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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흔적

처녀 뱃사공

에헤야~ 봄 저어라, 데헤야~ 기다림 저어라
<그 품에 안기고 싶다 86> 저만치 강둑 너머 서성이는 봄을 기다리는 '악양 나룻터'
이종찬 (lsr) 기자    Email Article  Print Article 
Published 2007-02-02 17:23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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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야, 어서 달려가 봄 저어라
ⓒ2007 이종찬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군인 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낙동강 강바람이 앞가슴을 헤치면
고요한 처녀 가슴 물결이 이네
오라비 제대하면 시집 보내마
어머님 그 말씀이 수줍어질 때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처녀 뱃사공'(윤부길 작사, 한복남 작곡. 황정자 노래)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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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름다운 강가 한 귀퉁이에 오늘도 그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듯한 모습의 처녀 뱃사공 노래비가 있다
ⓒ2007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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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 나룻터 위에 세워진 처녀 뱃사공 노래비
ⓒ2007 이종찬
그 강가에 서면 은빛 그리움이 쪽빛 강물로 촐싹인다

그 눈부신 강가에 서면 저만치 강둑 너머 서성이는 봄을 애타게 기다리는 처녀 뱃사공의 은빛 그리움이 쪽빛 강물로 촐싹거린다. 그 쪽빛 강물 위에 주인 잃은 나룻배 두 척, 긴 장대로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어서 오빠가 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바닥까지 환하게 비치는 거울 속 같은 강에서는 은어떼가 거슬러 오르며 은빛 무지개를 톡톡 터뜨린다.

그 잔잔한 강가에 서면 고운 모래밭을 펼치며 굽이굽이 흘러가는 남강과 남강물로 목을 축이는 푸르른 하늘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다. 강둑 곳곳에는 처녀 뱃사공의 오랜 기다림처럼 축축 늘어진 버들강아지와 개나리가 시린 눈을 깜빡거리고 있고, 간혹 바람이 불 때마다 강물에 빠진 뭉개구름이 잔물결로 하얗게 부서진다.

그 아름다운 강가 한 귀퉁이에 오늘도 그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듯한 모습의 처녀 뱃사공 하나가 노래비에 기댄 채 아리따운 뺨을 턱받이하고 있다. 저만치 잔잔한 남강을 굽어보는 처녀 뱃사공의 두 눈은 살포시 감겨 있다. 마치 이 세상 모든 것이 끝나는 그날까지 그리운 그 누군가를 꼭 만나고 말겠다는 듯이.

이 노래비가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행열차'에 이어 두 번째로 즐겨 부른다는 '처녀 뱃사공' 노래비다. 경남 의령 들녘을 가로지르며 진주 쪽으로 흐르는 남강과 함안천이 하나가 되는 악양나루터(경남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122번지)에 둥지를 틀고 있는 이 노래비는 지난 2000년 10월 2일, 함안군에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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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뱃사공 하나가 노래비에 기댄 채 아리따운 뺨을 턱받이하고 있다
ⓒ2007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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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부신 강가에 서면 저만치 강둑 너머 서성이는 봄을 애타게 기다리는 처녀 뱃사공의 은빛 그리움이 쪽빛 강물로 촐싹거린다
ⓒ2007 이종찬
군에 간 오빠를 기다리며 나룻배를 저었던 두 자매의 슬픈 이야기

한국전쟁 때 군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오빠를 애타게 기다리며 장대나룻배로 남강 이쪽과 저쪽 사람들을 실어 날랐던 앳된 처녀 뱃사공의 슬픈 사연이 서린 대중가요 '처녀 뱃사공'. 1959년 가수 황정자가 불러 우리나라 사람들의 오랜 애창곡으로 자리매김한 '처녀 뱃사공'은 바로 이곳 함안군 대산면 악양나루터에서 처음 태어났다.

한국전쟁 휴전협정을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953년 9월. 유랑극단 단장이었던 윤부길(작고. 가수 윤향기. 복희의 아버지)씨가 가야장 공연을 마치고 대산장으로 가기 위해 처녀 뱃사공이 노를 젓는 장대나룻배를 타고 남강을 건넜다. 하지만 일행들이 악양나룻터에 닿았을 때에는 이미 날이 너무 저물어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유랑극단 일행은 비록 나룻터 뱃사공의 집이 허름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하룻밤 묵어가기로 했다. 그때 뱃사공의 집에는 박말순(작고, 당시 23세), 박정숙(61·창원 거주·당시 18세) 자매가 군에 간 오빠(박기중, 6·25때 전사)를 애타게 기다리며, 오빠 대신 뱃사공 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때 처녀가 강바람에 치마를 휘날리며 교대로 장대를 저어가며 길손을 건너주는 그 애처로운 모습을 본 윤부길씨는 악양나룻터를 떠나서도 나룻터의 아름다운 풍경과 처녀 뱃사공의 슬픈 사연을 쉬이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노랫말을 지은 윤씨는 1959년 작곡가 한복남씨에게 작곡을 부탁했다. 그 노래가 바로 '처녀 뱃사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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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뱃사공이 떠나버린 텅 빈 악양 나룻터
ⓒ2007 이종찬

지금은 장대나룻배를 젓는 처녀 뱃사공도 없고, 나룻배 뒷쪽에 모터까지 달아 옛 정취마저 사라졌다
ⓒ2007 이종찬
왜 '남강 강바람'을 '낙동강 강바람'이라고 했을까?

지난 1월 30일(화) 오후 3시. 여행작가 김정수(35)와 함께 의령에 있는 신라 고찰 수도사(주지 현담스님)에 갔다가 들렀던 경남 함안군 남강변에 있는 처녀 뱃사공 노래비와 악양나룻터. 이곳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앞까지만 하더라도 강을 건너주는 장대나룻배를 타지 않으면 쉬이 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처녀 뱃사공 노래의 뿌리가 이곳이란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지난 1997년 50여m 남짓한 길이의 악양교가 놓였다. 그리고 노래비까지 세워지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다. 더불어 처녀 뱃사공으로 유명했던 악양 나룻터 또한 그 생명을 끝마쳤고, 나룻배 또한 모터를 단 물고기를 잡는 배로 바뀌었다.

그날, 나그네가 악양교를 건너 처녀 뱃사공 노래비 앞에 섰을 때 노래비에 기대고 있는 처녀 뱃사공의 머리 위에 허연 낮달이 걸려 있었다. 마치 오래 전에 이곳 나룻터를 떠난 그 처녀 뱃사공이 악양 나룻터로 다시 돌아와 하늘에 걸린 낮달을 나룻배 삼아 노를 저으며 오빠를 찾아 나서기라도 하는 것처럼.

근데, 한 가지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은 처녀 뱃사공 노랫말 중 제일 처음 나오는 '낙동강'이란 글씨다. 이곳은 분명 낙동강이 아니라 '남강'이다. 근데, 노랫말을 지은 윤부길씨는 왜 남강이라 하지 않고 낙동강이라 했을까. 의령 저만치 남강과 낙동강이 합쳐지는 곳이 있긴 하지만 '남강 강바람에~'라고 하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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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나룻배를 타고 강에 나가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는다
ⓒ2007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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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강물 은어떼 데불고 썰물진다
ⓒ2007 이종찬
긴 장대 걸린 나룻배 두 척만 을씨년스럽게 남아

처녀 뱃사공 노래비를 뒤로 하고 악양 나룻터로 내려선다. 거기 긴 장대가 걸린 나룻배 두 척이 쪽빛 강물에 몸을 기우뚱거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장대나룻배를 젓는 처녀 뱃사공도 없고, 나룻배 뒷쪽에 모터까지 달아 옛 정취마저 사라졌다. 근데도 나룻배는 손님만 타면 금세라도 저만치 남강을 향해 천천히 미끄러질 것만 같다.

나룻터 옆 기암절벽 위에는 지금으로부터 140여 년 앞인 서기 1857년, 조선 철종 때 함안 사람이었던 안효순이 지었다는 악양루가 위태로이 서 있다. 그래. 한때에는 처녀 뱃사공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나룻배를 저으며 저 악양루를 휘돌아 남강 이 쪽과 저 쪽을 천천히 넘나들었으리라.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오빠를 강물에 그리며.

가시나야, 어서 달려가 봄 저어라
저만치 아스라한 들녘에 아지랑이 가물거린다

가시나야, 퍼뜩퍼뜩 기다림 저어라
강둑 곳곳에 버들강아지 개나리 노오란 꽃술 터뜨린다

새 각시야, 얼른얼른 그리움 저어라
쪽빛 강물 은어떼 데불고 썰물진다

새 각시야, 장대 후딱후딱 내 사랑 저어라
은빛 윤슬 알알이 터지는 남강따라 진달래 피어난다

-이소리, '남강 장대나룻배를 바라보며'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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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햇살에 빛나는 아름다운 남강
ⓒ2007 이종찬
☞가는 길/ 서울-대진고속도로-진주-마산 쪽 남해고속도로-함안 나들목-법수 쪽 지방도 1011번-함안천 다리 건너 좌회전-처녀 뱃사공 노래비

퍼온글 원본 : [관련글] 처녀뱃사공[kks782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