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평양방문은 어떤 모양이던 통일과 직결되는 민족사적 성격이 짙다.
1948년 김구 선생이 혈혈단신으로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여 38선을 넘어 평양을 방문하였다. 그 때 많은 독립투사와 애국자들과 서울 시민들은 그의 길을 막으려 하였다. 그가 국민들의 방문 반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힘으로 정세를 역전시키기 어려운 정세였다. 반대를 무릅쓰고 험난한 그 길을 택하였다.
조국이 분단되려는 그 순간 누군가 막아야한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몸을 조국의 분단의 벽을 밀러 부치기 위하여 과감하게 몸으로 행동 하였지만, 김일성 일당들은 이를 선전수단으로 교묘히 이용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는 극우파들의 총탄에 쓰러지는 역사적 비극을 초래 하였다.
어쩌면 노 애국자가 해방된 조국의 민족과 미래를 생각하여 일부러 옹고집으로 자신의 온몸을 비치려고 했던 마지막 선택인지 아무도 모를 일이였다.
그 후 우리민족이 분단된 지 반세기가 넘었고, 통일의 길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필자의 좁은 식견으로도 통일에 대한 열망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가 통일되지 않고서는 우리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방법론에 문제가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남북정세는 반세기 동안 아무런 변화의 틈도 없이 흘러갔지만 88서울 올림픽 개최이후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문어지고 냉전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우리의 남북 상황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1988년 당시 국회의원이던 서경원(徐敬元)의원의 밀입북사건이 터지고 이로 인하여 당시 김대중(金大中) 평화 민주당 총재가 불구속 기소 단계에 이르기도 하였고, 이후 1989년3월 25일 문익환 (文益煥) 목사가 평양에 가서 도착 성명 발표는 우리사회 통일에 대한 인식에 고무적이었고, 남북 대치 상황은 자의이던 타의든 많은 변화의 물꼬를 터 게 한 계기였다. 같은 해 한국외국어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임수경(林秀卿)이 6월 21일 서울을 출발해 도쿄[東京]에 도착한 뒤 1주일간 머무르다가 6월 28일 서독(독일)을 거쳐 6월 30일 평양에 도착하였다.
1989년 6월 30일,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방북해 46일 뒤 판문점을 통해 입국한 사건이 있었다.
북한의 선전매체는 임수경을 통일의 꽃으로 미화하여 체제선전에 최대한 열을 올렸고 역으로 남한의 개방적인 체제의 우월성이 돋보이게 한 사건이었다.
이후에도 계속되는 갈등과 남북간 긴장 속에 대화는 계속되어 민족사에 큰 획을 끄는 일이전개 되었다.
지난 2000년 6월 13일 오전 10시 반.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진 대통령 전용기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트랩에서 내린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뜨겁게 얼싸 안았습니다.분단 이후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평양 시민들은 손에 손을 잡고 열렬히 환영했고 7천만 겨레도 복받치는 감격을 억누르지 못했습니다. 두 정상은 2박 3일 간의 만남을 통해 6.15 남북공동선언문에 서명했습니다.
경제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고 남북 대화를 상설화하기로 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에도 합의했습니다.
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는 화해와 협력의 큰 물꼬가 트였습니다. 금강산 관광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다녀왔습니다. 개성공단에 있는 우리 기업에서는 북한 근로자들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들의 화상상봉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평화체제 구축 논의까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중요한 시점에 남과 북의 정상은 7년 만에 다시 역사적인 만남을 가지게 됐다.
남한 지도자로서는 두 번째 주자인 노무현 대통령은 역사적인 순리에 따라 향후 지속적인 남북한간 대화에 도움 되는 방향으로 처신하여 나간다면 이번 방문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지만, 자신의 과시를 위한 방북이나 사사로운 쇼맨 쉽을 발휘 할 때는 일회용 한낱 관광 방문으로 남겨지지 아니할까 싶다.
그렇다면 역사를 거슬려 올라가는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방북한다는 발상은 같은 생각은 고려 해볼 일이 아닌가? 연일 공영방송에서 왜 이렇게 수다스럽게 떠들고 있을까?
시대가 변화고 상황이 바뀌었다면 걸맞게 행동함이 옳은 일이 아닐까? 일국의 대통령답게 의젓하게 국빈으로 대접 받으면서 방북하는 일이 옳을 것이다. 몇 날 동안 북한 당국과 교섭하여 육로을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어가겠다는 발상은 김구 선생의 모습을 흉내 내기 꼴일 뿐이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은 김구 선생님을 흉내 낼 위치가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민족의 공동번영의 기틀을 마련하기위하여 김정일이 내려올 약속을 뒤로 미리고 미력하지만 몸소 민족의 문제를 허물없이 토로하기 위하여 임기 내 방문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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