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위기의 근원, '교자필패' | ||||||
<분석> 이명박, '경선전 박근혜'로 착각해 위기 자초 | ||||||
2007-11-05 14:54:51 | ||||||
"교자필패 애자필승(驕者必敗 哀者必勝)"
"교만한 자는 반드시 패하고 애처로운 자가 이긴다"는 의미의 옛말이다. 대선을 불과 44일 남겨둔 지금, 승리를 다 낚은 것처럼 보였던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측이 직면한 처지가 이렇다. '지금 박근혜'는 '경선전 박근혜'가 아니거늘... 이명박 후보는 지금 '박근혜 반격', '이회창 출마'로 대표되는 내우외환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내우외환의 본질은 '내우'다. 이명박 후보가 경선후 박근혜 전대표만 제대로 예우했다면 이런 사태는 애당초 불가능했다. 이회창 전총재 지지율이 26%까지 급등한 것은 이 전총재 자력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원은 '박근혜 파워'다. 박근혜는 경선 패자다. 그러나 1.5%의 패배를 깨끗이 인정한 '아름다운 패자'다. 그는 보수진영은 물론 진보진영까지 경탄케 한 대담한 경선 승복으로 '포스트 3김시대'를 대표할 정치거목이 됐다. 경선전의 박근혜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명박 후보 진영은 이 대목을 간과했다. '경선 전' 시각으로 박 전대표와 박근혜계를 평가했다. 물론 이 후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박 전대표를 떠받치는 말을 했다. 하지만 내용이 없었다. 박 전대표는 한나라당 절반 조직의 보스다. 보스에겐 자신에게 정치인생을 맡긴 조직원들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그러기에 이 후보는 박 전대표에게 최소한 '절반의 공천'을 약속해야 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이런 얘기는 단 둘이 하는 거다. 가능하면 외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단 둘이 만나 해야 한다. 그러나 이 후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경선후 기자들을 불러놓고 만났다. 만난 자리에서도 '핵심'을 얘기하지 않았다. 박 전대표는 회동후 "만나니 현대건설때 얘기만 하더라"고 힐난했다. 무슨 메시지인 줄 이 후보는 알아야 했다. 그러나 몰랐는지, 알고도 모른 척 했는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후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박 전대표의 경선 승복 의미까지 깎아내렸다. 그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경선에서 민심뿐 아니라 당심도 내가 이겼다"고 강변했다. 박 전대표로서는 참기 힘든 도발이었다. 서울과 호남을 제외하고 이 후보 텃밭이라던 경기에서조차 백중세 싸움을 하고 나머지 지역에서 완승을 거둔 경선 결과, 더 나아가 자신의 경선 승복 의미를 일축하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좌장 이재오 최고위원이 나서 박근혜계를 연일 닥달했다. 당직을 독식하면서 "아직도 경선이 안 끝날 줄 아냐"고 질타하더니, 급기야 박 전대표를 정조준해 "지지자 모임 산행이나 가고..."라는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했다. 건드려선 안될 '역린'을 건드린 거다. 박근혜계가 발끈했고, 참고참던 박 전대표까지 격노의 심정을 표출했다. 아니, 더 무서운 대목은 박근혜 지지자들이 격노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가뜩이나 이명박 진영의 '김경준 귀국 이중플레이' 등으로 "정말 뭐가 있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을 느끼던 터였다. 박근혜 지지자들의 분노는 '이회창 지지율 급등'으로 표출됐다. 최근 들어선 박 전대표 아성인 영남에서 이회창 지지율이 이명박 지지율을 앞질렀다. 이 후보는 종전에 영남 지지율이 70% 전후로 나오자 안심했다. '영남 표가 어디로 가겠어'라고 생각하는듯 싶었다. 하지만 영남의 대부는 박 전대표였다. 그 사실이 이번에 입증된 것이다.
박근혜가 과연 이명박보다 수구꼴통인가 잘못했다 싶으면 무조건 고개를 푹 숙여야 한다. 하지만 이 후보 진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재오 최고위원이 사과를 했다. 하지만 '말'로만 했다. '2선 후퇴'나 '공천권 균형' 요구에 대해선 "한국정치의 병폐" 등의 원색적 표현으로 박근혜계를 비난했다. 여기에다가 불과 며칠 전 지지자 외곽모임에서 "이명박이 당선되면 신당을 만들겠다"는 얘기까지 했다는 <부산일보> 보도까지 나왔다. 명분은 '수구꼴통' 청산이었다 한다. 박근혜계를 수구꼴통으로 규정한 셈. 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이회창 전총재 쪽은 극우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박 전대표측은 그렇게 단순치 않다. 박 전대표는 물론 보수다. 완고한 면도 대단히 많다. 그러나 모든 면이 그런 건 아니다. 대북관계만 해도 박 전대표는 이 후보보다 유연하다.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의 이름을 거명, 직접 비난하는 일이 없다. 북한의 역린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게 박 전대표 생각이다. 그는 북핵위기가 최고조에 달해 미국 네오콘들이 북폭론을 외치던 지난 2005년 3월 극우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의 초청을 받아 방미했을 때도 헤리티지 등 네오콘들이 운집한 가운데에서 "북폭은 절대로 안된다"고 말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남북 모두가 궤멸하기 때문이다. 경선때 공약만 해도 어떤 면에서는 박 전대표가 더 진보적이었다. 한 예로 이명박 후보가 대기업에게 대부분 혜택이 돌아가는 법인세 대폭 감면을 주장했을 때, 박근혜 후보는 중소기업에 국한해 감세를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딱이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전대표보다 개혁적이고 진보적이라 할 대목이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경선 승리후 '개혁' 운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박 전대표 진영을 '수구꼴통'으로 규정했다면 이는 결정적 패착이다. 열린우리당 창당시 노무현식 접근이다. 이 후보측은 무조건 고개를 숙여야 할 때 또다시 상대방을 자극한 모양새. 아울러 경선때 이 후보를 지지했던 '진짜 극우들'도 열받게 만드는 분위기다. 이회창 전총재에게 날개를 달아줬다고나 할까. 이렇듯 이 후보는 선거 막판에 '위기관리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해법은 간단하다. 통렬한 자성과 행동이다. 정가 일각에서는 "한번 진심으로 고개만 숙였으면 될 것을, 이제는 '삼보일배 사과'를 해야 할 판이 됐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위기의 이명박 후보가 어떤 선택을 할 지 지켜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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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견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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