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끼는 잡으러 간다고 잡히지 않는다.
푸른한국 2007-11-06
선거판의 산토끼와 집토끼
`박빙 승부에는 투표 당일 집토끼의 역동적 움직임 긴요`
요즘 정치판을 들여다보면서 떠올리는 질문은 세 가지다. (1)선거와 여론은 어떻게 다른가? (2)대통령선거를 가장 정밀한 여론조사로 대치하면 안 될까? (3)2002년 노무현 대통령과 정몽준 의원은 경선이 아닌 여론조사 방식으로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키지 않았던가?
우선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 선거는 유권자 마음의 최종적이고 전체적이며 흔들리지 않는 선택으로 간주된다. 반면 여론은 흔들리는 유권자의 마음 한 단면을 특정 시기에 포착한 것이다. 여론조사는 유권자의 수동적 반응이지만 선거는 유권자가 투표 장소로 이동해 생각의 표를 찍는 능동적 선택 행위다. 따라서 여론조사 결과는 선거 결과와 다를 때가 종종 있다.
두 번째-. 헌법 67조 1항은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고 돼 있기 때문에 대선을 여론조사로 대치할 수 없다. 여론조사로 대통령을 뽑으려면 헌법을 바꿔야 한다.
끝으로 세 번째. 2002년 여론조사로 대선 후보를 정한 것은 집권의 절박함과 드라마 욕구가 만들어 낸 일대 사건이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희귀하게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 제도적으로 명문화됐다. 여론조사는 선거 결과를 가장 근접하게 예상할 수 있는 발명품이기에 한국의 정당들은 집권을 위해 이 방법을 점점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선거와 여론은 이처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다. 양적으로는 비슷한데 질적으로 다르다. 이 차이를 예민하게 이해해야 승리에 이르는 선거전략을 작성할 수 있다. 여론은 말하자면 특정 시점의 인기도다. ‘인기도=인지도+호감도+지지도’다. 여론에서의 양적 인기도가 높다고 해서 선거에서의 질적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산토끼는 잡으러 간다고 잡히지 않는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1997년과 2002년 선거에서 일정 시기 여론조사의 우위에 도취해 ‘이회창 대세론’을 펴다 실패한 것이 그 좋은 사례다.
선거에서의 질적 승리는 인기도에 참여도가 결합해야 가능하다. 즉, ‘ 집권=인기도(인지도+호감도+지지도)+참여도’인 것이다. 참여도는 투표에 참여하는 물리적 행위만을 뜻하지 않는다. 삶의 결핍과 갈증을 해결해 줄 사람을 찾겠다는 리더 선택의 심리적 특성도 참여도를 구성하는 요소다. 리더 선택의 심리적 특성은 인기투표를 할 때의 심정과는 다른 엄숙성과 책임성이 동반된다.
그렇다면 ‘집권=인기도(인지도+호감도+지지도)+참여도(투표 참여 의지+리더 선택의 심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인기도를 측정하는 것이 여론조사의 몫이라면 참여도의 질적 문제까지 생각하는 것은 선거전략가의 일이다.
2007년 집권 기대에 부풀어 있는 한나라당은 과연 정권 탈환에 성공할까? 답은 ‘글쎄’다. 한나라당에 대한 인기도는 열린우리당에 비해 매우 높으나 참여도까지 그럴지는 알 수 없다. 참여도를 높이는 전략에 실패하면 집권은 맴돌다 떠나갈 수 있다. 또 열린우리당이 인기도는 낮으나 참여도를 높이는 기묘한 전략으로 재집권을 못하란 법도 없다.
높은 인기도가 선행하면 참여도가 뒤따르리라는 것이 통념이지만 실전 선거판에서는 오히려 참여도를 먼저 높이고 인기도를 동반 상승시키는 것이 잘 먹힌다.
1987년 이래 한국 대선에서는 ‘5%의 신화’가 있다. 최종적으로 ‘영남당’의 지지율도 40%, ‘호남당’의 지지율도 충청권 등의 도움을 받아 40%가 될 것이다. 나머지 20%는 무관심·무선택·중간층이다. 결국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중간지대의 5% 유권자, 약 100만~120만 표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이 관건이라는 사고방식이 5%의 신화다.
이런 생각은 2002년 선거 때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득표율 차가 2.3%포인트,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차가 1.4%포인트로 나타남에 따라 ‘2%의 신화’로 더 정밀해졌다. 이제 ‘50만 표를 잡아라’가 구호가 됐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보수의 짙은 때를 닦아내고 이념의 중간으로, 중간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가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집토끼는 도망가지 않으니 산토끼를 잡으러 나가자는 전략이다. 하지만 신화를 맹신하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신화는 한나라당에서 ‘수구 골통’의 적폐를 도려내는 데까지만 교훈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낫다. 오히려 집권의 기술이라는 면에서는 보수의 진지를 탄탄하게 구축하는 것이 좋다. 집토끼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집토끼를 안심시키는 정책과 홍보 개념을 작성해 일관성 있게 밀고 나아가는 것이 유리하다.
산토끼는 잡으러 간다고 잡히지 않는다. 경계선상 2%의 산토끼는 일관된 전략으로 풍성하게 자란 집토끼에 매혹당해 저절로 몰려드는 것이다. 2%의 신화는 결과론일 뿐이다. 신화의 껍질을 벗기면 출발의 선명함, 과정의 치열함이 오롯이 나타난다. 그게 실체다. 처음부터 2%나 5%의 중간지대를 설정해 놓고 이들을 향해 움직이다가는 어느새 좌표를 잃고 방황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안정되고 튼튼한 나라’라는 홍보 개념을 흔들어 선거진영 내부에 거대한 혼선을 빚었다. 이 후보는 촛불 이벤트로 여론조사(인기도)에서 약간의 상승 효과를 봤을지 모르지만 유권자의 투표 참여 의지와 리더 선택 심리(참여도)에서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노무현 후보의 당당함에 끌려 투표장으로…
대신 미선·효선이 관련 집회는 노무현 후보 쪽 집토끼의 참여도를 높였고, 여기에 노 후보의 ‘감성+이미지’의 일관된 홍보 개념이 더해지면서 경계선상의 산토끼까지 몰려들게 되었다. 당시 노 후보는 먼저 자기 내면의 집토끼에 충실했다. “반미면 어때” “장인이 좌익이면 아내를 버리기라도 하라는 말입니까”라고 당당하게 반문했다. 경계선상의 유권자들은 노 후보의 좌파성보다 당당함에 이끌려 투표장에 나갔다.
그들은 노 후보의 당당함이 ‘낡은 정치 청산’이라는 삶의 갈증 해소, 시대정신의 구현에 적합하리라는 믿음을 가졌다. 선거날 출구조사에서 오후 2시까지 뒤지던 노 후보가 투표 종료 4시간을 남겨 놓고 역전한 것은 온라인·‘노사모’ 같은 집토끼의 힘이었다.
전통의 여론조사 기관인 한국갤럽이 ‘이회창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는 치욕스러운 오보를 날린 것은 투표 날에도 움직이는 집토끼의 역동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의 승리도 산토끼보다 집토끼의 성질을 잘 연구해 그들을 확실한 자기 편으로 삼는 후보가 거머쥘 것이다.
출처;조인스 2006.09.10 전영기_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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