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이 되면 정치부 기자들은 ‘올해 가장 신사(紳士)다웠던 의원’을 묻는 설문지를 받는다. 여기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의원이 백봉(白峰) 신사상을 받는다. 백봉은 국회 부의장을 지낸 라용균 선생의 호다. 기자들은 2007년의 신사 정치인으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뽑았다. 올해로 9년째가 된 상이지만, 이번처럼 수상자를 보고 고개가 끄덕여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 박 전 대표는 이명박 후보 지원 유세를 다니고 있다. 엊그제는 대구·경북, 어제는 부산·경남, 오늘은 충청권이다. 모두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이명박 후보를 위협하고 있는 곳이자,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이 가장 크게 미칠 수 있는 승부처들이다. 그곳에서 박 전 대표는 그야말로 전력투구하고 있다고 한다. 마치 자신의 한나라당 경선 운동 때처럼 하루 대여섯 곳 이상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청중들에게 “이명박 후보에게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상식을 깨야 뉴스의 초점이 되는 세상이다. 박 전 대표가 이명박 후보와 갈라섰다면 그의 말 한마디, 걸음걸음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졌을 것이다. 지금 박 전 대표 소식은 신문의 한구석에 가끔 비칠까 말까 할 정도다. 박 전 대표가 상식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건 당연한 일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선에서 박 전 대표는 실제 득표에선 이기고 여론조사에서 져 패했다. 당시 여론조사를 실제 득표로 환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크게 일었다. 그런 분위기를 업고서 박 전 대표가 이것만은 죽어도 할 수 없었다고 버텼다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됐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여론조사 규정은 박 전 대표가 당 대표이던 시절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규정 때문에 자신이 패했지만, ‘내가 만든 규정인데 어떻게…’라는 원칙의 선을 끝내 넘을 수 없었던 것이 박 전 대표였다.
보수 진영은 대선 때마다 골육상쟁(骨肉相爭)을 벌인다. 당내 경선이 끝나면 서로 원수가 되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다. 1997년 신한국당 경선에 출마했던 한 사람은 경선에서 패한 바로 다음 날 ‘적진(敵陣)’인 김대중씨 집으로 찾아가 반대편에 섰다. 멀쩡한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게 만들 정도로 당내 경선은 증오를 낳는다. 원통함과 억울함으로 따지자면 박 전 대표만 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상대를 위해 전국을 다니며 지원 유세를 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박 전 대표가 가는 길을 전부 계산된 정치적 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순전히 개인적 이해만으로 따지자면 박 전 대표에게 최대의 이익은 이명박 후보의 낙선일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한나라당은 박 전 대표의 당이 되고, 5년 뒤 대선 후보 자리도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후보가 당선되면 박 전 대표 앞길엔 보장된 것이 없다. 이 후보가 선거 후에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고, 당내 경쟁자들도 속속 등장할 것이다. 박 전 대표도 많은 계산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권 교체’라는 기본 원칙을 벗어나 계산하지는 않았다.
BBK 수사 결과가 지금과는 정반대로 나왔다면, 그래서 정권 교체가 위험해졌다면 박 전 대표도 갈등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결국엔 이명박 후보와 소속 당을 택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박 전 대표는 국민 앞에서 경선 승복을 맹세했다. 당원들 앞에선 “당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이 맹세와 약속 밖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박 전 대표는 백봉 신사상 시상식에서 “국민이 정치를 믿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신사분들이 받는 상이라 여성인 제가 이 상을 받게 되리라고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박 전 대표는 대선 판의 온갖 남자들을 향해 신사가 어떤 사람이고 신사도가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