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해병대 소초에서 해병대 병사가 경계를 서고 있다. 박영준 작가
말도 해병대 소초에서 경계병이 경계를 서고 있다. 박영준 작가
강화도에서 1시간가량 배를 타고 들어가야 나오는 말도. 민간 배편은 없어 강화군청의 행정선만 다닌다. 지난달 초 해병대의 립보트(고속단정)로 찾은 이곳 해안엔 한 표식물이 설치돼 있었다. 쇠기둥 위에 X자를 걸어놓았고, ‘한강하구 미등록 선박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달려 있다. 이곳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시작점이다. ‘출입금지’ 팻말이 붙인 표식물 앞바다에 서해 NLL의 1번 좌표가 있다. NLL은 모두 12개의 좌표를 연결한 선이다.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가 좌표를 알리는 표식물을 관리하는데 말도의 1번 좌표가 NLL 시작점이다.
신재민 기자
휴전선은 땅만 아니라 바다에도 그어져 있다. NLL 얘기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선 해상 군사분계선을 따로 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해 8월 30일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정전협정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해ㆍ공군의 해상 초계활동 범위를 한정하는 선을 동해와 서해에 그렸다. 이게 NLL이다. 당초엔 한국군과 미군의 ‘북상’을 막기 위한 취지였다. 한강 하구에서 북서쪽으로 쭉 이어져 백령도 서북쪽 42.5마일(약 80㎞)까지 뻗어 있다. 북한은 59년 『조선중앙연감』에서 NLL을 군사분계선으로 인정했다
말도로 들어가려면 해병대 립보트(꼬속단정)나 행정선을 타야만 한다. 해병대 립보트. 박영준 작가
말도로 들어가려면 해병대 립보트나 행정선을 타야만 한다. 박영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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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언덕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북한의 함박도가 보인다. 한때 남한 땅이냐 북한 땅이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던 문제의 그 섬인 함박도다. 문재인 정부 시절 북한군이 요새화하는 정황이 발견돼 군 당국이 우려하고 있는 섬이다. 함박도는 산림청 소유로 등기부등본에 올라와 있지만, 중앙일보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NLL의 2번 좌표는 함박도와 말도 사이에 있다.
말도에서 해병대 관측장비로 북한군이 함박도에서 농구 경기를 할 때 농구공까지 보일 정도라고 한다. 말도에서 7㎞ 북쪽엔 황해도 연백 평야가 있다. 날씨가 좋으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북한과 맞닿아 있으니 해병대가 말도에 주둔해 있다. 말도 소초는 24시간 연백평야와 함박도를 감시한다. 북한으로선 눈엣가시와 같다. 해병 제2사단 한승전 중령은 “그래서 말도 소초장으로 뛰어난 장교를 보내고 있고 경계를 서는 병사들도 다들 용맹하다”고 말했다. 말도 소초장인 박태준 해병 중위는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순 없지만, 부대의 사기는 늘 최고”라며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도 꿋꿋한 부대원들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강화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 연백평야. 박영준 작가
말도엔 20가구 26명의 주민이 산다. 이 섬은 일제 강점기 때 황금어장으로 유명했지만, 정전협정 이후 어업 활동이 금지되면서 주민은 농업에 종사하게 됐다. 대부분의 주민은 강화도 등 외지에 살다 농번기에 말도로 건너와 농사를 짓는다. 말도엔 편의점은 커녕 구멍가게도 없다. 외딴곳에 함께 사는 처지이니 말도 주민과 해병대는 무척 사이가 좋다.
말도로 가는 배편은 강화군청 행정선만 있으며, 군사적 목적에 따라 해병대의 립보트를 운항하기도 한다. 교통편이 좋지 않아 말도의 해병대 장병은 휴가를 나갈 때 하루 일찍 섬을 나와 강화도에서 묵는다. 부대로 복귀할 때도 날씨가 안 좋아 출항이 어려울 경우 이를 참작해준다.
한강하구 미등록 선박 출입금지 푯말. 이 푯말 앞바다에 서해 북방한계선(NLL) 1번 좌표가 있다. 박영준 작가
말도의 명물은 ‘부름종’이다. 마을 어귀에 빨간색 푯말에 ‘부름종’과 ‘대한민국(남조선)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단추를 누르시면 안전지역으로 안내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수화기가 놓여있다. 1999년 9월 14일 북한 주민이 말도롤 통해 귀순한 일이 있었다. 당시 해병대가 북한 주민의 귀순을 잘 인도했다.
말도 바닷가의 부름종. 서해를 타고 내려 온 귀순자가 해병대에게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다. 박영준 작가
황해도에서 조류를 잘 타면 말도까지 건너오는 게 어렵지 않다고 한다. 부름종 설치 후 말도로 귀순한 북한 주민은 아직 없다. 원래 명칭은 ‘유도벨’이었지만, 북한 귀순자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부름종’으로 바꿨다고 한다. 귀순자가 익숙한 ‘남조선’으로 적은 이유기도 하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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