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짧은 인생길에 왜 이렇게도 고난이 많은가?
그저 눈만 뜨면 근심과 걱정이 밀려옵니다.
내가 잘못해서 생기는 고통,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억울하게 당하는 괴로움, 태산 같은 근심 걱정, 한 가지 문제를 겨우 해결하고 한숨을 돌리는가 싶은데 해결된 문제 보다 더 큰 문제들, 마치 바다에 파도가 밀려오듯 쉴새없이 고난과 고통의 문제가 밀려오는 게 인생살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도무지 고생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아깝고 소중한 인생살이가 어려운 문제를 피해 가고 도망쳐 가려해도 길이보이지 아니 합니다. 평탄한 길같이 보였는데 갑자기 절벽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갈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는 뒤돌아 갈 수도 없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자니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실망과 좌절감으로 인하여 얼마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학생들의 입시,
사업하는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
가장이 받는 긴장,
가정주부들이 만나는 허무감
아무도 인생의 고민과 고통과 괴로움에서 피할 자가 없습니다.
이렇게 마음 상하는 일만 생각하고 산다면 조금도 살맛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생의 의욕마저 상실하고 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인생의 삶의 모습입니다.
인류역사 자체가 수난사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모세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당대의 의인으로서 의와 선을 힘써 행하였던 욥도 많은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왜 나만 이렇게 어려움을 당해야 하는가?
왜 나만 이런 고통 때문에 속이 상해 울고 있어야 하는가?
반문할 수가 밖에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종류가 다를 뿐이지 어려움과 고통은 누구나 다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속상하는 일이 조금도 없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최근 모 잡지에서 독자들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에서 오는 나뿐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묻는 의견 조사를 한 일이 있습니다. 즉 '속이 상할 때 어떻게 하는가?'하는 질문에
자신들의 선택한 방법들이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응답했습니다.
그 다음 질문은 '당신이 선택한 방법 가운데 어느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를 만나서 속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 질문은 '당신은 그런 친구를 가지고 있느냐 있다면 몇이나 있느냐'라는 것이었는데 92.5%가 그런 친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더욱 속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들, 입시 문제, 직장 문제, 배우자, 자녀들의 문제, 병, 상대적인 박탈 감, 경쟁에서 뒤쳐지는 것 같은 기분, 다른 사람은 벤쳐 기업에 투자를 해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데도 생활 문제에 속상하는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 가야 하는지?
우리가 성장해오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어떤 아이들 보면 밖에 나가서 놀다 항상 얻어맞고 들어오는 애가 있습니다. 이 어린아이의 사정을 보면 딱하기 그지없습니다. 싸울 용기도 없고 힘도 없고 해보자니 도저히 안 됩니다. 속이 상해 견딜 수 없습니다. 견디다 못해 한번 용기를 내어서 해봤는데 진탕 얻어맞고 말았습니다. 돌아오면서 그저 돌아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악을 쓰며 온 동네가 떠나가라는 듯이 울면서 돌아옵니다. '엄마, 엄마'부르는 그 소리에는 한과 억울함과 갈망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한이 맺혀 돌아오는 그 아이의 어머는 그 속이 오죽하겠습니까?
이때 보면 어머니의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어떤 어머니는 '야 이 녀석아! 어쩌자고 그렇게 항상 얻어맞고만 들어오느냐.
이 못난 새끼야,
너도 이제는 이렇게 두들겨 패 주란 말이다"하고 속이 상해서 죄 없는 자기 새끼만 두들겨 팹니다.
이 어린것은 자기가 누구 새끼 인줄도 알지 못하고 얻어맞습니다.
동네 애들한테 매 맞은 것도 분한데 엄마까지 야단입니다.
어린것의 속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이는 울고 돌아오는 아이를 꼭 안아 주고 치마 자락으로 눈물 콧물을 닦아주시면서 위로해 줍니다.
'같이 때리는 것은 나쁜 일이지'.
남을 때리는 것은 못된 짓이란다.
내 아들 참 잘 했어, 그렇게 울고 나니 시원하겠다.'
그 때 어린것에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어머님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속상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찾아야 합니다.
다른데 찾아가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고통과 시련은 시험입니다
시험은 실력을 평가하여 보다도 더 큰상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 이 보잘것없는 나에게 이런 시험을 다 주십니까.
감사 합니다.
더 큰 시련이 닥쳐와도 달게 받겠습니다.
이 마음가짐이 될 때 이기는 자 길입니다.
짧은 인생길에 왜 이렇게도 고난이 많은가?
그저 눈만 뜨면 근심과 걱정이 밀려옵니다.
내가 잘못해서 생기는 고통,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억울하게 당하는 괴로움, 태산 같은 근심 걱정, 한 가지 문제를 겨우 해결하고 한숨을 돌리는가 싶은데 해결된 문제 보다 더 큰 문제들, 마치 바다에 파도가 밀려오듯 쉴새없이 고난과 고통의 문제가 밀려오는 게 인생살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도무지 고생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아깝고 소중한 인생살이가 어려운 문제를 피해 가고 도망쳐 가려해도 길이보이지 아니 합니다. 평탄한 길같이 보였는데 갑자기 절벽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갈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는 뒤돌아 갈 수도 없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자니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실망과 좌절감으로 인하여 얼마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학생들의 입시,
사업하는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
가장이 받는 긴장,
가정주부들이 만나는 허무감
아무도 인생의 고민과 고통과 괴로움에서 피할 자가 없습니다.
이렇게 마음 상하는 일만 생각하고 산다면 조금도 살맛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생의 의욕마저 상실하고 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인생의 삶의 모습입니다.
인류역사 자체가 수난사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모세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당대의 의인으로서 의와 선을 힘써 행하였던 욥도 많은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왜 나만 이렇게 어려움을 당해야 하는가?
왜 나만 이런 고통 때문에 속이 상해 울고 있어야 하는가?
반문할 수가 밖에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종류가 다를 뿐이지 어려움과 고통은 누구나 다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속상하는 일이 조금도 없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최근 모 잡지에서 독자들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에서 오는 나뿐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묻는 의견 조사를 한 일이 있습니다. 즉 '속이 상할 때 어떻게 하는가?'하는 질문에
자신들의 선택한 방법들이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응답했습니다.
그 다음 질문은 '당신이 선택한 방법 가운데 어느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를 만나서 속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 질문은 '당신은 그런 친구를 가지고 있느냐 있다면 몇이나 있느냐'라는 것이었는데 92.5%가 그런 친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더욱 속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들, 입시 문제, 직장 문제, 배우자, 자녀들의 문제, 병, 상대적인 박탈 감, 경쟁에서 뒤쳐지는 것 같은 기분, 다른 사람은 벤쳐 기업에 투자를 해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데도 생활 문제에 속상하는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 가야 하는지?
우리가 성장해오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어떤 아이들 보면 밖에 나가서 놀다 항상 얻어맞고 들어오는 애가 있습니다.
이 어린아이의 사정을 보면 딱하기 그지없습니다.
싸울 용기도 없고 힘도 없고 해보자니 도저히 안 됩니다.
속이 상해 견딜 수 없습니다. 견디다 못해 한번 용기를 내어서 해봤는데 진탕 얻어맞고 말았습니다.
돌아오면서 그저 돌아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악을 쓰며 온 동네가 떠나가라는 듯이 울면서 돌아옵니다.
엄마, 엄마'부르는 그 소리에는 한과 억울함과 갈망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한이 맺혀 돌아오는 그 아이의 어머는 그 속이 오죽하겠습니까?
이때 보면 어머니의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어떤 어머니는 '야 이 녀석아! 어쩌자고 그렇게 항상 얻어맞고만 들어오느냐.
이 못난 새끼야,
너도 이제는 이렇게 두들겨 패 주란 말이다"하고 속이 상해서 죄 없는 자기 새끼만 두들겨 팹니다.
이 어린것은 자기가 누구 새끼 인줄도 알지 못하고 얻어맞습니다.
동네 애들한테 매 맞은 것도 분한데 엄마까지 야단입니다.
어린것의 속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이는 울고 돌아오는 아이를 꼭 안아 주고 치마 자락으로 눈물 콧물을 닦아주시면서 위로해 줍니다.
'같이 때리는 것은 나쁜 일이지'.
남을 때리는 것은 못된 짓이란다.
내 아들 참 잘 했어, 그렇게 울고 나니 시원하겠다.'
그 때 어린것에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어머님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속상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찾아야 합니다.
다른데 찾아가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고통과 시련은 시험입니다
시험은 실력을 평가하여 보다도 더 큰상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 이 보잘것없는 나에게 이런 시험을 다 주십니까.
감사 합니다.
더 큰 시련이 닥쳐와도 달게 받겠습니다.
이 마음가짐이 될 때 이기는 자 길입니다.
세상살이도 하늘이 보기에 기뻐하고 선한 일이라면 어느 하나 인간 힘으로 막아지는 것 아닙니다.
악한자들이 다니엘을 결박하여 사자 굴에 던지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었습니다.
사자 굴속에 던저진 후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소관이었습니다.
풀 한포기, 나뭇잎 하나.
창조주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이루어지지 아니합니다.
“이 세상에 곤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 날 없었구나.
내 주 하나님 날 사랑하사오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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