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경제전쟁 치열한 이 시대 이순신! | ||||||
<공개 변호>“그는 단군 이래 남북한을 통틀어 유일한 경제영웅입니다“ | ||||||
삼성특검으로 기소됐던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7월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민병훈 부장판사)로부터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았습니다. 법원 측의 이러한 판결에 대해 시민단체나 일부 언론은 면죄부를 줬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향후 고법-대법의 판결이 이어지겠으나 부자 대한민국을 만들어 내는데 기여했던 이건희가 죄인취급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당사자인 이건희의 고통이자, 한국 재계의 아픔일 수 있습니다. 법정에 서고 있는 이건희, 그 아픔이 무엇인지를 변호해봅니다. 대한민국은 1950년부터 3년간 전쟁을 치른 나라였습니다. 전쟁의 끝은 비극과 폐허,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삼성은 그런 비극과 폐허를 견뎌내며 대한민국을 성장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대기업입니다. 창업자 이병철, 대를 이어 이건희가 삼성을 오늘날과 같은 거대기업으로 만들어냈습니다. 단군 이래, 한반도의 남북을 통틀어 이런 기업인물이 과연 몇이나 있었습니까? 이건희는 단군 이래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한국이 낳은 경제영웅임이 틀림없습니다.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100인 이건희는 이번 재판과정에서 “삼성전자 같은 회사 하나를 키우려 해도 20년이 걸린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의 말은 사실입니다. 따져봅시다. 삼성전자의 2007년 총매출은 1.034억 달러였습니다. 전 세계 전기전자업계 매출의 톱3 였습니다. 년 1,000억 달러 이상 매출기업은 삼성전자, 지멘스, HP입니다. 이건희가 이끌었던 삼성전자가 세계 톱3 전기전자 기업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건희가 회장으로 재임할 당시인 2007년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140조원, 수출은 663억 달러, 임직원수가 25만 명에 달하는 거대회사였습니다. 일부의 시민단체-정치권-언론이 삼성을 압박, 괴롭힐 때 미국의 언론기관은 오히려 이건희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건희는 지난 2005년 4월, 국내 기업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TIME100)'에 뽑혔었습니다. 선정된 인물은 지도자와 혁명가, 예술가와 연예인, 기업인, 과학자와 사상가, 영웅과 우상 등 5개 부문에서 "세인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로 구성됐었습니다. 이건희는 기업인(Builders and Titans)부문에 선정됐습니다. 타임(Time)지는 "이건희가 무명의 삼성을 세계 가전 업계에서 소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업으로 급성장 시켰다"고 평가했었습니다.
"이건희를 비롯한 경영진이 삼성의 경영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혁신, 이병철 선대회장에 의해 창업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가전업체를 급발전 시켰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이회장의 경영철학인 "나는 경영진들에게 절대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상황에 대응하는 경영이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는 경영을 하고 있다."는 말도 인용 보도했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2005년 2월22일 미국 포춘(Fortune)지는 삼성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가운데 39위로 발표했습니다. 이때,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50위권에 한국 기업이 최초로 진입했습니다. 경영 실적 뿐 아니라 기업 경영 활동 전반에서도 삼성이 대한민국의 선도기업이며,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중 하나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미국의 엑손 모바일(41위), 독일의 지멘스(43위), 영국의 보다폰(49위)보다 앞섰습니다. 듀폰(37위), 월트 디즈니(36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업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 잡지는 "이건희가 1993년 이래 꾸준히 양보다 질을 강조하는 신경영을 실시해 왔으며,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를 극복하면서 '1등 전략'을 전개한 것이 삼성의 성공비결"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오늘날의 세계적 기업인 삼성은 그냥 굴러온 호박이 아니었습니다. 이건희가 스스로 신화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1987년. 부친인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작고하자 경영권을 승계했습니다. 그후 이건희는 만 20년간 경영했습니다. 취임 이듬해인 1988년, 자율경영, 기술 중시, 인간존중을 선언했습니다. 21세기 초일류기업을 비전으로 내걸었습니다. 이때 그가 했던 말이 기업경영의 명언이 됐습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소위 신경영 표어였습니다. 오너로서 자신의 회사였기에 죽고 살기로 키웠습니다. 그 속에는 이건희만이 가진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그는 25만 명을 고용했던 대기업 오너였습니다. 1가족을 평균 4인으로 치면 100만 명을 먹여 살려왔습니다. “경제전쟁, 이 시대 이순신“ 이건희는 1994년에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했습니다. 그는 “삼성은 더 이상 한국만의 삼성이 아닙니다. 신경영 선언에서 우리는 세계의 삼성으로 웅비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모든 인류는 우리의 고객입니다. 당장은 아닐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에는 우리의 고객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될 수 있습니다'는 것은 가능 상태이지만, 나는 이것을 현재 상태로 생각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만이 가능성을 현실화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큰 야망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그 야망이 아직도 그를 기다리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려 잘살게 하는데 크게 기여한 이건희가 죄인으로 법정에 서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원조였던 예수도 재세시에 법정에 섰었습니다. 예수와 비교하는 것은, 대한민국 경제를 살린 “경제적 의인”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는 “경제 전쟁이 치열한 이 시대의 이순신“인 셈입니다. 국가경제를 살리고, 지켜온 경제장군 입니다. 이건희가 당하고 있는 법정에서의 아픔은 대한민국 재계의 아픔이라는 게 필자의 결론입니다. ”한 자리 일터가 아쉬운 이때. 이건희, 참말로 그를 죄인이 아닌, 경제영웅으로 재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필자의 마지막 변론입니다. moonilsuk@korea.com | ||||||
2008/07/18 [15:05] ⓒ브레이크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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