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3.05.13 05:00
업데이트 2023.05.13 09:09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고위원직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뉴스1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여권에서 가장 뜨거운 문제적 인물이다.
탈북 외교관 출신인 그는 3·8 국민의힘 전당대회 때 예상을 깨고 자력으로 최고위원에 당선되며 화제를 모았지만 임기 2년의 8.3%인 2개월밖에 채우지 못하고 지난 10일 지도부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제주 4·3 사건 등 온갖 설화와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엮인 녹취록 구설수 끝에 이날 밤 열린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위원장 황정근 변호사)에서 징계를 낮추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최고위원 자진사퇴 카드를 던진 태 의원은 ‘당원권 정지 3개월’의 징계를 받아 내년 4·10 총선 출마에 대한 희망을 이어가게 됐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1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원권 정지 3개월은 태 의원의 차기 총선 출마를 막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태 의원이 수차례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는 모습에 그간 진정성을 의심하던 의원들도 마음이 풀어졌다”고 했다.
전당대회 때만 해도 스스로 “기적”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한국 정치권의 중심부로 들어섰던 그가 어쩌다 당선 64일 만에 정치적 고배를 마시게 됐을까.
정치권에선 그의 북한식 정치 스타일이 한국 정치와 다소 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도부 소속 의원은 “태 의원이 최고위원 직위를 북한의 조선노동당 상무위원 정도의 개인적 권한과 역할을 가졌다고 인식했던 것 같다”며 “그렇다 보니 지도부와 상의 없이 해명 기자회견을 하거나 말이 앞서는 등 다소 독단적인 행동을 보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3월 8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태영호 의원이 최고위원(왼쪽 둘째)에 당선되자 정진석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왼쪽 셋째)이 그를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태 의원의 “제주 4·3사건은 김일성 지시로 일어났다”는 발언은 북한에서 교육받은 내용을 인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해방 후 격변기에 벌어진 4·3 사건에 대해선 여권에서조차 단선적인 접근을 금기시하고 있다. 해명 과정에서도 잡음이 나왔다. 태 의원의 배우자 오혜선씨는 지난달 18일 열린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배우자 워크숍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남편과 저는 북한에서 ‘제주 4·3사건은 김일성 지시로 일어났다’고 배웠다. 장관께서는 어떻게 보시느냐”라고 물었다. 한 참석자는 “억울함을 풀기 위해 일부러 묻는 것 같아서 부적절해 보였다”고 전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가운데)은 21대 총선을 앞둔 2020년 2월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입당하며 정치권에 입문했다. 영입을 주도한 김형오 당시 공관위원장(왼쪽)과 황교안 대표(오른쪽). 김경록 기자
태 의원의 ‘평양 스타일’ 업무 방식이 MZ 세대 보좌진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태 의원은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출근해 밤 11시 이후에 퇴근하는 등 주 7일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 문제는 이 때문에 보좌진 역시 업무량이 과도하게 늘었다는 점이다. 태 의원실 직원이 일요일에 교회를 다녀왔는데 태 의원이 “다른 보좌진은 다 일하는데 당신은 왜 빠졌느냐”고 지적한 일화도 있다. 이에 태 의원은 지난 7일 “형평이 맞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이유를 물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다른 의원실 보좌진 사이에선 “출근 강요로 들렸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태 의원실에서는 북한식 ‘총화’(자아비판)를 하는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 국민의힘의 한 보좌진은 “태 의원실에서는 회의 도중 보좌진끼리 상호 비판을 시킨다고 들었다. 보좌진이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이진복 수석이 언급된 녹취록도 태 의원에게 불만을 가진 전직 보좌진이 유출했다는 점에서 “보좌진 관리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오른쪽) 지난해 3월 대선을 앞두고 당시 서울 종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도전한 최재형 의원과 함께 춤을 추며 랩을 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구독자 수가 28만5000여명에 달하는 태 의원의 유튜브 채널 ‘태영호 TV’가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태 의원은 이 채널에 의정활동뿐만 아니라 노래와 춤을 선보이는 영상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일주일에 영상 2~3개를 올리면서 보좌진들도 과부하가 걸렸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태 의원은 ‘태미넴(태영호+에미넴)’이라고 스스로 일컬을 정도로 유튜브에 관심이 많다. 그렇다보니 과도한 업무를 해야하는 보좌진 입장에서는 ‘우리를 갈아서 만들었다’는 등 뒷말이 무성했다”고 했다.
하지만 당내에선 태 의원을 감싸는 의원도 적잖게 존재한다. 한 중진 의원은 “우리 당 지지자를 만나 보면 태 의원이 무슨 큰 잘못을 했느냐는 평가가 많다”며 “북한에서 탈출해 남한 사회에서 잘 정착해 여당 지도부까지 된 경험이 있는 태 의원은 우리 당이 잘 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도부 관계자도 “태 의원은 연설에 능해 좌중의 열기를 단번에 끌어올리는 등 여러 장점이 있다. 이번 위기를 잘 극복하면 차기 총선에서 희망을 걸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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