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말] "약진 못하면 창조한국당 흐지부지 될 것"
제정남 기자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의 눈가에 끝내 눈물이 고였다.
2007년 12월 19일 오후 6시. TV 화면에 6퍼센트 내외의 출구조사결과가 문자로 공표되자 영등포 창조한국당 당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현장상황을 기록하는 출입기자들이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만이 간간히 흘러나왔다. 침묵을 깬 것은 문 후보였다.
“끝까지 기권하지 않으시고 투표장에 나오셔서 직접 저를 찍어주신 100만이 훨씬 넘는 유권자 여러분들의 꿈과 열정을 실현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눈가에 맺히는 아쉬움을 애써 감춘 문 후보는 지지자들이 전달하는 꽃다발을 당직자의 몫으로 돌린 후 자택으로 발길을 옮겼다. 떠나가는 발걸음 보다 더욱 빨리 “문국현!”을 외치던 지지자들의 함성이 수그러들었다.
137만5498표, 5.82퍼센트. 성적표를 받아든 창조한국당은 호기있게 뛰어든 대선을 ‘실패’로 규정했다. 범여권이 붕괴·와해되면 이를 흡수한 뒤, 후보단일화의 이슈도 선점할 것이라 예상했던 문국현 진영의 반년에 걸친 꿈은 이렇게 마감됐다.
대선 이후 2주간 공백기를 가진 문국현은 신년 초 정치권에 다시 등장했다. “기업활동에서 10여년 빨리 물러선 만큼 그 기간 동안은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란 공언을 지키기 위해서다. 공동대표 신분으로 기자들 앞에선 그는 이번에는 “총선에서 제1야당이 되겠다”는 구호를 들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표가 한나라당 출신의 손학규 씨가 됐으니 이제 주요 3개 정당 모두가 한나라당이 됐다”는 추가 설명도 뒤 따랐다. 한나라당, 이회창의 자유신당, 손학규의 통합신당을 비꼬는 것이었다.
대선 실패 원인
창조한국당이 선언한 총선의 목표는 국회의원 총의석의 10퍼센트 수준인 30석에 500만명의 지지층 확보다. “이정도가 되면 국정운영의 대안세력으로서 확고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단순계산으로만도 대선득표의 세 배에 이른다.
과연 총선에서 문국현은 도약 할 수 있을까? 곳곳에 드러난 암초를 봐서는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미래에 대한 계획과 전망은 과거에 대한 평가로부터 출발하기 마련이다. 창조한국당은 대선 실패의 이유를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다. 캠프의 정책자문단장을 맡았다가 이후 대선평가를 담당한 신봉호 교수는 선거인력 부족, 단일화논의로 사표심리 발생, 노무현 심판세력으로 부각 실패, 선거조직의 미비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송재혁 서울선대본부장 등 지역 책임자들은 중앙당과 지역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고, 정당이 급조되면서 지역 조직을 꾸리는 데에만 선거기간 내내 정력을 소비하며 제대로 된 운동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대선기간 문국현 중앙캠프에서 일한 실무진은 280여 명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이 자원봉사자였다. 자원봉사자들이다 보니 출·퇴근 시간은 제멋대로였으며 캠프 내부 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일부 상근 당직자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자원봉사자를 관리하기란 애당초 요원한 일이었다.
상근당직자들도 헤매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 1월 13일 실시된 당 대선평가토론회에 참석한 당직자들은 “중앙선대위에 누가 있었는지도 연락처도 몰랐다”고 줄이어 토로했다. 캠프가 철저히 일부 간부진을 중심으로 운영돼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문국현 역시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신년 초 기자들과의 첫 간담회 자리에서 “상근 당직자를 30명 이상으로 했어야 했다. 자원봉사가 많았는데 이를 잘 조직하려면 상근당직자들이 받쳐줘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선거조직의 가동도 원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충청지역의 한 선거담당자는 “창당과정에서 지역에서 스스로 돈을 만드는 등 열정을 가지고 달려들었는데 집권을 향한 로드맵도 제시되지 않고 선거를 치렀다”면서 “선거가 진행될수록 중앙당 지시를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의 경우 5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선거전에 뛰어 들었지만 조직 관리에만 허덕인 것으로 평가됐다.
문국현 공동대표의 지나친 측근정치도 캠프의 사기를 저하시킨 것으로 보인다. 대선시 공보팀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문 후보의 측근들이 자기 의견 관철을 위해 후보만 찾아가 유세 일정에 차질도 많았다.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일했던 사람은 자숙해야 한다. 지역에서 일정이 변경된 것에 대한 항의에 해명하는 데 민원실이 시간을 다 보내서야 되겠느냐”고 되돌아 봤다. 대선이 끝난 직후인 12월 20일엔 문 대표와 유한킴벌리에서부터 함께 일해 온 비서실 관계자도 일터로 돌아갔다. 그후에도 “문대표는 눈과 귀가 멀었다”는 말은 계속 나왔다.
조직운영 문제점이 노출된 것에 덧붙여 선거전반에 대한 전략의 실패도 창조한국당으로선 곱씹어 볼 대목이다.
당초 이번 대선의 구도는 범여권은 원하지 않았지만 한나라당의 오랜 준비로 인해 ‘경제’와 ‘노무현 심판론’으로 짜여져 있었다. 하지만 창조한국당은 철저히 ‘이명박 대항마’로 선거를 이끌어 갔다. 이로 인해 참여정부의 뒤를 계승하는 대통합민주신당과 창조한국당은 한솥밥으로 인식됐다. 문국현 캠프 구성원의 다수가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었던 이유도 크다.
전략실패는 곧바로 단일화 논의의 희생양으로 귀결됐다. 문국현 캠프는 범여권의 지리멸렬을 어부지리로 삼아 단일화 논의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되고자 희망했다. 이 같은 희망의 실현을 위해 문국현은 “정동영 후보가 사퇴하라”→“토론회에서 사퇴이유를 가르쳐 주겠다”→“사퇴요구를 철회한다”→“시민사회원로에게 단일화 논의를 맡기자”→“독자 완주하겠다”라는 식의 고군분투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 같은 문국현의 행동은 대중들에게 ‘갈지자 행보’로 밖에 인식되지 않았다.
문제는 여전
자 그럼, 오는 4월 9일 치러질 총선을 통해 제1야당으로 우뚝 서겠다고 공언한 창조한국당은 대선기간 노정된 위와 같은 문제를 극복했을까? 현재로선 대선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를 노출하며 좌충우돌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중앙당 사정을 살펴보자. 대선 이후 문국현 공동대표는 캠프관계자 및 당직자들에게 2주간의 휴가를 제안했다. 선거기간 내 쌓인 피로를 풀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자는 이유였다. 이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창조한국당은 재충전은 커녕 내부역량이 급속도로 방전되기 시작했다.
범여권 후보단일화 찬·반으로 입장이 갈렸던 당직자중 내상을 입은 이의 상당수가 당을 떠났다. 장유식 대변인과 고원 전략기획단장이 대표적이다. 당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내분으로 상처가 생겼다. 큰 문제의 발단은 96억9천500여만원이 들어간 대선자금 사용문제였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문 대표 측근 ㅈ씨가 김영춘 의원을 지목해 유세차량 계약에서 10억원 규모의 횡령의혹을 제기했고, 문 대표가 직접 전주에 위치한 업체를 찾아 실사에 나섰다. 이에 김 의원 측 등은 ㅈ씨의 경질을 강하게 주장하며 명예회복을 위한 검찰 고소를 심각하게 고려했다. 과정에서 김갑수 대변인과 김헌태 정무특보는 문 대표에게 내분으로 치닫는 상황에 대한 충고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해당 사건이 언론에 ‘창조한국당 내홍’ 등의 주제로 보도가 되기 시작하자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것으로 내부 정리됐다.
1월 11일 경엔 한 자원봉사자가 주요 당직자를 폭행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상근당직자가 자원봉사자를 관리하려 하자 불만을 품은 봉사자가 폭언과 함께 폭행을 가해 주요 당직자 ㄱ씨의 얼굴에 상처를 입힌 것. 이상에 거론된 일련의 사건을 접해온 인터넷팀과 공보팀 상근자들은 “질서도 위계도 신뢰도 없는 정당에 더 이상 못 있겠다”며 줄줄이 중앙당을 떠났다.
대선캠프 직능본부에서 일한 한 당직자는 “임금을 못 받는 상황이니 만큼 지도부가 총선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며 당직자를 격려해야 하는 데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면서 “오히려 중앙당 슬림화 이야기가 나와 실직의 위기에 처해있다”고 토로했다.
문 대표의 측근정치에 대한 불만은 대선 이후에도 여전하다. 1월 중순경 당을 떠난 한 관계자는 “대표 비서실이 측근 인사들로 채워지며 당직자들이 불만을 표시했었다”면서 “충언을 하던 사람들은 ‘할 만큼 했다’면서 손을 털고 나간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당에 남아 있는 분들이 계시지만 실무를 하던 사람들이 아니어서 업무에 공백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무엇보다 대선 패배를 책임지는 지도부가 없다는 것도 지지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킨다는 평가다. 문국현 대표는 지난 1월 13일 당 대선평가토론회에서 “제가 부족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사죄(?)를 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었다. 측근정치, 전략실패,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 등이 대선패배의 한 축으로 평가되지만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없이 고스란히 총선지도부에 포진해 있다. 이는 인재난 때문이기도 하다.
창조한국당 지역조직도 자금난과 인력난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다. 일부 지역에서는 중앙당의 도움없이 개인 출혈로 총선을 치르자는 결의를 하고 있지만, 다수 지역에서는 총선 준비 자체가 불투명하다. 중앙당에서 지역으로 내려가는 교부금도 1월 말에야 최초 집행될 것으로 알려진다. 문국현 대표는 “총선은 출마하는 이들이 각자가 돈을 낸다”면서 “창업도 처음에는 돈이 많이 들어가지만 나중에는 차츰 나아진다”고 말했다.
큰 선거 승패의 7할 이상을 점한다는 ‘구도’에 대한 고민도 아직 부재하다. 대선 시 발목을 움켜잡았던 ‘단일화 논의’는 총선에서 ‘선거연합’으로 부활할 것이 자명한 실정인데 대응 전략이 없다. 문 대표는 “통합신당과 선거연합은 절대 없다”면서도 “개개인의 참여는 기대한다. 문은 항상 열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단일화는 없다. 올 사람은 와라”던 대선 때의 모습과 완벽히 일치한다. 총선 기치를 “사람중심 진짜경제란 정책이미지로 잡아갈 것”이란 것도 대선 전략 우려먹기에 지나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이대로 가다간 대선 후보 이미지 하나로 총선을 치르는 유일한 정당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자유신당 창당 후 ‘신보수 노선’을 들고 나와 총선 구도의 선점에 주력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와중에 “전 지역구 출마의 고집이 당의 진로를 걸어 잠그는 것”이란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총선에서 원내진출이 여의치 않을 경우 당의 존립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는 만큼 실리를 위해 범여 세력과 연대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의 친동생이자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에서 문국현 호로 갈아 타기 한 김두수 중앙위원이 이 같은 주장을 하는 대표적 인사로 알려진다.
물론 대선을 통한 성과도 있다. 이명박 당선자와의 차별화로 야권세력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정책정당의 이미지도 심어줬다. 사표심리가 발동하는 와중에 138만명에 이르는 지지층을 결집시킨 것도 큰 재산이다. 특히 대선이 끝난 후에도 4천명이 늘어나 2만8천명에 이르는 당원을 확보한 것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총선서 약진 못하면 흐지부지
어떤 방법이 됐든 창조한국당은 오는 총선을 필사적으로 임할 각오다. 김영춘 의원의 말마따나 “총선에서 약진하지 못하면 창조한국당은 흐지부지”될 것이 뻔하기때문이다. 앞서 문국현 대표는 총선 목표를 의석 30석이라고 했지만 당내에서는 원내교섭단체인 20석을 최대치로 보고 있다. 정당투표 15퍼센트 득표로 비례의원 10석에 지역구 10석을 합한 수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주요당직자 전원이 서울에 출마한다는 논의를 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지역구 돌파에 회의적 분위기가 강하다. 서울 마포을에서 출마 준비 중인 정범구 전 의원은 그의 출판기념회에서 “서울에 창조한국당의 깃발을 반드시 꽂겠다”고 호언했는데, 이는 돌려서 말하면 정 전 의원을 제외하고는 당선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 거의 없다는 의미다.
일단 문국현 대표는 자신의 거처인 서울 도곡동에서 출마를 하기 보단 비례의원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당선 가능권의 앞 순번보다는 승부수를 띄운다는 의미로 뒷 번호를 받아 전국 선거를 진두 지휘하겠다는 계획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선거결과에 따라 18대 국회에서 문국현 의원을 보지 못할 경우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창조한국당 김영춘 의원은 “어느 정도 의석을 확보할 지는 내부가 얼마만큼의 준비를 하는 지가 문제”라며 “세력과 명분으로 바람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정당과의 싸움이 우선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실력을 늘리는 그런 노력이 선거기간 계속될 것”이라 전망했다.
대선 때 캠프의 정무특보를 맡았다가 이후 손을 놓은 김헌태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총선 이전에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 내고 (정계개편 등) 변화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겠지만 현재 모습대로라면 전망이 어둡다”면서 “변화 속에 성과를 재편·확대·강화할 때 기회가 올 것”이라 조언했다. 당 활동 참여에 회의적인 입장을 밝힌 그는 “당원은 아니지만 문 대표의 자문역할은 할 것이다”고 말했다.
2007년 12월 19일 오후 6시. TV 화면에 6퍼센트 내외의 출구조사결과가 문자로 공표되자 영등포 창조한국당 당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현장상황을 기록하는 출입기자들이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만이 간간히 흘러나왔다. 침묵을 깬 것은 문 후보였다.
“끝까지 기권하지 않으시고 투표장에 나오셔서 직접 저를 찍어주신 100만이 훨씬 넘는 유권자 여러분들의 꿈과 열정을 실현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눈가에 맺히는 아쉬움을 애써 감춘 문 후보는 지지자들이 전달하는 꽃다발을 당직자의 몫으로 돌린 후 자택으로 발길을 옮겼다. 떠나가는 발걸음 보다 더욱 빨리 “문국현!”을 외치던 지지자들의 함성이 수그러들었다.
137만5498표, 5.82퍼센트. 성적표를 받아든 창조한국당은 호기있게 뛰어든 대선을 ‘실패’로 규정했다. 범여권이 붕괴·와해되면 이를 흡수한 뒤, 후보단일화의 이슈도 선점할 것이라 예상했던 문국현 진영의 반년에 걸친 꿈은 이렇게 마감됐다.
대선 이후 2주간 공백기를 가진 문국현은 신년 초 정치권에 다시 등장했다. “기업활동에서 10여년 빨리 물러선 만큼 그 기간 동안은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란 공언을 지키기 위해서다. 공동대표 신분으로 기자들 앞에선 그는 이번에는 “총선에서 제1야당이 되겠다”는 구호를 들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표가 한나라당 출신의 손학규 씨가 됐으니 이제 주요 3개 정당 모두가 한나라당이 됐다”는 추가 설명도 뒤 따랐다. 한나라당, 이회창의 자유신당, 손학규의 통합신당을 비꼬는 것이었다.
2007년 12월 18일 저녁 문국현 후보가 서울역에서 마지막 유세를 하고 있다 |
ⓒ 월간말 |
대선 실패 원인
창조한국당이 선언한 총선의 목표는 국회의원 총의석의 10퍼센트 수준인 30석에 500만명의 지지층 확보다. “이정도가 되면 국정운영의 대안세력으로서 확고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단순계산으로만도 대선득표의 세 배에 이른다.
과연 총선에서 문국현은 도약 할 수 있을까? 곳곳에 드러난 암초를 봐서는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미래에 대한 계획과 전망은 과거에 대한 평가로부터 출발하기 마련이다. 창조한국당은 대선 실패의 이유를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다. 캠프의 정책자문단장을 맡았다가 이후 대선평가를 담당한 신봉호 교수는 선거인력 부족, 단일화논의로 사표심리 발생, 노무현 심판세력으로 부각 실패, 선거조직의 미비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송재혁 서울선대본부장 등 지역 책임자들은 중앙당과 지역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고, 정당이 급조되면서 지역 조직을 꾸리는 데에만 선거기간 내내 정력을 소비하며 제대로 된 운동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대선기간 문국현 중앙캠프에서 일한 실무진은 280여 명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이 자원봉사자였다. 자원봉사자들이다 보니 출·퇴근 시간은 제멋대로였으며 캠프 내부 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일부 상근 당직자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자원봉사자를 관리하기란 애당초 요원한 일이었다.
상근당직자들도 헤매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 1월 13일 실시된 당 대선평가토론회에 참석한 당직자들은 “중앙선대위에 누가 있었는지도 연락처도 몰랐다”고 줄이어 토로했다. 캠프가 철저히 일부 간부진을 중심으로 운영돼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문국현 역시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신년 초 기자들과의 첫 간담회 자리에서 “상근 당직자를 30명 이상으로 했어야 했다. 자원봉사가 많았는데 이를 잘 조직하려면 상근당직자들이 받쳐줘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선거조직의 가동도 원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충청지역의 한 선거담당자는 “창당과정에서 지역에서 스스로 돈을 만드는 등 열정을 가지고 달려들었는데 집권을 향한 로드맵도 제시되지 않고 선거를 치렀다”면서 “선거가 진행될수록 중앙당 지시를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의 경우 5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선거전에 뛰어 들었지만 조직 관리에만 허덕인 것으로 평가됐다.
문국현 공동대표의 지나친 측근정치도 캠프의 사기를 저하시킨 것으로 보인다. 대선시 공보팀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문 후보의 측근들이 자기 의견 관철을 위해 후보만 찾아가 유세 일정에 차질도 많았다.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일했던 사람은 자숙해야 한다. 지역에서 일정이 변경된 것에 대한 항의에 해명하는 데 민원실이 시간을 다 보내서야 되겠느냐”고 되돌아 봤다. 대선이 끝난 직후인 12월 20일엔 문 대표와 유한킴벌리에서부터 함께 일해 온 비서실 관계자도 일터로 돌아갔다. 그후에도 “문대표는 눈과 귀가 멀었다”는 말은 계속 나왔다.
조직운영 문제점이 노출된 것에 덧붙여 선거전반에 대한 전략의 실패도 창조한국당으로선 곱씹어 볼 대목이다.
당초 이번 대선의 구도는 범여권은 원하지 않았지만 한나라당의 오랜 준비로 인해 ‘경제’와 ‘노무현 심판론’으로 짜여져 있었다. 하지만 창조한국당은 철저히 ‘이명박 대항마’로 선거를 이끌어 갔다. 이로 인해 참여정부의 뒤를 계승하는 대통합민주신당과 창조한국당은 한솥밥으로 인식됐다. 문국현 캠프 구성원의 다수가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었던 이유도 크다.
전략실패는 곧바로 단일화 논의의 희생양으로 귀결됐다. 문국현 캠프는 범여권의 지리멸렬을 어부지리로 삼아 단일화 논의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되고자 희망했다. 이 같은 희망의 실현을 위해 문국현은 “정동영 후보가 사퇴하라”→“토론회에서 사퇴이유를 가르쳐 주겠다”→“사퇴요구를 철회한다”→“시민사회원로에게 단일화 논의를 맡기자”→“독자 완주하겠다”라는 식의 고군분투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 같은 문국현의 행동은 대중들에게 ‘갈지자 행보’로 밖에 인식되지 않았다.
문제는 여전
자 그럼, 오는 4월 9일 치러질 총선을 통해 제1야당으로 우뚝 서겠다고 공언한 창조한국당은 대선기간 노정된 위와 같은 문제를 극복했을까? 현재로선 대선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를 노출하며 좌충우돌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중앙당 사정을 살펴보자. 대선 이후 문국현 공동대표는 캠프관계자 및 당직자들에게 2주간의 휴가를 제안했다. 선거기간 내 쌓인 피로를 풀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자는 이유였다. 이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창조한국당은 재충전은 커녕 내부역량이 급속도로 방전되기 시작했다.
범여권 후보단일화 찬·반으로 입장이 갈렸던 당직자중 내상을 입은 이의 상당수가 당을 떠났다. 장유식 대변인과 고원 전략기획단장이 대표적이다. 당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내분으로 상처가 생겼다. 큰 문제의 발단은 96억9천500여만원이 들어간 대선자금 사용문제였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문 대표 측근 ㅈ씨가 김영춘 의원을 지목해 유세차량 계약에서 10억원 규모의 횡령의혹을 제기했고, 문 대표가 직접 전주에 위치한 업체를 찾아 실사에 나섰다. 이에 김 의원 측 등은 ㅈ씨의 경질을 강하게 주장하며 명예회복을 위한 검찰 고소를 심각하게 고려했다. 과정에서 김갑수 대변인과 김헌태 정무특보는 문 대표에게 내분으로 치닫는 상황에 대한 충고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해당 사건이 언론에 ‘창조한국당 내홍’ 등의 주제로 보도가 되기 시작하자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것으로 내부 정리됐다.
1월 11일 경엔 한 자원봉사자가 주요 당직자를 폭행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상근당직자가 자원봉사자를 관리하려 하자 불만을 품은 봉사자가 폭언과 함께 폭행을 가해 주요 당직자 ㄱ씨의 얼굴에 상처를 입힌 것. 이상에 거론된 일련의 사건을 접해온 인터넷팀과 공보팀 상근자들은 “질서도 위계도 신뢰도 없는 정당에 더 이상 못 있겠다”며 줄줄이 중앙당을 떠났다.
대선캠프 직능본부에서 일한 한 당직자는 “임금을 못 받는 상황이니 만큼 지도부가 총선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며 당직자를 격려해야 하는 데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면서 “오히려 중앙당 슬림화 이야기가 나와 실직의 위기에 처해있다”고 토로했다.
문 대표의 측근정치에 대한 불만은 대선 이후에도 여전하다. 1월 중순경 당을 떠난 한 관계자는 “대표 비서실이 측근 인사들로 채워지며 당직자들이 불만을 표시했었다”면서 “충언을 하던 사람들은 ‘할 만큼 했다’면서 손을 털고 나간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당에 남아 있는 분들이 계시지만 실무를 하던 사람들이 아니어서 업무에 공백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무엇보다 대선 패배를 책임지는 지도부가 없다는 것도 지지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킨다는 평가다. 문국현 대표는 지난 1월 13일 당 대선평가토론회에서 “제가 부족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사죄(?)를 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었다. 측근정치, 전략실패,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 등이 대선패배의 한 축으로 평가되지만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없이 고스란히 총선지도부에 포진해 있다. 이는 인재난 때문이기도 하다.
창조한국당 지역조직도 자금난과 인력난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다. 일부 지역에서는 중앙당의 도움없이 개인 출혈로 총선을 치르자는 결의를 하고 있지만, 다수 지역에서는 총선 준비 자체가 불투명하다. 중앙당에서 지역으로 내려가는 교부금도 1월 말에야 최초 집행될 것으로 알려진다. 문국현 대표는 “총선은 출마하는 이들이 각자가 돈을 낸다”면서 “창업도 처음에는 돈이 많이 들어가지만 나중에는 차츰 나아진다”고 말했다.
큰 선거 승패의 7할 이상을 점한다는 ‘구도’에 대한 고민도 아직 부재하다. 대선 시 발목을 움켜잡았던 ‘단일화 논의’는 총선에서 ‘선거연합’으로 부활할 것이 자명한 실정인데 대응 전략이 없다. 문 대표는 “통합신당과 선거연합은 절대 없다”면서도 “개개인의 참여는 기대한다. 문은 항상 열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단일화는 없다. 올 사람은 와라”던 대선 때의 모습과 완벽히 일치한다. 총선 기치를 “사람중심 진짜경제란 정책이미지로 잡아갈 것”이란 것도 대선 전략 우려먹기에 지나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이대로 가다간 대선 후보 이미지 하나로 총선을 치르는 유일한 정당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자유신당 창당 후 ‘신보수 노선’을 들고 나와 총선 구도의 선점에 주력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와중에 “전 지역구 출마의 고집이 당의 진로를 걸어 잠그는 것”이란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총선에서 원내진출이 여의치 않을 경우 당의 존립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는 만큼 실리를 위해 범여 세력과 연대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의 친동생이자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에서 문국현 호로 갈아 타기 한 김두수 중앙위원이 이 같은 주장을 하는 대표적 인사로 알려진다.
물론 대선을 통한 성과도 있다. 이명박 당선자와의 차별화로 야권세력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정책정당의 이미지도 심어줬다. 사표심리가 발동하는 와중에 138만명에 이르는 지지층을 결집시킨 것도 큰 재산이다. 특히 대선이 끝난 후에도 4천명이 늘어나 2만8천명에 이르는 당원을 확보한 것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총선서 약진 못하면 흐지부지
어떤 방법이 됐든 창조한국당은 오는 총선을 필사적으로 임할 각오다. 김영춘 의원의 말마따나 “총선에서 약진하지 못하면 창조한국당은 흐지부지”될 것이 뻔하기때문이다. 앞서 문국현 대표는 총선 목표를 의석 30석이라고 했지만 당내에서는 원내교섭단체인 20석을 최대치로 보고 있다. 정당투표 15퍼센트 득표로 비례의원 10석에 지역구 10석을 합한 수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주요당직자 전원이 서울에 출마한다는 논의를 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지역구 돌파에 회의적 분위기가 강하다. 서울 마포을에서 출마 준비 중인 정범구 전 의원은 그의 출판기념회에서 “서울에 창조한국당의 깃발을 반드시 꽂겠다”고 호언했는데, 이는 돌려서 말하면 정 전 의원을 제외하고는 당선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 거의 없다는 의미다.
일단 문국현 대표는 자신의 거처인 서울 도곡동에서 출마를 하기 보단 비례의원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당선 가능권의 앞 순번보다는 승부수를 띄운다는 의미로 뒷 번호를 받아 전국 선거를 진두 지휘하겠다는 계획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선거결과에 따라 18대 국회에서 문국현 의원을 보지 못할 경우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창조한국당 김영춘 의원은 “어느 정도 의석을 확보할 지는 내부가 얼마만큼의 준비를 하는 지가 문제”라며 “세력과 명분으로 바람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정당과의 싸움이 우선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실력을 늘리는 그런 노력이 선거기간 계속될 것”이라 전망했다.
대선 때 캠프의 정무특보를 맡았다가 이후 손을 놓은 김헌태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총선 이전에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 내고 (정계개편 등) 변화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겠지만 현재 모습대로라면 전망이 어둡다”면서 “변화 속에 성과를 재편·확대·강화할 때 기회가 올 것”이라 조언했다. 당 활동 참여에 회의적인 입장을 밝힌 그는 “당원은 아니지만 문 대표의 자문역할은 할 것이다”고 말했다.
기사입력 : 2008-01-23 08:58:36
최종편집 : 2008-01-25 10:32:25
최종편집 : 2008-01-25 10:32:25
ⓒ월간 말
'정치 무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文 “대운하 반대세력과 선거제휴” (0) | 2008.02.04 |
---|---|
아버지의 이름으로 … 정치인 2세들 4·9총선 출사표 [중앙일보] (0) | 2008.01.30 |
창조한국당+문국현…이대로 문드러지나 (0) | 2008.01.26 |
정범구 "문국현 대표 총선전면에 나서야" (0) | 2008.01.21 |
'문국현 효과'와 2012 대선 (0) | 2008.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