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22.12.06 18:39
업데이트 2022.12.07 09:37
하준호 기자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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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 전 대법원장이 11월 14일 노환으로 영면에 들었다. 향년 87세. 윤 전 원장은 취임 첫해에 구성된 '사법제도발전위원회'를 주도했다. 사진 대법원
사법부 독립과 사법개혁의 기초를 닦았던 윤관(사진) 전 대법원장이 14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7세.
고인은 전남 해남 출신으로 광주고, 연세대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10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 1962년 광주지법 순천지원 판사로 임관했다. 장흥지원장, 순천지원장 등 13년간 향판으로 일하다 서울민·형사지법 부장판사에 발탁됐다. 이후 광주·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지법 북부지원장,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청주·전주지방법원장을 거쳐 86년 대법관(당시 대법원 판사)에 임명됐고, 89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지냈다.
고인은 김영삼 정부 때인 93년 12대 대법원장에 임명돼 99년 퇴임했다. 유태흥 전 대법원장 이후 13년 만에 임기를 채운 대법원장이었다. 재임 중 사법부 독립 100년(1895년 재판소구성법 제정)을 맞이했고, 95년 대법원 청사를 서소문에서 서초동으로 이전하며 ‘서초동 시대’를 연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시대적 상징성을 고인은 93년 9월 자신의 취임사에 ‘사법부의 대전환기’라고 직접 표현했다.
고인은 취임 첫해 사법제도발전위원회(93년 11월~94년 2월)를 구성해 피의자 인권 보호, 사법부의 독립성 강화 등 인사·조직·재판 관련 제도 개혁을 했다. 구속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 기소 전 보석제도, 법원의 입법의견 국회 제출권, 사법보좌관제, 법관 평가제 도입, 시·군 법원 및 특허·행정법원 설치와 서울민·형사지법 통합(서울중앙지법) 등이 고인의 손을 거쳤다.
77년 서울형사지법 부장판사 시절 첫 재판에서 교도관의 난색에도 피고인들이 찬 수갑을 풀도록 한 건 잘 알려진 일화다. 대법원장 재임 땐 외부행사가 없는 한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가져와 집무실에서 홀로 먹어 ‘수도승’이란 별칭이 붙었다.
중앙선관위원장 시절엔 92년 14대 대선에서 낙선한 정주영 당시 국민당 후보가 중앙선관위를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의 끄나풀’이라고 비난하자 “전국 선관위에 판사가 350명 투입돼 있는데, 이 사람들이 안기부의 끄나풀이란 근거가 있으면 하나라도 대라”고 반박해 사과를 받아낸 일화도 있다.
고인이 대법원장으로 이끈 전원합의체는 97년 군형법상 반란, 형법상 내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각각 무기징역,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퇴임 이후엔 영산대 명예총장, 영산법률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일했다. 2015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유족으론 부인 오현씨와 아들 준(광주고등법원장)·영신(에듀조선 대표)·영보·영두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은 16일 오전 9시, 장지는 대전 현충원이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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