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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무대

창조한국당 지도체제 탓 아니다

지난 대선 때 뜻있는 이들의 시선을 모았던 창조한국당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이미 지적한 대로 대선자금 회계처리와 총선준비와 관련해 이견이 불거져 수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전 지도부가 사퇴하고 문국현 대표 단일지도체제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일단의 중앙위원들이 당내 민주화를 주장한 성명내용이 언론을 타고 있어 이래저래 어수선한 분위기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번 총선에서 완파당할 위기적 징후까지 보이고 있는 것이 지금의 창조한국당이다.

 

한때는 범여권을 대표할 수 있다는 비전에서 출발한 창조한국당과 문국현 대표가 왜 이렇게 어려운 처지가 되었을까? 원인분석이야 여러 갈래로 할 수 있겠지만 급조된 정당과 지도력의 한계다.

 

정치참여 3개월 만에 대통령을 하겠다는 문 대표의 포부가 국민에게 신뢰성 있게 전파되기엔 너무나 짧은 기간이었던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물론 그 이전에 대선에 뛰어들었다 하더라도 대통합민주신당 측의 후보단일화 압박전술에 휘말려 고건이나 정운찬 신세가 되지말란 법도 없으니, 대선 참여 시점을 두고 왈가불가하는 것은 그리 생산적인 논쟁은 아니다. 

 

그럼에도 문국현과 창조한국당의 패러다임이 사람중심의 성장모델과 복지시스템이라는 점, 지금 한국사회가 처한 양극화를 해소하고 선진화를 이룩할 수 있는 정책노선을 지녔다는 점에서 나는 여전히 가능태로서 창조한국당을 바라보고 싶다.

 

지금 보이는 다소 추한(?) 행태도 창조한국당이 더욱 여물어져 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과정으로 볼 수도 있고, 또 그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지도력이어야 국민이 신뢰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렇다 하더라도 창조한국당과 문국현 지도력이 쭉쭉 뻗어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원인진단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창조한국당이 급조된 정당이라거나 문국현의 지도력 부족, 문국현 팬클럽 중심의 당원구조, 당내민주화의 부족 등의 꼬투리 잡기 식의 원인분석은 별로 건설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창조한국당은 이미 그런 한계를 지니고 출발한 정당이기 때문이다. 인물과 당원,그리고 정당구조 등이 문국현당으로서의 한계를 가지고 출발한 정당이란 점은 사실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지금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이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지 그 문제점을 두고 누구의 책임이라는 식의 다툼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한 마디 더 사족을 달자. 지금은 총선을 앞둔 시점이니 일종의 전시라 할 수 있다. 전시에 의견이 다른 사령관이 많으면 전쟁은 필패하기 마련이다. 최악의 정책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정책이란 말을 새길 필요가 있다. 또 강을 건너면서 말을 갈아타지 않는 것처럼 기왕에 문국현 당으로 출발한 당이니 문국현 대표에게 전권을 맡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것이 1인 정당이기 때문에 비민주적이란 지적은 총선이 끝난 뒤에 해도 그리 늦지 않다. 그리고 그런 지적이 반드시 올바른 지적도 아니다. 정치선진국 어느 정당도 선거를 치룰 땐 특정인을 얼굴 마담으로 내세우기 마련이다. 창조한국당에 문국현만한 얼굴마담도 없지 않은가.

 

지금 중요한 것은 '창조한국당이 누가 지배하는 정당이냐'가 아니다. '지도체제가 비민주적이냐 아니냐'도 아니다. 집단이 위기에 처하면 집단을 구하기 위해 때론 비상하게 독재(혼자 결정하는 체제로서의 독재,딕테이십을 반드시 악으로 규정할 필요도 없다)도 필요한 법이다. 당의 존망이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의사결정과정을 단순화시킬 필요도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번 총선에서 창조한국당이 어느 만큼 생존가능성을 보여주느냐에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문 대표가 비례대표로 나가느냐, 지역구로 나가느냐에 있지도 않다. 핵심은 총선구도에서 어느 정도 대통합민주신당과 민노당의 한계를 대신 메워줄 세력으로서 인정받느냐에 있다.

 

그러자면 선거쟁점과 의제를 창조한국당이 어떻게 선점하고 이끌어나갈 수 있는가가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기할 뿐만 아니라 제기된 의제를 다른 정치세력과의 쟁투과정에서 어떻게 주도권을 가지고 다뤄나가느냐가 관건적 능력이다. 국민은 지금 창조한국당과 문대표에게 이 능력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지난 대선 때 문국현 후보와 창조한국당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의 차별화에 실패했다. 같은 범여권 인사로서 정동영을 대체할 만한 '기세'도 보여주지 못했다. 어차피 '세력'은 정동영 측에 있었으니 개혁상징성만이라도 차별화해 미래세력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했어야 했지만, 엉뚱하게도 노무현과의 차별성만 강조함으로써 그나마 잠재적 우군이라 할 수 있는 친노세력을 내버린 꼴이 되었다(사실 노무현과 유시민의 사회투자국가론과 문국현의 사람중심패러다임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구도배치에서 정동영 후보가 오히려 이명박과 1:1구도를 만들어냈다. 주류인 정동영을 비주류인 문국현이 극복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문국현과 창조한국당의 핵심적 한계는 창조한국당이 문국현당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세력들이 모여 선거대책을 주도했으니 문국현 대표의 특장점이 얼마나 잘 발휘된 대책본부였는지부터 의심해보는 것이 순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선거비용을 기존 정치판에서 쓰듯이 해온 선거대책지도부의 자질과 통큼(?)이 새로운 정당의 선거자금지출문화에 적합한 것인지도 따져 볼 필요도 있다.

 

그러나 창조한국당과 문국현 후보가 '사람중심 진짜경제'라는 새로운 의제제출에는 성공했지만 이를 이명박 후보와의 1:1 구도로 만드는 일에 실패한 것이 진짜 실패의 원인이다. 즉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정치력의 핵심인 선거능력을 보여주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시민사회에서 갓 정치를 시작한 부류가 아니라 기존 정치판에서 정치력을 갈고 닦았다는 것으로 특장점을 삼은 인사와 부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어차피 시민사회출신의 상큼함이나 도덕성이 아니라 선거능력이었고, 그 능력에서 제1의 능력이 선거구도잡기능력인데 이미 말한 대로 정동영 후보를 부차화시키고 이명박과의 1:1구도를 만드는 데 실패했으니 그에 대한 책임의식이 더 앞서야 하는 것이다.

 

결론을 정리해보자. 지금의 창조한국당 문제는 당이 문국현당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효율적인 정당조직으로 전열을 정비해 오는 총선을 맞이할 것인가에 있다. 그러자면 의사결정구조를 단일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서 문국현 대표 단일체제로 선거를 준비하는 것은 그나마 의미있는 일이다.

 

아울러 총선에서의 구도잡기를 능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인사의 전면배치가 우선이다. 가능하면 뉴 패러다임을 잘 알릴 수 있는 참신한 인사들이면 더욱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런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전략기획실을 구성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사실 지난 대선은 문국현이란 참신한 패러다임을 유통시키는 인사들이 기존 정치 패러다임에 익숙한 인사들이었다는 점에서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은 측면도 좀 있다. 기존 정치인들의 능력과 기술이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니지만 뉴패러다임이란 내용물(콘텐츠)을 전달하는 유통업자의 대방을 맡기기에는 딱히 적합한 인물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지금 창조한국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파열음은 매우 비생산적이면서도 비본질적이다. 당이 민주성을 확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 자체가 와해될 수도 있는 위기적 상황에서 한가한 소리가 될 수도 있다. 또 당내 민주주의라는 게 반드시 여럿이 과점을 하면 민주화된 것이고 혼자하면 비민주적이라는 발상도 오래전 발상이다.

 

총재제로 가느냐 최고위원제로 가느냐의 문제는 아주 사소한 시비의 하나일 뿐이며 당내민주주의와도 무관한 문제다. 그보다는 당원이 들러리가 아니라 주인의식을 갖도록 하는 진성당원제가 훨씬 더 중요한 과제이며 이는 문국현 패러다임을 중심으로 이미 어느 정도 해소된 문제다.

 

거듭 말하자면 중요한 것은 당장의 생존법과 미래세력으로서의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다. 선진적 패러다임제출 이외에 부족했던 점, 즉 선거구도잡기와 신속한 의사결정, 그리고 일사분란한 추진력 등이 필요한 때다. 이런 요소들을 훌륭하게 결합해도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 어려운 악조건이다. 이런 마당에 내부전열을 정비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느라 미래를 방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창조한국당과 문국현 패러다임에 기대를 거는 숱한 국민과 지지자를 욕보이는 일이다.

 

선거승리를 위한 구도를 잡는 일에 모두가 매달려도 시원찮은 판이다. 신속한 당체제정비와 더불어 제출된 뉴 패러다임 의제를 성공적으로 관철할 수 있는 팀을 구성하는 것이 급선무다. 경쟁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이 원로들의 총선불출마와 손학규 중심의 체제로 가닥을 잡아나가는 마당에 그 대체세력을 자임한 창조한국당이 우왕좌왕하는 것은 국민과 지지자를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경쟁상대가 만든 구도 좇아가기가 아니라 스스로 구도를 만들고 주도권을 확보하는 본질적 사안에 초점을 맞추는 창조한국당이라야 미래를 말할 수 있다.

글 김석수 2008.02.08 14:14 ⓒ 2008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