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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행

[단독]"文생가라고요? 엄마야!" 8m 철제 펜스 싸인 그 집 사연 [e즐펀한 토크]

중앙일보

입력 2022.10.08 05:00

업데이트 2022.10.08 12:09

 

“조용히 해주세요!”…철제 울타리 친 그 집
지난달 23일 오후 경남 거제시 거제면 남정마을. 50가구 100여명이 사는 조용한 마을이다. 주민은 대부분 중장년층으로, 시끄러운 소리가 날 일이 드문 곳이라고 한다. 마을 뒤에 우뚝 솟은 선자산(해발 507m)에서 불어온 바람에 노랗게 익은 벼가 ‘살랑살랑’ 나부끼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마을 분위기와 다소 어울리지 않는 집이 있다. 바로 문재인 전 대통령 생가다. 생가에는 “이곳은 주민이 사는 일반 가정입니다! 조용히 해주세요!”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바로 옆에는 “함부로 들어올 시 주거침입죄에 해당하오니 출입을 삼가”해달라는 안내판도 있었다.

지난달 23일 경남 거제시 거제면 남정마을에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 생가. 녹색의 철제 펜스와 함께 검은색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안대훈 기자

2017년 9월 경남 거제시 거제면 남정마을에 있는 당시 문재인 대통령 생가 출입구를 트랙터가 막고 있다. 사진 거제시

생가는 마당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막혀 있었다. 높이 2m, 길이 8m의 ‘ㄴ’자로 꺾인 녹색 그물망 형태 철제 펜스가 울타리마냥 출입구를 둘러싸고 있었다. 펜스에는 내부가 잘 보이지 않게 검은색 비닐재질 가림막도 처져 있었다. 생가에 사는 50대 마을 주민이 사생활 침해를 호소하면서 취한 조치다.

생가는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적게는 1000명에서 많게는 5000명이 주말마다 방문했다고 한다. 관광객들은 생가에 아무때나 불쑥 들어와 사진을 찍었다. 그러자 집 주인이 트랙터로 출입구를 막기도 했다. 지금은 폐쇄회로TV(CCTV)까지 설치한 상태다.

“네?! 그 집이 생가라고요?”…눈앞서 못 찾는 文 생가

문 전 대통령 생가는 240㎡ 부지에 연면적 36.36㎡ 규모의 슬레이트 집이다. 거제시와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1953년 1월 이곳에서 태어났다. 6살까지 이 마을에 살다가 부산 영도로 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대통령 부모는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12월 함경남도 흥남 철수 때 피란와 이 마을에 머물렀다고 한다.

지난달 23일 경남 거제시 거제면 남정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생가 내부 모습. 안대훈 기자

지난달 23일 경남 거제시 거제면 남정마을에 설치된 문재인 전 대통령 생가 안내판. 장기간 방치돼 글자를 알아보기 어렵다. 안대훈 기자

생가는 많이 낡은 모습이다. 슬레이트 지붕에는 녹색 이끼가 말라붙어 있었고, 콘크리트 벽도 곳곳이 검게 변색돼 있었다. 철제 울타리에 가림막까지 설치돼 있다보니, 관광객은 눈앞에 두고도 찾기가 쉽지 않다. 상당수 관광객은 생가 안내판을 따라 가도 마을을 빙빙돌기 일쑤다. 거제시가 설치한 ‘생가 안내판’도 오랫동안 관리가 안 돼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곳을 찾은 정모씨는 "조그만 마을에서 대통령 생가 찾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 마을 부녀회장 김모(48)씨는 “처음 온 사람들이 실망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며 “눈앞에 생가를 두고도 못 찾아서 물어본다. 말해주면 ‘거기가 생가라고요? 엄마야!’라며 놀란다”고 말했다. 이어 “생가 복원이 안 되다보니, 지금은 많이 안 온다. 주말에도 10명 정도 올까?”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번 왔던 분들이 다시 오시는데, ‘이번엔 좀 바뀌었나’ 싶어서다. 매번 실망하고 돌아간다” 말했다.

기록관에 공원까지…역대 대통령 생가 대부분 복원

역대 대통령 생가는 대부분 복원해 관광자원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통령기록관에 따르면 황해도 출신인 이승만 대통령을 제외하면, 역대 대통령 생가는 대부분 복원했다.

 

문 전 대통령 생가에서 차로 30분 거리(21㎞)인 거제시 장목면 대계마을에는 ‘김영삼 대통령 생가’가 있다. 536㎡ 부지에 기와를 얹은 목조 건물 3동(본채·사랑채·사주문)으로 이뤄진 집으로, 2001년 5월 거제시가 복원했다. 바로 옆에는 지상 2층 규모 대통령 기록전시관과 공원도 조성돼 있다.

2006년 12월 경남 거제시 장목면 대계마을에 있는 김영삼 대통령 생가. 중앙포토

2017년 11월 경남 거제시 장목면 대계마을의 김영삼 대통령 생가에 있는 김 전 대통령의 흉상과 대통령 내외의 실물 크기 사진. 김진국 기자

경남 진해시 진영읍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 생가는 2009년 9월 복원됐다. 초가집 형태로 본채와 아래채, 헛간, 옛날식 화장실 등이 있다. 주변에는 대통령 묘역과 생태문화공원이 있다. 최근에는 지상 2층 규모의 ‘깨어있는 시민 문화체험전시관’도 개관했다. 이와 함께 경북 구미 박정희 대통령, 경북 포항 이명박 대통령, 충남 아산 윤보선 대통령 생가도 복원돼 관광객을 맞고 있다.

대통령 생가는 해당 지역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운영하는 ‘관광지식정보시스템’을 보면, 노무현 대통령 생가에는 지난해 25만9000여명이 방문했다. 같은 기간 김영삼 대통령 생가는 8만2000명이 찾았다. 경북 구미 박정희 대통령 생가도 6만8000명이 다녀갔고, 충남 아산의 윤보선 대통령 생가와 경북 포항 이명박 대통령 생가에도 각각 3900여명, 5500여명이 찾았다.

2019년 5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 생가. 송봉근 기자

2009년 9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 생가. 복원공사를 마친 뒤 언론에 공개된 모습. 중앙포토

다른 사람 살고 있어 복원 어려워?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 생가는 예외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의아해한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거제시는 생가 복원을 검토했다. 그해 생가에서 약 300m 떨어진 부지(2164㎡)를 임대해 임시주차장과 화장실도 조성했다. 이곳 임대료(연간 1000만원)는 거제시 예산으로 지출되고 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 생가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보니, 복원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도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며 복원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후 생가 복원 계획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송봉근 기자

 

최근 거제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생가를 복원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안석봉 거제시의원은 지난달 19일 의회에서 “(김영삼 대통령 생가와 달리) 문 전 대통령 생가 전혀 관리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 “작고 허름한 생가지만 흥남철수 작전으로 메레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거제로 피란 왔던 문 전 대통령 가족을 비롯한 피란민들 아픈 역사가 깃든 곳”이라고 했다.

지난달 23일 경남 거제시 거제면 남정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생가에 녹색의 철제 펜스가 설치돼 있다. 안대훈 기자

"돈도 없고 명분도 약해"
거제시는 ‘생가 부지와 건물 매입’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복원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역대 대통령 생가는 대부분 가족이나 친지 등 직접 이해관계인이나 지지자들이 매입, 지자체에 기부채납하면서 복원 작업이 추진됐다.

노무현 대통령 생가는 그의 고교 동창생이 매입, 김해시에 기부하면서 본격적인 복원이 시작됐다. 김영삼 대통령 생가는 부친인 고(故) 김홍조 옹이 부지와 건물 일체를 거제시에 기증하면서 재정비가 가능했다. 나머지 대통령 생가도 대부분 ‘기부채납’ 또는 ‘(대통령) 자가소유’ 형태여서 복원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고 거제시는 설명했다.

지난달 23일 경남 거제시 거제면 남정마을에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 생가에 ″조용히″라고 적힌 검은색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안대훈 기자

시 관계자는 “용지 매입부터 복원 전반에 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다른 대통령 생가 복원 사례와 비교해 형평성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돈도 없고 명분도 약하다"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에 사저를 지어 퇴임 후 살고 있다. 대지 면적은 2630.5㎡(795.6평) 이다. 사저와 경호동 등을 갖추고 있다. 이곳은 문 전 대통령 부부가 2020년 4월 14억7000만 원을 들여 매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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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안대훈 기자 an.daeh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