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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무대

“정치를 멀리하라”… 30년 만의 新노동운동 MZ노조의 도전

[주간조선]

조윤정 기자
입력 2023.02.26 05:35
 
 
 
 
지난 2월 21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서 열린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발대식.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8개 노동조합으로 이뤄진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발대식이 열린 지난 2월 21일, 국회에서는 야권이 단독으로 노란봉투법을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새로고침 노협은 기존 노조의 정치 투쟁, 강경 쟁의와 단호하게 선을 긋는 ‘MZ노조’ 협의체다. 그런 노조가 출범한 날 국회에서는 노동쟁의 범위를 원청까지로 대폭 확대하고 일부 불법 파업에 대한 노조의 책임을 축소하는 법이 여당 의원들의 부재 속에 통과된 것이다. 8명의 젊은 노조위원장들이 서울 용산구 동자동 동자아트홀 연단에 올라 “투쟁의 함성보다는 상식적인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목소리를 모을 때 국회 회의실에서는 강(强) 대 강(强)으로 맞붙은 여야 의원들의 고성이 오갔다.

‘공정과 상식’ 외친 신생 노조들

소위 ‘MZ노조’라 불리는 새로고침 노협은 이렇게 노동 환경과 노조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극심한 와중에 첫발을 뗐다. 8명의 위원장 중 6명이 30대인 이 협의회는 사기업 4곳의 사무직노조, 공기업 4곳의 ‘제2·3노조’ 등으로 이뤄져 있다. 노조의 탈정치, 실리 추구와 공정하고 합리적인 노동권 요구가 노조 활동의 방향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비롯한 양대 노총이 기존에 벌여온 투쟁 중심 쟁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해서는 “노조 본질에 맞지 않는다”며 확실히 선을 긋는다. 송시영 부의장(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 위원장)은 이날 발대식에서 “정치적 구호와 일부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시위라는 기존 방식이 효과가 있는지도 의문”이라며 “노사 동반 성장을 위한 새로운 시위 방식을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새로고침 노협에 참여한 8개 단체는 모두 지난 1~5년 내 생긴 신생 노조다. 금호타이어 사무직노조, 부산관광공사 노조,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 코레일네트웍스 노조, 한국가스공사 ‘더 코가스’ 노조, LG에너지솔루션 연구기술사무직노조, LG전자 사무직노조, LS일렉트릭 사무노조 등이다. 이들 노조 소속 조합원을 모두 합치면 6000명 정도다.

‘MZ노조’라고 불리긴 하지만, 노조위원장과 조합원 연령대는 꽤 다양한 편이다. 특히 4곳의 사기업 노조들은 모두 연구·기술·사무직군 노조다. 연령에 상관없이 기존에 현장 및 생산직이 사무직군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해오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이 최근 몇 년 새 터져 나와 연달아 만들어졌다. LS일렉트릭 사무직노조 백재하 위원장은 “같은 회사에서도 현장직은 호봉제, 사무직은 연봉제로 가고 사무직은 노조 가입도 못 하게 하는 등 견해차가 컸다”며 “사무직 근로자를 대변할 만한 창구가 필요했다”고 설립 계기를 설명했다.

같은 이유에서 이들은 교섭단위 분리도 요구하고 있다. “직종 간 교류도 적고, 직무 간 전환도 없고, 임금 체계도 다르고, 별개의 인사가 이뤄지는데 사무직 근로 환경에 대한 교섭을 (현장직이) 대신한다는 것은 불공정이고 상식적이지 않다”(유준환 새로고침 노협 의장·LG전자 사무직노조 위원장)는 것이다. 기존 노조를 조합원 수로 뛰어넘기는 쉽지 않기에 이들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개선 및 교섭단위 분리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공기업 4곳에서는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공정성’ 이슈가 불거지면서 노조 출범의 직접적인 트리거(trigger)가 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집중적으로 추진하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서울교통공사의 제3노조인 ‘올바른노조’나 한국가스공사의 제2노조인 ‘더 코가스’도 이러한 배경에서 설립됐다.

이들 신생 노조원들은 기존 강성 노조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비조합원 차별이나 조합원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일삼아도 견제할 목소리가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불만이었다. 한국가스공사 ‘더 코가스’ 이동훈 위원장은 “한국가스공사는 유니언 숍이라 무조건 조합에 가입해야 하는데 노조가 하나밖에 없었다. 견제할 수가 없었던 것”이라며 “특히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많이 나왔다. 조합에서 ‘정치 후원금은 어차피 소득공제가 된다’며 특정 정치인을 후원할 것을 강요하는 등 불합리한 일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더 코가스’ 조합원의 75%가 2030세대다.

이렇게 모인 새로고침 노협의 향후 계획은 크게 5가지다. △노동 노사관계법 개선을 통한 교섭창구 단일화 △불공정한 전환 사례 해결과 채용시장 비리 근절 △새로운 시위 방식을 통한 노조문화 인식 개선 △소수사업장 근로자의 의견 청취 △조합원을 위한 복지 공유 등이다. 근무 현장에서 조합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 위주다.

2021년 9월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 송시영 위원장이 서울 성동구 용답동 서교공 본사 앞에서 노동환경 개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photo 송시영 위원장

정부의 전폭적 지지는 양날의 검

‘노조와의 전쟁’을 선포한 윤석열 정부에 이러한 MZ노조 협의회의 출범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연일 양대 노총에 강공을 이어가는 정부의 노동개혁에 이들의 차별화된 메시지가 명분을 안길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 회계 투명성 문제가 대표적이다. 양대 노총이 회계 자료 제출을 거부하자 정부는 지원금 중단 및 환수 카드까지 꺼내들며 강경 대응했다. 이 문제에 대한 새로고침 노협의 입장은 명백하다. “노조의 회계가 투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MZ노조에 대한 정부의 지지는 일단 전폭적인 모양새다. 고용노동부는 양대 노총에 90% 이상을 몰아줬던 노동조합 지원금을 올해는 MZ노조 등 제3노조에 50% 배당하는 방안을 지난 2월 23일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MZ’를 언급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21일 “노조의 기득권은 젊은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만드는 약탈 행위”라며 강경 노조가 주도해온 ‘건폭(건설 현장 폭력 행위)’ 근절을 강력히 요구했다. 윤 대통령이 민주노총을 기득권 노조로 규정하고 견제하면서 자연스레 새로고침 노협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새로고침 노협은 이 같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발대식을 나흘 앞두고 새로고침 노협 소속 한 노조위원장은 주간조선과 만난 자리에서 협의회 구성의 ‘진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에서 지난해 소위 MZ노조 위원장들 몇몇과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었다. 많이 느꼈다. ‘우리가 산별노조라고 해서 이렇게 (따로) 가다가는 그냥 정부에 이용당하다 끝나겠구나.’ 대화도 하고 식사도 하면서 우리끼리 (협의회 구성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

탈정치를 표방하며 탄생한 노조가 정치적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용’이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짚은 것이다. 이에 새로고침 노협이 단순히 ‘MZ 돌풍’을 일으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노동운동으로 확대 발전하기 위해서는 진짜 탈정치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정 갈등의 틈바구니에서도 독자적으로 노동 의제를 발굴하고 메시지를 내는 등 실질적 결과가 필요하다는 요구다.

일단 이들이 전개할 노동운동의 방법은 기존의 민주노총과는 확연히 다를 것으로 보인다. 송시영 부의장은 발대식에서 “쟁의 행위로서의 시위는 노동조합의 기본권이다. 시위를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시대가 달라졌으니 조금은 다른 방식의, 다양한 시위 방식을 연구해 실질적인 효과를 보도록 이끌어내겠다”고 했다. 이어 “노동조합과 관계없는 정치적 구호와 일부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시위로 인해 대중적 인식만 안 좋아질 뿐 기존 방식이 효과가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1995년 11월 창립 이후 한국 노동운동을 정의하고 주도해온 민주노총의 오래된 운동 문법은 ‘투쟁’과 ‘정치 행위’였다. 민주화 이후 IMF 위기로 인한 대규모 정리해고, 2008년 금융위기 전후로 추진된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에 민주노총은 늘 강력한 정치적 대응으로 맞서왔기 때문이다. 노동자 정치 세력화가 민주화 이후 노동자 집단으로서 민주노총의 목표였다. 이를 위한 이들의 주효한 수단은 파업이었고, 이 과정에서 근로조건 등이 아닌 정치적 목적으로 일으키는 연대 총파업이나 불법 파업도 수시로 활용됐다.

민주노총이 창립한 지 약 30년 만에 등장한 MZ노조 협의체의 움직임은 새로운 노동운동의 ‘문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신생 노조들이 창립하기에도 앞서 기존 양대 노총은 2030 직장인의 낮은 노조 가입률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바 있다. 근로 환경을 개선하는 데 힘써야 할 노조가 정치적 구호를 외치고 불법 파업을 자행하면서까지 노동운동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대한 이해가 세대 간에 엇갈린 탓이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위원장 김문수) 장욱희 청년 담당 전문위원은 이를 세대의 특징과 연결지어 설명한다.

“기성세대는 임금이나 처우, 실질적인 혜택 이런 세세한 것들보다도 대의, 정치적 목적, 조직이나 전체 등을 위해 개인을 희생했던 측면이 있다. MZ세대는 굉장히 현실적이다. 임금이나 처우에 있어서 조금이나마 공정하지 않다, 상식적이지 않다 하면 바로 목소리를 낸다.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획일성도 통하지 않는다.”

장 위원은 “특히 코로나19 이후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이 더 거세졌으며,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본다. “청년들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의 조건은 계속 바뀌는데, 코로나19를 전후로 임금과 처우 등 현실적인 조건이 1순위가 됐다. 노동시장 환경이 계속 안 좋아지면서 이러한 현실적인 접근은 더 확대되지 않을까 싶다.”

새로고침 노협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협의체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항목들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 회계 문제도 그중 하나다. 큰 틀에서 ‘회계는 투명해야 한다’ 정도의 합의는 봤지만, 내역을 어디까지 공개할지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소속 노조들은 대체로 조합비를 내는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회계 내역을 상세히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회사 단위 정도의 공지로 확대해야 할지, 투명성을 강조하며 정부와 일반 국민에게까지 공지해야 할지에 대한 설왕설래가 협의회 내에서 계속되는 상황이다.

새로고침이 ‘국민노총’ 되지 않으려면

의결 과정도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다. 협의회에 따르면, 의장 및 부의장은 행정상 편의를 위해 있을 뿐 8명의 위원장은 모두 동등한 권한을 갖는다. 다만 이 경우 협의회 내에서 이견이 생겼을 때 이를 중재하거나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등의 의사결정에 미흡한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질문에 유준환 의장은 협의회 발대식에서 “우선 이견이 없는 수준에서 의결된 내용에 한해서만 대외적으로 공지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무엇보다 협의회의 가장 큰 숙제는 노동시장에 대한 독자적인 통찰과 의제를 내놓는 것이다. 기존 노조에 대한 반대급부로만 목소리를 내게 되면 십여 년 전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던 ‘국민노총’처럼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민노총은 2011년 탈이념과 실용 노선에 기반을 둔 새로운 노동운동을 표방하며 공식 발족했지만, 당시에도 불분명한 노선과 조직 규모가 한계로 지적됐다. 결국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3년 만에 한국노총에 흔적도 없이 통합됐다. 심지어 당시 이명박 정부의 ‘민주노총 힘 빼기’에 국민노총이 동원되면서 ‘MB 노총’이라는 오명까지 쓰게 됐다. 2020년에는 실제로 국민노총 출범과 노조 운영 등에 이명박 정부가 상당 부분 관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어용 노조’로서의 한계를 명백히 드러낸 사례로 꼽힌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MZ노조가) 국민노총처럼 되지 않으려면 더 많은 사람의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들의 주장이 이른바 양대 노총에 가입해 있는 MZ세대에게도 가 닿을 수 있을 만큼 설득력이 있는지를 봐야 한다. 만약 그렇게 기존 노동운동과는 차별화되는 새로운 운동의 흐름을 만들려면 기존 조합원들까지도 설득할 수 있는 노동계의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물론 새로고침 협의회는 국민노총과 달리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노조들의 연합체다. 그러나 정치적 지원을 넘어 노동조직으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면 자칫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우려 또한 나온다. 이병훈 교수는 이어 “(제3노조가 정부 지원에만 의지할 경우) 정권이 바뀌고 정치적 지원이 사라지면 그런 노동운동은 흐지부지돼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정의당 비대위원으로 발언하는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한 총장은 최근 “하위 노동자 50%인 1500만명의 임금을 논의하기 위해 상생위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photo 뉴시스

민노총이 외면한 이중구조 해소해야

새로고침 협의회가 제시해야 할 노동시장 의제는 역설적으로 민주노총이 제시하고 있다. 오랜 기간 민주노총이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불거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문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해소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동일 노동에 대해 동일 임금을 받을 수 있게끔 하는 의제를 새로고침 협의회가 던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은 노사정 협의체에 수년째 불참하면서 이러한 이중구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 대타협을 외면해왔다는 비판을 들어왔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이에 대한 실망감도 적잖이 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민주노총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전태일재단 한석호 사무총장이 정부 산하 상생임금위원회에 참여하는 일도 벌어졌다. 40년간 노동운동을 해온 한 사무총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상생위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하위 50%에 해당하는 1500만명 노동자의 ‘사회적 임금’을 의제화하기 위해 참여를 결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양경수 위원장 명의의 공문을 보내 한 총장의 사무총장직 사퇴와 상생위 탈퇴를 요구했다. “윤석열 정부가 구성한 상생위에 참여한 것에 우려를 표한다”는 것이다. 재단을 비롯한 노동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이 사태를 두고 민주노총이 전태일재단의 독립적 활동을 침해했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새로고침 협의회도 소수 사업장 근로자에 대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발대식에서 “소수 사업장이나 노동 사각지대 근로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필요한 부분, 개선할 점은 무엇인지 노동시장에서 입장을 대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활동 방향을 밝힌 바 있다. 나아가 이를 위해 노사정 협의체 등을 통한 사회적 대타협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점도 협의회는 분명히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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