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군 쌍곡계곡과 화양계곡 | ||
유난히 습하고 무더웠던 여름도 그 끝자락을 맞고 보니 어쩐지 아쉽다. 돌이켜 보면 그 더위마저 제대로 즐기기 못했다. 그래도 가끔은 열기가 살갗을 끈적이고 권태가 짜증을 부를 때마다 뇌리를 스치는 풍경 하나. 나무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귀를 간질이는 맑은 물소리가 있는 계곡이었다. 옛 피서법인 탁족(濯足)을 흉내 내 계류에 발을 담갔다. 찬 기운이 혈맥을 타고 머리끝까지 차고 올라 몸은 뽀송뽀송한 삼베옷을 입은 듯이 상쾌하고 마음은 새털마냥 가뿐하다. 여기저기서 섯돌아 흐르는 물은 웅덩이가 있으면 고이고, 차면 넘치며, 바윗돌에 막히면 다시 돌아 흐른다. 막힘이 없다. 너른 반석 위엔 늦게나마 발을 담가 본 피서객들의 웃음소리가 계곡을 메아리친다.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다. 거기에 숲이 우거져 있다면 골짜기마다 흐를 맑은 계곡물을 상상하기란 불을 보듯 뻔할 터. 처서가 지났건만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낮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지도 한 장에 의지해 산수 좋은 계곡을 찾아 나선 곳이 충북 괴산군이다. 내륙이지만 군자산, 보배산, 칠보산, 속리산 등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명산들이 집결했으니 늦더위를 달랠 멋진 계곡이 어찌 없으랴. 울창한 숲 사이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과 반석 위로 흐르는 맑은 계류를 보며 일상의 관성을 날려버릴 수 있고, 기암절벽 위에서 세월의 풍화를 견뎌낸 노송을 보며 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것 또한 계곡을 찾는 이유이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전한 쌍곡계곡 괴산군 칠성면 쌍곡마을에서 제수리재(해발530m)에 이르는 517번 지방도로를 따라 10,5km 구간에 펼쳐진 쌍곡계곡은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측에 군자산과 보배산이 있고 그 자락을 타고 두 갈래 계곡이 흘러 쌍곡(雙谷)이다. 계곡 들머리를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계류가 급커브를 이루며 소를 형성하고 있다. 아홉 번 굽이친다는 구곡 중 제1곡인 호롱소이다. 근처 절벽아래 호롱불을 닮은 바위가 있어 이렇게 불린다. 이어진 경관은 높다란 절벽이 병풍처럼 가로 막는 소금강. 금강산의 일부를 옮겨놓은 듯한 이 곳은 야생화가 핀 절벽 아래로 맑은 계곡이 흘러 운치를 더한다. 바위 모양새가 꼭 시루떡 자른 것처럼 생긴 병암(제3곡`떡바위)에 서면 기근이 심했던 시절 이 근처에 살면 먹을 것 걱정 안하리라는 소박한 믿음을 지녔던 사람들이 지금도 작은 촌락을 이루고 있다. 병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엔 그림 같은 산세에 걸맞게 소와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계곡수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문수암(제4곡)이 자리한다. 그래서 일까. 예부터 쌍곡계곡엔 이황, 정철 등 당대의 유학자, 문인들이 찾아 소요했다고 전한다. 계곡을 비껴있는 산 이름이 군자산(君子山)인 까닭도 이 때문이리라. 10여m 높이의 집채만 한 바위가 약 5m의 폭을 두고 양쪽에 버티고 선 쌍벽(제5곡)은 갑자기 좁혀진 계곡 탓에 물소리가 우렁차다. 숲이 우거지고 큰 바위가 많아 접근이 쉽지 않지만 한쪽 바위 위에서 쌍벽을 내려다보면 포말을 만들며 흐르는 급물살의 위력과 찬 바위벽을 스치고 나온 바람의 냉기로 인해 간담이 서늘해진다. 조심스럽게 쌍벽을 내려오다 함초롬히 피어난 달개비 군락을 만났다. 남은 여름이 길지 않은 듯 작지만 선명한 꽃잎은 청명한 가을하늘빛이다. 쌍벽에 이은 다음 구비는 우리나라 어느 계곡에 하나 쯤 있을만한 전설을 품고 있는 용소(제6곡). 거센 계곡물이 바위 웅덩이를 휘돌아 흐르는 모양새가 누가 봐도 용이 승천했을 만한 장소다. 군자산을 흘러내리는 계곡을 나와 도로 맞은 편 보배산 자락 숲을 따라 900여m를 걸으면 쌍곡폭포(제7곡)다. 높다란 절벽에서 급전직하 흐르는 절세의 폭포는 아니지만 8m정도의 반석을 타고 흘러내린 폭포수가 여인의 치마폭처럼 펼쳐진 소에 모이는 자태가 오롯하다. 선녀탕(제8곡)은 쌍곡폭포를 되돌아 나와야 한다. 옥빛 계류가 바위를 스치고 흘러내린 웅덩이는 이끼 낀 바닥돌이 훤히 비칠 정도로 맑다. 장암(제9곡?마당바위)은 쌍곡계곡의 마지막 명소. 물이 흐르는 계곡 전체가 폭 40여m의 반석으로 주변엔 송림의 그늘이 져 삼복더위도 이곳에선 맥을 출 수 없다. 자리 깔고 드러누우면 시름은 계곡이 훑어가고 가슴 가득 후련함이 들어 찰 그런 곳이다. 쌍곡계곡은 현재 일부 구간에 환경보호 차원에서 출입을 막는 금줄이 쳐져 있으나 계곡을 따라 펜션이 들어서 있어 가족이 오붓한 한 때를 보내기에 적당하다. ◆넓은 담(潭)과 거대 반석이 절경을 연출하는 화양계곡 속리산 화양지구에 있는 화양계곡은 넓고 깊다. 한 줌의 흙도 없는 하얀 반석위에 맑은 물이 흐르고 울창한 숲과 조화를 이룬 계곡은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이 노년에 머물며 주자학은 연구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화양계곡은 우암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 중국의 주자(朱子)가 무이산 계곡에 머물며 무이구곡을 정한 것을 본 따 우암도 계곡의 아홉 명소들을 골라 화양구곡이라 이름 붙였기 때문이다. 기암이 가파르게 솟아 그 형세가 기묘한 느낌을 주는 경천벽을 제1곡으로 개울 전체가 평편하고 흰 바위 위를 흐르는 제9곡 파천까지 화양계곡은 속세를 떠나 ‘속리(俗離)의 삶’을 추구한 유학자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속리산의 한자명이 俗離山인 것도 이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다) 경천벽을 지나 계곡에 진입하자 과연 세속과 멀어진 느낌이다. 들리는 건 물소리와 보이는 건 녹음 우거진 숲과 파란 하늘 뿐. 바깥일은 잠시 덮어 둔 듯 편안하다. 울창한 송림과 절벽을 배경으로 계류가 소담을 이룬 운영담(제2곡)은 이름 그대로 흰 구름이 수면 위로 비추며 흐르고 둥글넓적한 흰 바위의 읍궁암(제3곡)엔 효종의 승하로 북벌이 좌절되자 우암이 임금의 기일마다 이곳에서 통곡을 했다고 전한다. 물 밑 모래알이 금빛으로 빛난다는 금사담(제4곡)의 건너편 숲 속엔 암서재가 오롯이 있다.거대한 바위 위에 지어진 암서재는 우암이 학문을 닦았던 곳으로 바위 겉면엔 푸른 이끼가 끼여 있다. 겹쳐진 바위 높이가 약 100여m에 이르는 첨성대(제5곡)와 장대한 흑갈색 바위가 하늘을 향해 구름과 맞닿아 있는 착각을 일으키는 능운대(제6곡), 계곡의 옆으로 길게 늘어진 바위가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형상을 띠고 있는 와룡암(제7곡)은 화양계곡의 규모를 짐작하게 하는 잣대가 된다. 속리산 한 기슭을 훑고 내려온 맑은 물이 잠시 쉬어가는 쉼터인 학소대(제8곡)는 백학이 새끼를 낳아 길렀을 만큼 한 폭의 선경을 연출했고, 학소대 위 파천은 신선들이 술잔을 나눴다는 전설이 정설처럼 그 멋진 풍광과 정취를 자아낸다. 화양계곡 입구에 있는 화양서원과 만동묘를 둘러볼 때면 노회했던 당대 유학자의 권위와 중화사상의 일면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청나라 집권 이후 명나라 신종과 마지막 황제 의종의 위패가 있는 만동묘는 황화강이 만 번을 꺾어 돌아도 결국은 동(조선)으로 흐른다는 ‘만절필동(萬折必東)’에 따왔다. ◇쌍곡계곡 가는 길=경부고속도로 김천 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 진입. 연풍 IC에서 내려 34번 국도를 타고 계속 가다보면 쌍곡 삼거리가 나온다. 이 곳에서 517번 지방도로로 들면 쌍곡계곡이 시작된다. ◇화양계곡 가는 길=쌍곡계곡의 끝 지점인 제수리재를 지나 이정표를 따라 가다보면 화양계곡에 이른다. | ||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작성일: 2007년 08월 30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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