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의 심리
낙서하는 심리를 크게 부류해보면 현실에 대하여 강한 불만이나 강한 욕구를 품고 있을 때 낙서로 표현하게 한다. 그것을 어딘가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사회적인 제도나 도덕적 규범에 비추어 용인되지 아니하여 직접표출하기가 어려운 경우 낙서로서 표현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대화일수도 있고 상대방과의 일방적인 대화의 형식이 낙서로 나타난다.
어떤 경우는 어릴 적부터 자주 습관적으로 낙서하는 것과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여 습관적인 영향으로 낙서를 하는데 또한 이러한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이 예술적 감각이 있다. 잔재주가 좋다고들 한다 . 심리학적으로 보았을 때, 자신의 내면의 무의식 세계를 표현하는 일로 낙서는 일상에서 무언가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색다른 일이 되며 영화 같은 삶까지는 아닐 찌라도 아니라도 뭔가 현제 생활에 변화 있는 삶을 꿈꾸고 있음을 엿 볼 수 있다.
낙서 주제는 사랑, 결혼, 인생, 학업, 종교 순
70년대 어느 대학이든 변소는 '불온낙서' 게시판이나 마찬가지였다. 학교는 이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변소 안 벽면에 오늘 한쪽이 쓰고, 다음날 한쪽은 지우는 숨바꼭질이 벌어졌다. 학교 측이 견디다 못해 '낙서금지' 팻말을 걸면 "학교의 '낙서금지' 낙서는 괜찮은가"란 댓글낙서가 붙기도 했다. 고민하던 대학 측은 결국 낙서를 양성화해 낙서를 줄여보자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75년대 어느 대학 신문은 낙서들을 분석한 결과도 있었다.
낙서가 가장 많았던 주제는 사랑과 섹스, 결혼 등으로 15.8%였고 인생 학업 종교가 그 뒤를 이었다. 문제는 "분류해보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낙서"가 전체의 17%로 사실상 1위였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분류해 발표한 낙서들에도 당시 대학생들의 생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들이 많았다.
"남자는 여자의 첫사랑을 구하고 여자는 남자의 끝 사랑을 구한다." "연애는 멋있는 여자, 결혼은 정숙한 여자" "금연이란 연애금지의 뜻이니라." "신은 죽었다-니체, 니체는 죽었다-신" "술은 사회악 마셔서 없애자" "진로(소주 이름)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공개 장소에서 낙서할 때의 환경도 작용했을 것이므로 심각하게 볼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변소 같은 혼자만의 공간에서 남의 눈을 의식 않고 할 말을 다하는 낙서가 아니라는 의미로서 "학생들의 무의식이나 마음 속 깊은 곳의 일단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는 의견이었다.
낙서를 광장으로 끌어내는 일은 대학에서 70년대 내내 시도됐다. 학교 측은 물론 학생회도 축제 때면 으레 낙서전시회 등을 열었고 교수들은 그런 학생들의 낙서를 분석하며 캠퍼스의 변모 상을 연구 분석했다. 당시 일반에 널리 퍼져 알려진 낙서로는,
"지구여 멈춰라, 내리고 싶다."
"E여대생들이여, 수준이 안 맞아서 못 놀겠다." - "웬 일이니, 우리는 더 이상 남학생을 울리지 않기로 했단다."
"남자들아, 모기 5천 마리의 저주를 받아라."
"요샌 야(野)스러운게 왕(王)이란다. 우리는 되도록 야하게 살아야한다는 걸 일찍 깨달아야 해."
"내가 제일 사랑하는 것- 앞 사람의 시험지/ 유급생."
"동양의 대식가- 묵자, 동양의 플레이보이- 노자, 활을 제일 잘 쏘는 이- 활명수."
"보긴 뭘 봐, 쓰긴 뭘 써, 밝히긴 뭘 밝혀."
"신의 딸인 내가 어찌 인간의 아들인 너를 사랑 할 소냐."
"몰라, 이 악마야, 핫도그야. - 당신의 악마는 핫 도구이군요."
"내가 사는 이유는 남에게 고독이, 불행이, 고통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사랑+눈물= 어머니" 등이다.
사람들은 흔히 다른 대화 수단에 좌절했거나 큰 분노로부터 스스로를 정화시킬 필요가 있을 때 낙서를 한다.
70년대 교수들은 당시 학생들의 낙서를 보며 “표현 욕구가 억압당해 이것이 왜곡된 형태로 발산됐다”고 우려했다. 정치현실은 참담하고 암울한데 정치적 의사표현이나 정치색을 드러낸 낙서는 감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니 대신 현실을 부정하고 비트는 낙서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70년대 내내 사람들의 마음과 표현을 각박하게 비틀고 짜며 분노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70년대 낙서족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 낙서족들은 지금 50, 60대의 사회 어른이 되었다. 시대의 아픔을 난센스 유머나 변소낙서로 희석하며 한 생을 보낸 그들은 지금 다시 세대 간 대화 단절을 느끼며 마음에 낙서를 전파력이 강한 인터넷의 힘을 빌려서 블로그 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낙서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자주 든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사회는 분명 열린사회인데 세대 간 계층 간 너무도 닫쳐 있고 서로 소통되지 아니하는
'우리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를 불어봅니다 (0) | 2009.12.24 |
---|---|
공고(工高) 간 전교 1등, 괴짜 취급하는 세상 정상을 향하여 (0) | 2009.12.22 |
냉정을 잃지 않는 사람 (0) | 2009.12.16 |
한국인이라는 긍지에 대하여 (0) | 2009.12.16 |
그대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0) | 2009.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