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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소리 없이 적 파괴하는 700원짜리 무기…'살인광선 전쟁' 온다 [이철재의 밀담]

 

중앙일보

입력 2022.08.28 05:00

업데이트 2022.08.28 10:00

1958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은 빛을 증폭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해 12월 학술지에 관련 논문이 실렸다. 인공 증폭광(光)은 매우 강력했다.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사방으로 퍼지지 않고 똑바로 날아갔다. 게다가 파장의 위상이 자연광과 달리 일정해 흩어져 버리지 않았다. 렌즈로 한군데 모으면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도 있었다.

이 빛은 ‘유도 방출에 의한 빛의 증폭(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이라고 불렸다. 영어의 대문자를 딴 레이저(LASER)라고 더 잘 알려졌다.

SF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5 '제국의 역습' 호스의 전투 장면. 제국군의 AT-AT가 레이저를 쏘며 반란군 진지에 돌격하고 있다. 루카스 필름

60년 미국에서 최초의 레이저 발진장치가 나왔다. 그러자 레이저는 살인 광선(Death Ray)이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살인 광선은 1920~30년대부터 SF를 중심으로 떠돌던 ‘도시전설’이다. 무선통신을 개발한 굴리엘모 마르코니나 전기공학자인 니콜라 테슬라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실물을 본 사람은 없었다.

군은 레이저를 반겼다. 군 지휘부는 기원전 215년 시라쿠사의 과학자인 아르키메데스가 50개의 대형 청동거울로 태양광을 모아 침략군 로마의 전함을 불태운 것처럼 레이저가 그 같은 무기가 되리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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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레이저는 또 다른 도시전설처럼 돼 버렸다. 레이저를 살상무기로 쓰기엔 위력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시라쿠사가 아르키메데스가 만든 청동 거울로 로마 군함을 불태우고 있다. 1600년 피렌체에서 그린 상상도. Giulio Parigi.

근거리에서 포탄이나 로켓을 요격하기 위해서는 100㎾ 이상, 100㎞ 이상 떨어진 표적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1㎿ 이상의 출력이 각각 필요하다. 1㎿는 750가구에 전력을 공급하는 소형 발전소 수준이다.

그래도 기술의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전쟁터에서 레이저 무기가 나타나는 건 시간문제라고들 생각했다. 그리고 가는 실 여러 개를 꼬아 밧줄을 만들 듯 광선을 결합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드디어 살인광선의 시대가 열렸다. 62년 만이다.

장갑차와 구축함에도 레이저 방공포가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육군은 앞으로 45일 안에 직접 에너지 이동 단거리 방공(DE M-SHORAD) 체계를 오클라호마주 포트 실의 방공부대에 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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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레이저 무기가 편제 무기로 들어간 첫 사례”라고 평가했다. DE M-SHORAD는 미 육군의 장갑차인 M1126 스트라이커에 50㎾ 레이저를 탑재했다. 적의 무인기를 격추하거나, 아군 진지로 날아오는 적의 포탄ㆍ로켓ㆍ박격포탄을 요격하는 게 임무다.

미국 육군의 직접 에너지 이동 단거리 방공(DE M-SHORAD) 체계. 미 육군

미 육군은 스트라이커보다 작은 보병분대차량(ISV)에 20㎾ 레이저를 단 육군 다목적 고에너지 레이저(AMP-HEL) 체계를 내년부터 실전배치할 예정이다.

미국의 방산업체인 록히드 마틴은 광학 교란기ㆍ감시 장비와 통합한 고에너지 레이저(HELIOS헬리오스)를 미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인 프레블함(DDG 88)에 장착했다고 18일 밝혔다.

미국 해군의 광학 교란기ㆍ감시 장비와 통합한 고에너지 레이저(HELIOS). 록히드마틴

60㎾ 이상의 레이저를 쏘는 헬리오스는 ▶적의 소형 드론이나 보트를 공격하거나 ▶적 함정이나 항공기의 광학 센서를 교란하거나 무력화해 조준을 못 하게 하거나 ▶적의 레이저 조준을 감지하는 기능을 가졌다.

록히드마틴은 헬리오스를 최소 1대 더 납품해 미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에 무장할 계획이다. 또 록히드마틴은 미 해군과 앞으로 헬리오스의 레이저 출력을 150㎾까지 높이는 방안을 놓고 협의 중이다.

마하 속도로 날아오는 적 미사일을 요격

올해 레이저 무기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록히드마틴은 공군의 AC-130J 고스트라이더에서 60㎾급의 공중 고에너지 레이저(AHEL) 체계로 지상 목표물을 타격하는 실험을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다.

미국 공군의 AC-130J 로스트라이더가 공중 고에너지 레이저(AHEL) 체계로 지상 목표물을 공격하는 모습의 상상도. 미 공군

AC-130J는 C-130J 수퍼 허큘리스 수송기를 개조한 건십(gunship)이다. 기본 무장은 30㎜ 기관포와 M102 105㎜ 곡사포. 여기에 GBU-39 SDB나 AGM-114 헬파이어 미사일과 같은 정밀유도무기도 발사할 수 있다. 한마디로 ‘날아다니는 포대’다.

AC-130J의 ‘고객’은 델타포스ㆍ네이비실와 같은 미 특수작전사령부(SOCOM) 예하 특수부대다. 화끈한 화력으로 지상의 특수부대원을 지원하는 공격기다. 야간에도 정확한 사격이 가능하다.

SOCOM은 AC-130J의 AHEL이 적 차량의 엔진이나 통신장비를 은밀하게 파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 공군은 또 다른 레이저 무기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인 PCA가 자체방어 고에너지 레이저 시연기(SHiELD)로 적 미사일을 요격하는 모습의 상상도. 록히드마틴

미 공군 연구소(AFRL)는 자체방어 고에너지 레이저 시연기(SHiELD실드)를 개발하고 있다. 실드는 적의 지대공 미사일이나 공대공 미사일로부터 아군 항공기를 보호하는 장비다. 레이저를 쏴 이들 미사일을 떨구겠다는 것이다.

이르면 2024년 실드의 성능을 검증할 수 있다고 한다.

뜨거운 레이저 무기 개발 경쟁

다른 나라들도 레이저 무기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중국은 지난해 소형전술차량 기반 이동식 레이저 무기를 선보였다. 중국의 레이저 기술 수준은 미국이 크게 우려할 정도로 많이 발전했다. 레이저의 출력은 30㎾급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레이저와 같은 직접 에너지 무기가 10~20년 안에 보편화하고, 30년 이후 전장을 지배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의 소형전술차량 기반 이동식 레이저 무기. 트위터 계정 @sugar_wsnbn

러시아의 고에너지 레이저 지향성 에너지 무기 체계가 2020년 잠깐 공개됐다. 최대 5㎞ 밖 표적을 파괴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독일의 방위사업체인 라인메탈은 고에너지 레이저(HEL)를 탑재한 스카이레인저(Sky Raner) 30을 개발했다. 이 체계는 차륜형이나 궤도형 차량에 통합할 수 있다. 또 30㎜ 기관포를 함께 달았기 때문에 레이저로 놓친 공중 표적을 기관포가 잡을 수 있다.

현재 레이저의 출력은 20㎾이며, 10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게 라인메탈의 설명이다.

나프탈리 베네트 전 이스라엘 총리(왼쪽)가 아이언돔을 살펴본 뒤 관계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

아이언돔(Iron Dome)으로 중동 게릴라의 소형 로켓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이스라엘은 레이저 기반의 아이언빔(Iron Beam)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 4월 아이언돔은 무인기를 요격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아이언돔은 7㎞ 안의 무인ㆍ박격포ㆍ로켓ㆍ대전차 미사일을 4~5초 안에 요격할 수 있다. 지난 2월 나프탈리 베네트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올해 내 아이언돔을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 보병은 레이저 소총으로 전투를

한국도 레이저 무기 개발에 열중이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2020년 20㎾ 출력의 레이저로 1㎞ 밖의 철판 유도탄 모형을 꿰뚫는 시연을 선보였다. 이 정도면 드론을 잡는 수준이다.

한화는 ADD와 함께 2025년까지 30㎾급의 레이저 대공무기 블럭-Ⅱ를 개발하고 있다. 한화는 미래 병사 체계의 하나로 보병 휴대용 레이저 소화기(소총)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한화가 연구 중인 보병 휴대용 레이저 소화기. 한화 유튜브 계정

레이저는 1회당 발사 비용이 값싸다. 1회 발사 비용은 700원 안팎이다. 또 적을 소리 없이 공격해 순식간에 파괴할 수 있으며, 탄환이 필요 없다.

그러나 단점도 많다. 원 개발비가 엄청나다. 동시 다목표 요격이 안 된다. 다수의 목표를 상대하려면 여러 개가 필요하다. 빛이기 때문에 구름ㆍ안개 등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최근엔 기술 발전으로 레이저의 위력에 영향을 주는 출력 문제는 차츰차츰 풀리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난제가 튀어나왔다. 발열 문제다.

 

레이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엄청난 열이 생긴다. 레이저 무기는 냉각 시스템이 중요하다. 고출력 레이저일수록 고성능 냉각 시스템이 필요하다.

2020년 5월 미국 해군은 포틀랜드함(LPD 27)에서 고에너지로 무인기를 격추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미 해군

고성능 냉각 시스템은 아무래도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레이저 무기의 소형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SF 영화 속 레이저 소총은 좀 더 기다려야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최현호씨는 “레이저 무기는 만능 무기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당분간 기존 화포나 미사일 형태 무기와 함께 사용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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