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친구… 우리가 강화도령 앉힌 셈"
5년 전 노무현 대통령 불가론 폈던 김광일 전 YS비서실장
<이 기사는 weekly chosun 1994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 김광일 변호사
지난 2002년 대선 때 정치권에선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아니 될 10가지 이유’라는 글이 회자됐다. 당시 한나라당 유세장에서는 이 글의 내용이 화제가 됐고 민주당에선 “흑색 비방선전”이라며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다. 임기를 마친 노무현 대통령이 물러날 때를 즈음해 다시 이 글이 세간의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석에서 “5년 전의 그 사람의 예고가 꽤 들어맞은 것 같다”며 당시의 글 내용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고, 인터넷에서 글을 찾아보는 사람들도 있다. 당시 글을 쓴 사람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광일(69) 변호사다.
김 변호사는 인권 변호에 있어서 ‘노무현 변호사’의 선배다. 게다가 노무현 변호사의 정치 입문을 도왔던 주인공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광일 변호사의 인연은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
지난 5년간의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대한 소회를 듣고자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김광일 변호사에게 지난 2월 19일 연락했다. 하지만 비서를 통해 “장기 출장을 떠났고, 인터뷰는 어렵겠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하루 뒤 전화로 연결된 김 변호사는 “인터뷰 요청은 고맙지만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라며 “권력을 잃고 떠나가는 사람에게 쓴소리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경남 양산에서 등산하는 중”이라고 했다.
한때는 선배이자 동지로, 한때는 대선에서 적으로 만났던 노 대통령에 대해 그는 “지금은 비판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불쌍한 친구 아닌가” “그를 우리가 강화도령으로 앉혀놓은 것이나 다름없다”고도 했다. (강화도령은 강화로 유배당해 있다가 왕이 된 조선 철종(哲宗)을 뜻한다. 농사꾼으로 자라다가, 안동 김씨가 권력을 잡기 위해 왕으로 앉힌 ‘꼭두각시왕’이다.)
2002년 12월 6일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아니 될 10가지 이유’를 발표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할 때 김광일 변호사는 “나는 노무현 후보를 정계에 입문시키고, 노 후보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80년대 노무현 변호사를 인권 노동변호사로 알려지게 만든 1981년 ‘부림(釜林) 사건’의 변론을 부탁한 사람이 바로 김광일 변호사였다. 부림 사건은 부산지역 학생 재야운동권 인사 20여명이 독서클럽을 만들어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토론하다가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된 시국 사건이다.
김광일 변호사는 1987년 2월 노무현·문재인 변호사와 함께 부산극장 앞에서 열린 박종철 추모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고, 5공 시절 검찰이 노 변호사를 구속하려 했을 때 “그런 일로 변호사를 구속할 수 있느냐”면서 대한변협 인권위에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1988년 13대 총선에 나설 부산 재야인사를 추천하라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그는 노 변호사의 이름을 댔다. 당시 그는 “노 변호사가 구속영장청구 기각사건을 통해 성장했고 이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부산 지역 지도자급으로 활동하게 된 경력이 있어 내가 그를 추천하기가 쉬웠다”고 회고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부산 동구에서, 김 변호사는 부산 중구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노 대통령과 김 변호사가 다른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1990년 11월 3당(공화·민정·민주) 합당이 계기가 됐다. 김광일 변호사와 노 대통령 모두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 곁을 떠났지만 김 변호사는 정주영 회장의 통일국민당을 거쳐 다시 김 전 대통령의 품으로 돌아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반면 노 대통령은 민주당에 잔류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
족집게 예언으로 다시 화제된 (김광일 전 청와대 비서실장 한나라당 입당 성명)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아니 될 이유는 1. 그는 돌출적인 행동과 무분별한 발언으로 항상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균형 잡힌 정치감각과 건전한 인격을 갖춘 믿음직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노무현 후보의 지지자들 가운데 그를 잘 아는 사람은 소수이고,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 다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를 잘 안다는 소수는 물론이고 그를 잘 모르는 다수는 그의 정체를 바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의 정체를 바로 알게 되면 본능적으로 그를 지지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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