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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행

발 밑에 내려온 스물여덟 별자리… 디딤돌 하나하나 “소원을 말해봐!”

입력 2022-12-10 03:00업데이트 2022-12-10 09:36
 
[여행 이야기]충북 진천·증평
음양 조화-우주 상징하는 농다리
비범한 땅 기운 서린 김유신 탄생지
가족나들이로 각광받는 증평
하늘의 28수 별자리를 따라 28칸 돌 교각으로 조성해 놓은 충북 진천군의 농다리. 하늘의 중심인 자미원 색깔처럼 붉은빛을 띤 돌다리를 건너가면서 28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면 영험한 기운이 응한다고 한다. 명당 혈에 돌다리를 건설한 점도 세계에서 보기 드문 사례다.
충북 진천과 증평에는 진가에 비해 덜 알려진 명소들이 많다. 진천군이 동양 최고(最古)의 징검다리라고 자랑하는 ‘농다리’는 천년 전 별자리를 지상에 구현해 놓은 돌다리이고, 태령산의 김유신 장군 태실은 현전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탯줄 풍수’ 현장이다. 바로 이웃인 증평군의 좌구산과 벨포레는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가 추천하는 숨겨진 가족 나들이 명소다.
○28개 별자리를 구현해 놓은 농다리
지네가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농다리를 건너가면 산 고갯길 너머에 진천의 또 다른 명소인 초평저수지가 기다린다.
징검다리가 참 희한하게 생겼다. 붉은 빛깔의 돌들이 물고기 비늘처럼 안으로 켜켜이 들이쌓여 하나의 교각을 이루고 있다. 물길을 가로질러 촘촘하게 늘어선 교각들 사이로는 상판석을 놓아 건너가도록 했다. 전체 길이가 93.6m인 다리는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지네가 살아 꿈틀거리는 듯하다.

모두 28칸(교각과 교각 사이)으로 구성된 징검다리는 석회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자연 그대로의 크고 작은 돌들을 적절히 배합해 쌓은 형태다. 자세히 살펴보니 교각들 모두 양 끝이 유선형으로 오므라져 있고, 위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계단식 구조를 하고 있다. 오랜 기간 물의 흐름을 연구한 결과 강한 물살에 잘 버틸 수 있도록 고안해낸 ‘과학 작품’인 셈이다.

이 징검다리는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굴티마을) 앞 미호천(세금천)에 있는 돌다리다. ‘농다리’로 불리는 지방유형문화재다. 농다리는 일제강점기 일부 교각이 인위적으로 훼손되긴 했지만 오랜 세월 거의 원형 그대로 버텨 왔다. 지금의 다리는 2008년에 고증 작업을 거쳐 훼손됐던 4칸까지 모두 복원해 놓은 것이다.

 
향토지인 ‘상산지’(常山誌·1825년 편찬, 1932년 재간행)와 인문지리서인 ‘조선환여승람’에 의하면 농다리는 고려 초기 (상산) 임씨의 선조인 임 장군이 처음 건축했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다리이다 보니 범상치 않은 내력도 가지고 있다.

먼저 임 장군은 농다리의 28칸 교각이 하늘의 별자리 28수(宿)를 상징하도록 배치했다(‘상산지’). 동양 천문학은 하늘의 별자리를 동서남북 4개 영역으로 구분한 다음, 각각의 방위에 7개의 별자리를 배속해 28(4방위×7별자리)수라고 부른다. 즉 다리의 28칸 교각은 동(각·항·저·방·심·미·기) 서(규·누·위·묘·필·자·삼) 남(정·귀·유·성·장·익·진) 북(두·우·여·허·위·실·벽)의 28개 별자리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임 장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음양의 기운이 고루 배합된 돌들을 사용해 농다리를 축조했다. 결론적으로 음양의 조화와 우주를 상징하는 농다리는 그 자체가 모든 사람의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도량이라는 의미다(‘농다리원형복원사적비’).

자색(紫色)의 사암(砂巖) 성분인 농다리 돌들은 하늘의 중심이자 옥황상제가 머문다는 자미원을 상징하는 색깔이기도 하다. 28수 별자리를 하나하나 세면서 농다리를 건너가면 소원이 이뤄질 법도 하다. 희한하게도 농다리 자체가 명당 혈(穴)에 축조됐다는 점도 세계에서 보기 드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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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버티고, 용이 서린 것 같은 농다리’(조선환여승람)를 건너면 나지막한 고갯길인 살고개가 나타나고, 곧 초평저수지 둘레길로 이어진다. ‘초롱길’로 불리는 이 코스는 고즈넉하면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특히 진천군청소년수련원 인근 하늘다리(길이 93m의 출렁다리)로 이어지는 약 1.5km 수변 덱 구간(1.6km)이 산책의 백미로 꼽힌다.

한반도지형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저수지 전경. 점점이 박힌 수상 좌대는 이곳이 민물낚시 명소임을 보여준다.
초평저수지는 곳곳에 자리 잡은 수상가옥 좌대, 카누 선수들의 연습하는 모습, 한반도 모습의 지형 등 아날로그적 감성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윤기가 잘잘 흐르는 진천 쌀밥에다 초평 붕어마을의 붕어요리(찜과 조림)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김유신 탯줄 묻힌 태령산
태령산 자락의 김유신 탄생지. 담안밭으로 불리는 이곳은 만노군(현 진천) 태수였던 아버지 김서현 장군의 집무처였다.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 하면 보통 경주를 떠올리게 된다. 그가 살던 옛집과 묘가 경주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김유신이 태어난 곳은 진천이다. 그가 태어난 생가 터와 그의 탯줄이 묻힌 태실이 모두 진천 땅에 있다. 어린 시절 김유신에게 큰 영향을 준 곳은 진천인 것이다.

김유신 탄생지는 태령산 남쪽 자락(진천읍 상계리)에 있다. 그의 아버지 김서현 장군이 만노군(현 진천) 태수로 부임했을 당시 집무를 보던 공간이다. 한눈에 보아도 대명당 터에 해당한다. 이곳을 안내한 김유신 장군의 27대 손인 김동열 씨(79·진천군 거주)는 “이 터에서 아이를 낳으면 최소 장관급은 된다는 소문이 나서, 땅기운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적잖게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가 태어난 장소에 큰 담을 쳤다고 해서 ‘담안밭’으로도 불리는 김유신 탄생지는 김유신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탄생지의 뒷배가 되는 태령산 자락엔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인 연보정이 있고, 산 정상에는 김유신의 탯줄을 묻어 놓은 태실이 있다.

김유신 탄생지에서 연보정을 거쳐 산 정상의 태실(약 462m 높이)까지는 등반 느낌이 들 만큼의 땀을 필요로 하지만, 태실의 기운은 그 노고를 넉넉히 보상해준다. 자연석으로 둥글게 기단을 쌓아 올린 뒤 그 위로 흙을 덮은 봉분 형태인 태실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태실로 꼽힌다. 김서현 장군은 태실을 조성한 후 주위에 태아의 모습으로 성을 쌓았다고 전해지는데, 그 흔적이 지금도 있다. 김유신 태실은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먼저 금관가야 왕족 후손인 아버지 김서현이 조성한 태실은 신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어 가야에서 유래한 풍속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는 태실 풍속이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라는 직접적 증거가 될 수 있다.

또 태실은 생명의 상징인 탯줄이 명당에 묻힘으로써 탯줄의 주인공 역시 살아서 땅기운을 받아 누린다는 풍수관을 보여준다. 이는 풍수가 망자(亡者)와 산 사람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조선 왕조가 왕자와 공주들의 탯줄을 명당에 안치하기 위해 전국 명산을 뒤져 태실을 조성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어쨌든 진골 출신의 김유신이 사후 왕급인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데는 진천의 신령한 땅기운도 단단히 거들었으리라 생각된다.
○가족 힐링 여행의 별천지 증평
충북 증평 두타산 자락의 에듀팜관광특구(벨포레)는 4계절 썰매, 루지, 양떼목장의 양몰이 체험 등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나들이 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과 가까워 하루 나들이 코스로 적당하면서도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힐링 여행지로 부상하고 있는 곳이 증평군의 좌구산자연휴양림과 에듀팜관광특구(벨포레)다.

먼저 증평의 남쪽 끝에 있는 좌구산(坐龜山·657m)은 행복과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 앉아 있는 모습을 한 산이다. 이 산에 조성된 자연휴양림에서는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즐길 수 있다. 낮에는 숲속 산책 및 ‘명상의 집’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주변에 볼거리도 풍성하다. 거북바위정원, 협곡에 설치한 길이 230m, 높이 50m의 출렁다리(명상구름다리), 어린이들을 위해 꾸민 병영하우스 조형물 등이 있다. 밤에는 휴양림 내 맨 꼭대기에 있는 천문대에서 별을 관측하며 다양한 천문 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좌구산휴양림만의 장점이다.


증평군 북쪽 두타산 자락엔 또 다른 별세상이 있다. 양떼 목장, 4계절 썰매장, 골프(18홀 규모), 제트보트와 요트, 루지 등 종합레저단지(에듀팜관광특구)인 벨포레다. 이곳에서 어른, 아이 모두에게 인기를 끄는 것이 2.9km 길이의 루지다. 리프트를 타고 산 중턱까지 올라간 다음 무동력 카트를 타고 산길을 지그재그로 내려오며 스릴을 즐길 수 있다. 또 양떼 목장에서 양몰이 개의 양몰이 시범 공연도 아이들의 인기를 끄는 코스다. 증평군은 울릉군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제일 규모가 작은 군이지만, 알찬 관광 콘텐츠로 여행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글·사진 진천=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