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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무대

37명 이탈표에 민주당 내전 상태…개딸들 "반동분자 색출한다"

중앙일보

입력 2023.02.27 18:54

업데이트 2023.02.27 21:18

오현석 기자 정용환 기자 김정재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개표 도중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다. 김경록 기자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실시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민주당 내부에서 대거 이탈표가 쏟아지면서, 민주당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계(視界) 제로’ 상태에 접어들었다. 윤석열 정권을 ‘검사 독재’로 규정하고 대정부 투쟁의 수위를 높이려던 당 지도부의 계획은 전면수정이 불가피해졌고, 친(親) 이재명계와 비(非) 이재명계의 당내 투쟁도 격화될 조짐이다.

 

안호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본회의 직후 논평을 통해 “윤석열 정권의 부당한 정치탄압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압도적 부결을 공언했던 친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친민주당'으로 분류되는 현역의원 37명 가량이 체포안에 찬성하거나 혹은 기권·무효표를 던져서다. 친명계이자 강경파인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개표 직후 페이스북에 “이탈표가 상당해 여러 고민이 드는 결과”라고 적었다.

당장 비명계에선 이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촉구했다. “지난해 전당대회 때 지도부를 한쪽이 싹쓸이한 데 대한 평가부터 당 운영 쇄신 요구까지, 이제는 이 대표가 직접 답해야 할 때”(비명계 수도권 의원)라는 주장이다. 또 다른 비명계 재선 의원은 “이번에도 이 대표가 침묵으로 일관하면, 그때는 야당 대표 체포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각에선 이 대표의 2선 후퇴 요구도 나온다. 이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당 지지율에 부담이 되는 만큼, 이 대표가 스스로 대표직을 내려놓고 당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체포안 표결 전 이 대표와의 일대일 회동에서 다수 비명계는 이같은 주장을 내비쳤었다. 친문계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여러 사람이 전언(傳言) 형태를 빌어 '이런 주장을 검토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정중히 건의했으나 이 대표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며 “표결 결과가 이렇게 나왔으니 본인이 명확한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에서 공개적인 퇴진 요구가 터져 나올 수도 있다. 비명계에선 특히 지난 21일 의원총회에서 “이번에는 모두가 이견 없이 확실히 부결시키자”고 주장했던 5선 설훈 의원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의총 직전 이 대표와 독대했던 설 의원은 “부결하고 나면 대표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이라며 부결의 불가피성을 피력했다. 다만 설 의원은 이날 본회의 직후 ‘이 대표 사퇴를 요구할 것인가’라는 취재진 물음에 “앞으로 좀 봐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비명계의 공세에도 이 대표는 ‘버티기’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이날 체포안에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138명으로 민주당 169석을 고려하면 압도적 의석이다. 특히 권리당원 사이의 이 대표 지지세는 두텁다. “이 대표 스스로 직을 내려놓지 않는 한 당헌·당규상 이 대표를 끌어내릴 방법은 전혀 없다”(비명계 보좌관)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이 진행 중이던 27일 오후 이 대표 지지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부결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일단 친명계는 ‘쇄신’보다는 ‘전열 정비’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당내에서 ‘신(新)이재명계’라 불리는 김병기 민주당 수석사무부총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열을 재정비하겠다. 검폭 정권의 폭거에 단호히 맞서겠다”고 밝혔다. 서영교 최고위원도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어쨌든 부결됐으니 여권의 다음 공격에 대비하고, 더 단단하고 강하게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개딸’로 자칭하는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은 권리당원 게시판 등을 통해 ‘수박(겉과 속이 다른 의원을 뜻하는 은어) 명단’을 만들어 공유하는 등 이탈표 색출 작업에 나섰다.

계파색이 옅은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표결까지 한 상황에서 이 대표가 물러설 명분이 약하다”며 “반동분자 색출 작업이 시작되면 당내 분란이 걷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호남 지역의 한 민주당 의원은 “이탈표가 예상보다 많이 나왔기에 당분간 당내 갈등이 내전 수준으로 격화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오현석·정용환·김정재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