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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군사훈련 받는 中외교관…"삼류 폭력배""미친" 유럽서도 막말

중앙일보

입력 2023.06.14 05:00

업데이트 2023.06.14 15:29

지난해 10월 베이징전람관에서 열린 ‘분투 전진의 신시대’ 전시회에 등장했던 군사훈련 사진. 사진 속 군복을 입은 이들은 군인이 아니라 외교관이다. 사진 아래엔 “젊은 외교 간부 대오의 이론 무장을 강화하고 ‘문장해방군(文裝解放軍, 글로 무장한 해방군)’이라는 좋은 전통을 널리 알렸다”는 설명이 쓰여 있다. 신경진 특파원

지난해 10월 베이징전람관에 군복을 입은 외교관의 사진이 걸렸다. 시진핑(習近平) 집권 10년 동안 이룩한 업적을 소개하는 전시회의 외교 분야에 “‘글로 무장한 해방군(文裝解放軍)’이란 좋은 전통을 널리 알렸다”는 설명과 장갑차가 도열한 군 연병장에서 훈련받는 초급 외교관들의 사진이 등장했다. 신중국의 초대 외교부장을 겸했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의 ‘시민 군대(Civilian Army)’의 전통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외교관을 실제 군사훈련을 통해 투사로 키우는 중국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의 현실을 보여준다.

지난해 10월 16일 개막한 중국공산당(중공) 제20차 전국대표대회를 맞아 베이징전람관에서 열린 ‘분투 전진의 신시대’ 전시회의 외교 업적 부분에 군복 입은 중국 외교관의 군사 훈련 사진이 걸려있다. 신경진 특파원

‘군복 입은 외교관’처럼 외교 문법을 거스르는 전랑 외교는 지구촌 곳곳에서 충돌을 부르고 있다.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 유럽판은 지난해 8월 “중국 액션 영화에서 이름을 딴 전랑 외교가 워싱턴·베이징을 넘어 유럽에도 확산했다”며 자체적으로 ‘늑대지수(wolf rating)’를 매겨 전랑 외교관 5인을 지목했다.

구이충유(桂從友·58) 전 주스웨덴 대사는 지난 2019년 11월 26일 인터뷰에서 스웨덴 언론을 라이트급 권투선수에 비유하며 “48㎏의 가벼운 복서가 86㎏ 헤비급 복서의 집까지 난입한다면 어떤 선택이 있겠냐”며 주재국을 깔봤다고 폴리티코는 지적했다.
루사예(盧沙野·59) 주프랑스 대사는 지난해 3월 앙투안 봉다즈 전략연구재단 연구위원에게 “삼류 폭력배”, “미친 하이에나”, “이데올로기 트롤”이라며 막말을 퍼부어 프랑스 외교부에 초치당했던 인사다.

지난해 8월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 유럽판이 중국의 대표적인 전랑외교관 5명을 소개했다. 사진 폴리티코 캡처

중국이 영국 의원을 제재하자 영국 정부의 보복 조치로 의회 출입을 금지당한 정쩌광(鄭澤光·60) 주영 대사도 거침없는 발언으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해 8월 “미국을 따라 불장난 하지 말라. 모두 타 죽을 것”이라고 말해 리즈 트러스 당시 영국 외교장관에게 초치당했다. 우컨(吳懇) 독일 대사, 우훙보(吳紅波) 유럽사무특별대표도 폴리티코가 뽑은 전랑 외교관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구이충유 전 스웨덴 대사의 총질 발언에 주목했다. ‘총질 외교(Shotgun Diplomacy)’라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구이 대사는 지난 2019년 11월 공영라디오 인터뷰에서 마치 갱스터 같은 목소리로 “친구에게는 좋은 술이, 적에게는 엽총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16일 중국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 개막식에서 시진핑 총서기가 5년간의 집정 방침을 담은 정치보고를 낭독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전랑외교는 소프트파워나 협상보다 거친 말과 압박으로 중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방주의 외교가 중국의 외교술 임을 보여준다. 과거 명·청 시대 주변국을 상대로 구사하던 왕조 시대의 일방주의 외교를 21세기 상호주의 시대에 다시 재현하려고 하고 있다. 전랑외교는 시진핑 주석 3기 들어 더욱 진화했다. 지난해 10월 20차 당 대회에서 통과된 당헌법(黨章) 수정안에 “투쟁정신을 발양하고, 투쟁능력을 증강하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당헌법 수정안 공식 해설서는 투쟁 정신을 추가한 의미에 대해 “주도적으로 맞서고 단호하게 투쟁해야 살길을 찾고 존엄을 받고 발전할 수 있으며, 도피하고 물러서서 타협·양보한다면 실패와 굴욕을 부르는 죽음의 길만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외교를 싸움터로 뒤바꾸는 전랑외교는 역효과를 부르고 있다. 전랑외교를 구사하다 반감을 키운다. 체코의 마르케타 페카로바 아다모바(39) 하원의장은 지난 12일 트위터에 “중국은 굽실거리는 총리·대통령·국회의장에 익숙해졌지만, 공항에서 마스크를 쓴 채 영접하고, 아무도 보지 못한 투자에 박수치던 시대는 끝났다”는 글을 올렸다. 중국 측이 다음 주 유럽을 방문하는 대만 외교장관과 접촉하지 말라고 그에게 경고하자 발끈해 올린 글이었다. 체코는 올 초 치러진 대선을 통해 친중 성향의 밀로시 제만(79) 전 대통령이 반중 성향의 페트로 파벨(62) 대통령으로 교체됐다.

베이징 특파원을 지낸 피터 마틴 블룸버그 기자는 올 초 한국에도 번역된 『중국의 시민군대:전랑외교군의 탄생』(2021)에서 “중국은 2019년 전세계에 276개의 대사관·영사관 네트워크를 갖추면서 미국을 넘보고 있다”면서도 “전랑 외교관들은 친구를 얻는 대신 굴기하는 중국이 야기하는 위협의 상징이 됐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13일에도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의 ‘베팅’ 발언을 놓고 한국 비난을 이어갔다. 국수주의 성향의 환구시보는 이날 사설에서 “중국 대사를 공격하는 것은 한국 외교가 스스로 굴욕을 자초하고 약점을 드러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던 과거에서 ‘편들기’로 바뀐 것은 미국에 판돈을 거는 급진적인 도박꾼 심리이자 매우 비이성적”이라고 비난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