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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사설]가계대출 175만 명 사실상 부도… 제2금융권 연체 위험수위

 

 
입력 2023-07-03 23:57업데이트 2023-07-04 08:52
 
가계 빚을 갚느라 최소한의 생계도 이어가기 어려운 대출자가 300만 명에 육박했다. 이는 한국은행이 3월 말 현재 가계대출을 받은 1977만 명의 연소득 대비 갚아야 할 원리금 비율(DSR)을 분석한 결과다. 통상 DSR이 70%이면 최저생계비를 뺀 모든 소득을 빚을 갚는 데 쏟아부어야 하는 마지노선으로 보는데, 이런 대출자가 299만 명이나 되는 것이다.

특히 이 중 175만 명은 DSR이 100%를 넘어 소득보다 갚아야 할 빚이 더 많은 처지다. 전체 대출자 10명 중 거의 1명꼴로 원리금을 갚고 나면 남는 돈이 아예 없어 사실상 부도 상태라는 뜻이다. 이 같은 한계 대출자는 팬데믹 이후 2년 6개월 동안 꾸준히 늘고 있어 우려를 더한다. 1800조 원을 넘어선 가계 빚에 대한 경고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취약 가구의 줄도산 위기가 높아지면서 하반기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한계 수위에 다다른 가계 빚은 이미 금융권에 연쇄 충격을 주고 있다. 발등의 불이 떨어진 곳은 한계 대출자가 몰려 있는 제2금융권이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저축은행 연체율은 6년 만에 5%를 넘어섰고, 취약계층이 급전을 빌리는 대부업체 연체율은 11%를 웃돌고 있다. 제2금융권 부실이 심화되면 제2의 카드 대란이나 저축은행 사태의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

 
더군다나 정부가 코로나19 지원 대책으로 각종 대출에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를 해준 조치도 9월이면 종료돼 잠재된 부실이 한꺼번에 폭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장에선 9월 위기설까지 나도는 상황이다. 가계부채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1058조 원으로 추산되는 전세보증금이나 1000조 원을 넘어선 자영업 대출까지 포함하면 가계 빚 쓰나미가 몰려올 수 있는 것이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하반기 미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에 다시 속도를 내면 저신용·저소득층, 영세 자영업자, 2030세대 청년층에서 집단 파산이 속출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한 선제적이고 정교한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이 필요하다. 까다로운 조건 탓에 신청이 저조한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손질하고, 일시적 자금난에 처한 가계가 도산하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가계의 연쇄 부실로 금융과 경제 전반이 흔들리지 않도록 약한 고리들을 면밀히 점검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