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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대구 퀴어축제 놓고 결국... 공무원 500명·경찰 1500명 몸싸움

입력 2023.06.18. 21:44업데이트 2023.06.18. 22:43
 
 
17일 오전 대구 중구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린 퀴어축제를 앞두고 행정대집행에 나선 공무원들이 행사 차량의 진입을 막으려고 하자, 경찰이 이들을 밀어내느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뉴스1

지난 17일 대구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 대구시·중구 공무원 500여 명과 대구경찰청 소속 등 경찰관 1500여 명이 맞서 몸싸움을 벌였다. 공무원들이 “무대 등을 설치해 도로를 불법 점거하는 것을 막겠다”고 나서자 경찰관들이 “적법하게 신고한 집회는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며 밀어낸 것이다. 안전과 질서를 유지해야 할 지자체와 경찰이 집회 현장에서 물리적 충돌을 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날 현장에서 “경찰이 불법 도로 점거를 방조했다”면서 “(김수영) 대구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이에 김수영 대구경찰청장은 “퀴어축제는 적법한 집회여서 (무대 등을 철거하는) ‘행정 대(代)집행’ 요건이 안 된다고 수차례 설명했는데 대화가 안 됐다”며 “공공 위험성이 급박하지 않은데 대집행을 하면 집회 방해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대구시와 대구경찰청의 마찰은 지난 12일 시작했다. 퀴어축제 주최 측의 집회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시(市)에 “집회 장소를 피해 버스 운행을 다른 곳으로 해 달라”고 요청하자, 시가 “(퀴어축제가) 버스 노선을 우회할 만큼 공공성 있는 집회라고 보기 어렵다”며 거절한 것이다. 퀴어축제 장소는 시내버스, 택시만 다닐 수 있는 ‘대중교통 전용 지구’여서, 버스가 우회하면 시민들이 불편을 겪게 된다.

이어 홍 시장과 김 청장이 공방을 벌였다. 홍 시장은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불법 점거를 막겠다고 하니 경찰 간부가 집회 방해죄로 입건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설교하더라”고 썼다. 전날(15일) 대구 서구의 공장 화재 현장에서 만난 김 청장이 한 말이라고 전한 것이다. 이에 김 청장은 본지에 “(홍 시장에게) 관련 법률을 설명했더니 ‘경찰이 그래서 되느냐’고 윽박질렀다. 나이도 많으신 분한테 입건하겠다며 엄포를 놨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이번 충돌은 집회 때 도로 점거가 허용되는지 여부가 법률에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 21조에 ‘모든 국민은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고 돼 있다. 이에 따라 집회는 원칙적으로 신고만 하면 개최할 수 있도록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규정하고 있다. 다만 집시법에는 집회를 위해 무대 등을 도로에 설치하려면 ‘도로 점용 허가’를 별도로 받아야 하는지에 관한 규정은 없다.

이와 관련, 그동안 법원에서는 ‘적법하게 신고된 집회의 경우 도로에 무대 등을 설치할 때 도로 점용 허가를 받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경찰도 이에 따라 도로 점용 허가가 없더라도 집회를 위해 필요한 시설을 도로에 설치하는 행위를 허용해 왔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17일 대구 중구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린 퀴어축제 현장에서 공무원과 경찰이 물리적 충돌을 한 직후 기자들을 만나 "경찰이 불법 도로 점거를 방조하고 있다. 대구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말하고 있다. /뉴스1

그런데 대구시가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홍 시장은 지난 17일 페이스북에 “집회 신고만 하면 도로 점용 허가 없이 도로를 점거하고 통행을 차단해 마음대로 집회를 하는 자유는 우리 법에 없다”며 “집시법에도 신고만 하면 도로 점용을 허가한다는 의제 조항도 없다. 공공 도로라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도로법에 있는 ‘시설 신설을 위해 도로를 점용하려면 관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61조)’ ‘도로 통행과 안전 확보를 위해 필요할 경우 즉시 시설을 제거할 수 있다(74조)’ 등의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과 같은 충돌을 막으려면 관련 법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진녕 변호사는 “집회 신고를 할 때 도로나 장소 점용, 동원 장비 등에 대해 밝히도록 법을 고쳐 신고 범위를 벗어난 집회는 제재해야 한다”며 “시민의 일상도 중요한 만큼, 집회의 자유를 이유로 도로나 광장 점거를 무작정 허용해선 안 된다”고 했다.

한편, 다음 달 1일 서울 도심에서도 퀴어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서울 중구청 관계자는 “퀴어축제는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행사여서, 도로 점용 허가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며 “축제가 시민의 통행권을 침해하는지, 안전 문제는 없는지 상황에 따라 경찰과 협조해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