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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크림대교서 대형 폭발... 푸틴의 전쟁 보급로 치명타

입력 2022.10.09 16:52
 
 
 
 
 
 
8일 오전 6시 7분(현지시각), 크림반도와 러시아를 잇는 크림대교에서 트럭폭탄이 폭발해 다리 수십m가 무너지고 철도교량을 지나던 열차도 불에 탔다./로이터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빼앗아 강제 합병한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케르치해협 대교(일명 크림대교)에서 8일 오전 6시 7분(현지 시각) 대형 폭발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에서 크림반도 쪽으로 가는 차량용 교량 상판 수십m가 무너지고, 바로 옆 철도 교량을 지나던 연료 수송 열차의 화차 59개 중 7개에 화재가 나 철도 교량도 수십m 불탔다. 타스통신 등 러시아 매체는 “도로와 철도 운행이 양방향 모두 중단됐다”며 “크림반도와 러시아 간의 물류가 지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내무부와 국가반(反)테러위원회, 러시아연방보안국(FSB) 등이 참여한 조사 위원회는 이날 “폐쇄회로 TV 영상 등 증거 자료를 분석한 결과 차량용 교량을 지나던 트럭에서 폭탄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폭발한 트럭 인근에서 달리고 있던 차량 탑승객 남녀 2명 등 총 3명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정부나 관련 단체를 이번 사건의 배후로 의심하고 있다. 조사위원회는 “이 트럭의 소유주는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지역에 거주하는 남성”이라며 “추가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8일(현지 시각)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케르치해협대교(크림대교)에서 발생한 대형 폭발로 철도교를 지나던 연료 수송 열차가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불타고 있다. 이 다리는 러시아에서 크림반도 지역에 식량과 연료, 생필품 등을 공급하는 ‘생명줄’ 같은 역할을 한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최전방에 병력과 무기, 장비 등을 실어 나르는 핵심적인 보급선 기능을 해왔다./AFP 연합뉴스

크림대교는 크림반도 동부 케르치반도와 러시아 크라스노다르주 서부의 타만반도를 잇는 길이 18㎞의 다리다.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이기도 하다. 복선 철도교와, 왕복 4차선 차량용 도로교로 이뤄져 있다. 2018년 이 다리가 개통되면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거치지 않고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육로로 바로 이을 수 있게 됐다. 또 선박으로 2~3일 걸리는 크림반도와 본토 간 물류를 하루 반나절 수준으로 단축할 수 있어 크림반도의 러시아 경제권 편입 및 이번 전쟁에서 중요한 보급로 역할을 해 왔기에 러시아에는 큰 타격으로 평가된다.

크림대교의 정확한 피해 상황은 즉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러시아 교통부는 “차량용 교량은 (양방향 상판 2개 중) 손상되지 않은 쪽 2차선을 이용해 운행이 곧 재개될 것”이라며 “크림대교 철도 통행도 8일 오후 8시 재개될 예정”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CNN, 영국 가디언 등은 그러나 현장 사진과 위성 사진을 근거로 “차량용 교량의 경우 크림반도 쪽 방향 차로 2개가 완전히 무너졌고, 반대쪽 방향 도로도 크게 그을렸다”며 “손상 정도가 심해 복구에 2개월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또 “약 30m 정도 떨어진 철도교 역시 다리 구조물이 완전히 불타거나 휘어버린 모습이 확인됐다”며 “정상적인 열차 운행이 가능할지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도 덴마크 교량 설계·건축 전문 업체인 COWI를 인용해 “폭발 때문에 크림대교의 구조가 손상돼 완전 복구에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관측했다.

크림반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후로는 러시아군에 탄약과 식량, 병력 등을 공급해 온 핵심 보급로 역할도 해왔다. 영국 국방부는 “남부 전선의 경우 돈바스 지역을 통한 철도 보급선의 수송량이 많지 못한 데다, 우크라이나군의 습격에 항상 노출되어 있어 크림반도를 통하는 보급선이 주로 이용돼 왔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크림대교의 운영 중단이 당장 러시아군의 전투력에 치명적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전쟁 초기부터 지적받아 온 러시아군의 보급 문제는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를 이용해 후방 보급 부대를 집중 타격하는 우크라이나군의 공세로 더욱 심각해진 상황”이라고 평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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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이 찍은 크림대교 폭발사진./막사테크놀로지/EPA 연합뉴스

이 다리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과 흑해로의 영향력 확대를 상징하는 기념물이기도 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18년 5월 크림대교 개통식에서 “제정 러시아 시대 이래 러시아의 꿈이 드디어 이뤄졌다”고 말했다. 자신이 직접 오렌지색 카마즈 트럭을 몰아 다리를 건너기도 했다. 이러한 전략적·경제적 가치와 상징적 중요성 때문에 크림대교는 우크라이나의 ‘공격 목표 1 순위’에 올라있었다. 우크라이나는 올해 2월 러시아의 침공 직후부터 “크림대교를 폭격해 파괴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밝혔고 , 러시아는 이에 대응해 “크림대교가 공격받을 경우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대규모 폭격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러시아는 즉각 우크라이나를 사건의 배후로 지목하고 비난에 나섰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우크라이나 측이 크림대교 폭발 사건을 대거 축하하고 있다”며 “민간 시설 파괴에 대한 이런 반응은 우크라이나가 테러리스트임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했다. 겐나디 주가노프 러시아 공산당 당수는 “이번 사건은 (우크라이나의) 테러 공격”이라며 “특별 군사작전을 대테러 작전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키릴 스트레무소프 헤르손주 친러 행정부 부수반도 “모두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보복 공격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3월 14일 크림대교 건설현장을 찾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측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은 “이번 사건은 하나의 시작”이라며 “앞으로 (러시아가 만든) 불법적인 것은 모두 파괴되고, (러시아가) 도적질한 모든 것은 우크라이나에 반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올렉시 다닐로우 우크라이나 국가안보보좌관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사고로 불타는 크림대교 모습과 할리우드 여배우 매릴린 먼로가 “대통령님,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합성한 영상을 올려 전날 70세 생일을 맞는 푸틴 대통령을 조롱했다. 우크라이나 우정본부는 “크림대교, 정확하게는 크림대교였던 것의 기념우표를 발행하겠다”고도 밝혔다.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 ‘우크라인스카프라우다’는 그러나 정부 고위 인사를 인용해 “크림대교 폭발은 우크라이나 보안국 특수전 부대의 성과”라고 보도했다.

한편 크림대교 통행이 중단돼 크림반도에서는 연료와 식료품 고갈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크림반도 행정부는 이날 “당분간 1명당 3㎏까지만 식료품을 구매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크림대교의 정확한 복구 시점을 가늠하기 어려워지자 불안해진 시민들이 사재기에 나설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