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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高士觀水圖 <고사관수도>

 

 

高士觀水圖 <고사관수도>

-조선(朝鮮) <15세기> 종이 위에 수묵으로 강희안(姜希顔, 1417-1464) 그린 그림으로 크기37.6×31.3cm 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되어 있다.

해설

이 그림은 덩굴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배경에 두고 바위에 기대어 엎드린 자세로 물을 바라보고 있는 선비의 유유자적한 모습을 담고 있다. 이 그림은 중국 북송대(北宋代) 회화의 영향을 토대로 발전된 안견파(安堅派) 화풍이 크게 풍미하고 있던 당시로서는 색다른 경향의 화풍을 보이고 있다.

산수의 넓지 않은 한 부분을 배경으로 둔 인물 중심의 구성이라든가 가까운 앞쪽의 풍경 위주로 대담한 변각 구도(邊角構圖)는 조선 중기에 유행하였던 절파(浙派: 명대 절강지방 양식의 영향을 받았던 화가들의 화풍)계 소경산수인물(小景山水人物) 화풍의 선구적인 요소로 여겨진다.

이 <고사관수도>의 화풍은 조선시대 중기에 이르러 함윤덕(咸允德)의 <기려도(騎驢圖)>를 비롯하여 이경윤(李慶胤)∙김명국(金明國) 등의 절파계 화가들의 소경산수인물 화풍에 큰 영향을 미쳤다. 왼편 가장자리 위쪽에는 ″인재(仁齋)″라는 호를 새긴 도장이 찍혀 있다.

문화제청

감상

<고사관수도>는 실제로는 손바닥을 조금 넘는 작은 크기의 그림인데 작품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커다란 작품으로 상상한다고 한다.

그림을 보면 고요 한 듯하지만 그 속에 움직이는 자연의 묵직함과 공기처럼 자유로워 보이는 선비의 존재감이 묘한 생명력을 발휘하며 공간 밖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사색에 잠긴 듯도 하고 자고 있는듯도 하고, 눈을 감은 것도 같고 뜬것도 같은 인상 좋은 선비의 얼굴은 천진스럽고도 편안하며 보는 이의 마음까지 느긋하게 만든다.

툭툭 끊어지는 거칠고 대범한 획, 그린 이의 팔의 움직임이 보이는 듯 투박하고 빠른 먹선을 따라 가다보면 살아 숨 쉬는 바위의 기운이 느껴지고, 가벼이 늘어져 내린 덩굴아래 고요한 물을 바라보는 선비의 한가로움이 부러워지며 그림 속 인물이 되고 싶어진다.

‘고결한 선비가 물을 본다.’ 는 뜻의 고요하나 기운 넘치는 이 그림은 풍류와 문장으로 이름나 시서화(詩書畵) 삼절 (三絶)로 일컬어지는 조선 초기 문신(文臣) 강희안(姜希顔)의 작품으로 평소 부드럽고 온화했다는 작가 자신의 성격과도 닮아 있는 것으로 평가 되고 있다.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는 말 그대로 큰 망벽 아래 바위에 엎드려 흐르는 물을 진종일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 있는 한 사람의 백의거사를 그린 그림입니다.

여기서 백의거사는 시, 서, 화에 모두 높은 격을 지녔던 강희안 자신이라고 할 것입니다.

강희안은 사대부 출신의 화가로 그림 그리는 재주가 어릴 때부터 뛰어났습니다.

어른이 된 후에 그는 학문과 사색의 여가에 자신의 조촐한 인품이 배어난 문기 높은 그림을 즐겨 그렸는데, 그림 그리기를 일종의 천기로 여기는 당시 사회의 통념에 때문에 많은 그림을 그려 남기기를 꺼리고, 더구나 자신의 작품이 여기저기 퍼져 그림으로써 이름나기를 주저했기 때문에 오늘날 세상에 남겨진 작품은 많지 않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 초기 화단에서 사대부화가가 지니는 출중한 격조를 보여주면서 당시 상류사회의 미술 취향을 짐작하기에 족하다고 할 만합니다.

짙은 먹색의 가파르고 육중한 암벽, 거침없이 내려온 덩굴을 배경으로 망중한의 사색에 빠져 있는 한 선비의 모습이 참신하고 파격적인 화풍으로 표현된 이 작품은 문헌으로 알려진 인재 강희안의 화격을 분명하게 전해주는 작품으로써,15세기 중엽의 그림으로서는 몹시 진보적이면서 크기는 작으나 대작에 뒤지지 않는 감동을 선명히 전해주는 작품이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