇 남성들이 갈망하는 아름다운 연인의 상징으로까지 재탄생된 것 같습니다.
영롱한 아름다운 첫사랑
나의 첫 사랑의 여인은 행운의 표시를 상징하는 내 잎 크로버 뱃지를 가슴에 단 명문 부산여자중학교 3학년 한 예쁜 얼굴 한 소녀이었습니다.
1960년도 오월 중순 어느 날 장미꽃 아름답게 피어나던 이른 아침 내가 교회 새벽 기도드리고 집으로 오는 서대신동2가 소녀집 앞을 지나오는 대문 앞에 서서 미소 짓고 있던 첫 모습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미소 짓고 있던 아름다운 모습이 집 앞에 담장 넝쿨 속에 핀 한 송이 흰 장미꽃 그 자체 이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은 깊은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예쁜 얼굴의 소녀에 대하여 내가 아는 것은 학교와 학년 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소녀의 아버지의 성함이 대문에 새겨진 문패를 보고 성씨는 알았으며 나의 성이 문가이기에 동성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느듯 세월이 흘러 간 어느날 경남고등학교 뒷편으로 구덕산에 산책 같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대신동 3가 동아대학교 건물과 접한 도로변 도변으로 내려오는 길가에 크다란 저택 문패에서 다시 그녀의 부친 존함을 발견하여 서대신동2가에서 이곳으로 이사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언론 매체를 통하여 그녀의 부친은 부산상공회의소 부회장직에 제직하는 분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천사 같은 미모의 소유자 이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은 깊은 마음속에 그 소녀는 내 영혼속에 호흡하고 이었답니다. 처음 만난 이후 중고등학교시절을 거치는 동안 한마디 대화도 서로가 나누어 보지 못하고 오직 옅은 미소와 홍당무 같은 얼굴로 보내어진 세월이었습니다.
나는 서로가 너무도 다른 생활 환경에서 살아가기에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을 끝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고는 기대하지 아니 했는데 7년 후인 1969년 내가 사회인이 되어 부산에서 공직 생활하던 어느 날 아침 업무로 철야하고 대신동 전차종점에서 하차하여 집으로 오는 길인 경남상고 (현 부경고)앞 길에서 팔등신 여인이 미소 지어며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나는 피하여 길거너편 쪽으로 걸어왔는데 얼마를 걸어오다가 생각하니 나의 첫사랑의 소녀가 의젓한 여인으로 변한 모습이었다고 생각 되었으나 되돌아가서 그 동안 안부을 물어 보기는 어색하게 느껴지었습니다. 이는 남자로서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나의 잘못된 처세였다고 지금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없이 우리 사이는 쓰쳐가는 인연으로 세월 속에 멀어져 갔습니다.
나도 언제가 이 아름다웠던 여인을 소재로 한 작은 소품하나라도 발표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름다운 감정과 순수 한 영혼의 진실한 울림은 뭍사람들이 공감하여 주지 아니할까 하는 작은 생각을 가지고 나의 블로그에 때때로 추억의 이야기를 올려봅니다
화가들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이들의 모습을 한복의 그림으로 남기게 됩니다.
자신의 이름 앞에 "단테" 들 붙일 만큼, 단테의 맹렬한 펜 이면서 시인 이며, 화가인 영국출신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Dante Gabriel Rossetti (1828 ~1882 )는 자신의 연인 "엘리자베스 시달" 의 모습을 베아트리체로 상상형상화 시켜 세계명작으로 탄생 시켰습니다.
또한 역시, 영국출신 화가, 헨리 홀리데이 Henry Holiday (1839 ~1904 )는 베아트리체를만난 단테의 표정을 그린 명작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영국 출신의 헨리 홀리데이,Henry Holiday (1839~1904)의 세계적 명작으로 이태리 피렌 체시 베르지오 다리 옆에서 친구들과 스쳐지나가는 "베아트리체" 들 연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단테"의 모습을 그린 작가의 형상화 로 세계적인 명화입니다.
작가는 단테의 "신곡"을 읽고 감명을 받아, 작품속의 "베아트리체" 들 형상화 한 그림입니다.
누가 "베아트리체" 냐 고요?.물론 가운데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아닐가요?
단테가 18 살때, 피렌체 아르노 강" 베르지오 "다리 곁에서 친구들과 스쳐지나가는 "피아트리체" 를 연민의 눈으로 넋을 잃고 쳐다보는 것을 그린 명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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