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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공무원은 영혼이없다"? 관가에서는 지금

저 사람이 왜 저 자리에…." 요즘 공직사회는 혼돈에 빠져 있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失政)에 상당한 책임이 있거나 '코드 맞추기'에 앞장섰던 공무원들이 이명박 정부에서도 승승장구할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 불문하고 일만 잘하면 된다"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인사 철학'에 대한 의문도 나오고 있다. 관가(官街)에선 노무현 정부의 수혜자들이 또다시 '새 줄 잡기'에 나섰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 일만 잘하면 과거불문? "失政에 앞장선 사람인데…"  

"능력있으면 발탁하는게 맞아" 반응도 

◆"실정에 앞장선 것도 능력이냐"

지난달 30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파견 공무원 34명의 명단을 발표했을 때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어리둥절했다. 현 정부 '실패한 경제정책'의 주역인 조원동 재정경제부 차관보와 '세금 폭탄' 부동산정책을 만들고 집행한 서종대 건설교통부 주거복지본부장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현 정부에서 주요 보직을 거치며 1급으로 고속 승진했다. 인수위의 최중경 세계은행 이사도 재경부 국장 시절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대규모로 발행하고 역외선물환거래(NDF) 시장에까지 개입했다가 큰 손실을 초래한 뒤 세계은행 이사로 파견됐었다.

어청수 경찰청장 내정자는 서울경찰청장 시절 기사송고실 '대못질'에 앞장서는 등 노무현 코드 맞추기 전력이 있다. 작년 11월 말 기사송고실 문제가 불거지자 10년 넘게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취재기자들과의 주 1회 간담회도 일방 취소했다. 그는 현 정부에서 부산·경남·경기청장과 경찰대학장, 서울경찰청장까지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에 대해 일선 공무원들의 견해는 엇갈린다. "정권과 관계없이 능력 있으면 발탁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책임져야 할 사람까지 중용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실정에 앞장선 것도 능력이냐"는 말까지 나왔다.

정부중앙청사의 한 서기관은 "같은 고시(考試) 출신끼리 능력 차이가 엄청나는 경우는 드물다"며 "실력 때문인지 코드 때문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과천의 한 국장급은 "공직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며 "연줄이 없거나 코드를 못 맞춰 밀려난 인재들도 많다"고 했다.



● 새 정부 '동아줄' 잡아라   실세 찾아 학연·지연 줄대기 

"연줄없는 인사는 짐싸는 분위기" 

◆"줄을 서시오"

공무원들이 '정권 이어달리기'를 위해 당선자 주변이나 인수위 핵심 인사들에게 줄을 댔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퇴출 1순위'로 꼽혔던 경제부처 A국장이 인수위에 입성한 것과 관련, 과천의 한 공무원은 "당선자 실세 측근과 절친하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라고 했다. 그는 "현 정권 말기에 A씨를 박대했던 산하 공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중앙청사의 B국장은 최근 한 기자에게 "코드가 안 맞는 현 정부에서 정말 힘들었다"며 "내 이야기를 당선자 측근들에게 좀 전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수위 C국장은 이 당선자 핵심 측근과 고시 동기", "D국장은 인수위 핵심 인사의 고교 선배" 등은 공무원 사회에서 정설이 돼 있다. 과기부의 E국장은 최근 친분이 있는 정·관계와 언론계 인사들에게 연하장을 돌렸다고 한다. 과기부 관계자는 "이전에는 연하장을 챙겨 보낸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경제부처의 한 간부는 "최근 고위직들의 움직임이 엇갈리고 있다"며 "무슨 줄이라도 잡은 눈치가 있는 사람은 의욕을 불태우고 있고, 그렇지 못한 인사는 짐을 싸는 분위기"라고 했다. 특히 정권 교체기에 대폭 물갈이가 이뤄졌던 1급의 경우, 이번에는 생존할 인사가 많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과거 1명 정도에 불과했던 인수위 파견 1급 공직자도 이번에는 5명이나 들어갔다. 그러나 1급 국장이 많이 남을수록 2~3급 국장의 승진 자리는 좁아진다. 여기에 정부조직 개편으로 고위직 자리도 대폭 줄어들어 1~3급 공무원은 선후배 관계없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인수위 관계자는 "능력 위주로 발탁하는 게 실용주의 노선"이라며 "공직 내부의 평가뿐 아니라 교수나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종합해 기용할 것"이라고 했다.


● 대선후 180도 말바꾸기   '안된다던 공약' 실천에 골몰 

"공무원은 영혼이 없는 사람들" 

◆"우리가 언제 그랬어"

이 당선자의 핵심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와 도심재개발에 반대하던 건교부는 대선 이후 입장을 180도 바꿨다. 건교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대통령의 도구일 뿐"이라며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료들도 현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에서 한 발짝 물러선 태도이다. "절대 수정 불가"를 외치던 수능등급제와 특목고 설립 제한에 대해서도 말투가 달라지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 7일 인수위 업무 보고 때 '햇볕정책'이란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 관계 발전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 점" 등을 개선할 사항으로 꼽기도 했다. 반면 보고서 200여쪽 중 절반을 이 당선자의 대북공약 실천 계획으로 채웠다.

오는 2020년까지 현재의 68만 병력을 50만명으로 줄이는 '국방개혁 2020'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북의 군사적 위협에 변함이 없는데 병력 감축은 곤란하며 노무현 정부에서 성급하게 추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폐지가 확정된 국정홍보처의 한 간부는 인수위 보고 때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안용현 기자 ahnyh@chosun.com 

입력 : 2008.01.11 0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