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윤석열 정부의 동시다발적 사정(司正)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검찰을 비롯해 경찰과 감사원 등 기존 사정기관은 물론이고 법무부, 국토교통부, 통일부와 같은 정부 각 부처까지 전 정권 관련 각종 의혹 파헤치기에 나서고 있다. 이전의 경우 정권교체 후 벌어진 사정작업이 주로 과거 정권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윤석열 정부의 사정작업은 문재인 정부는 물론이고 현 야당 유력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함께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과거와 현재 권력 모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또한 각 부처가 자발적으로 지난 정권에서의 과오를 반성문 쓰듯이 끄집어낸다는 점에서도 지난 정권과의 차별성이 엿보인다. 법무부나 경찰, 통일부 등이 각종 사건과 관련해 입장을 뒤집는 것은 사실 자기 얼굴에 침 뱉기나 다름없다. 하지만 기존 입장을 뒤집으면서까지 경쟁적으로 적폐청산에 나서고 있다. 이를 두고 야당에서는 ‘정치보복’이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특수부 검사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적 고려보다는 문제가 될 것이 나온다면 지나간 권력이든 살아있는 권력이든 원칙에 따라 한다는 입장을 과거부터 견지해왔다. 최근 사정작업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분위기다.
특수부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통상 이런 사정작업의 최종 종착역은 전직 대통령이 되는 것이 과거의 전례였는데 과연 어느 시점에 전 대통령의 이름이 흘러나오느냐가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전 부처가 사정작업에 동원
정권교체 이후 이뤄지고 있는 대표적인 사정·적폐청산 작업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서해 피격 사건이나 탈북어민 북송사건이다. 지난 정부에서 ‘문제없음’으로 결론났던 이 사건들이 국가정보원이나 법무부, 통일부, 경찰 등으로부터 지난 정권에서 공개하지 않았던 자료들이 공개되며 전 정권 인사들을 겨냥하고 있다. 이 두 사건으로 인해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었던 서훈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에 의해 고발됐다. ‘해수부 공무원 피격 사건’은 2020년 9월 연평도 해역에서 어업지도선 근무 중이던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대준씨가 실종된 이후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것이 골자다. 그런데 당시 해경과 국방부 등 정부는 이씨가 도박 빚과 이혼으로 처지를 비관하고 ‘자진월북’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도박 빚 때문에 바다 수십 킬로미터를 헤엄쳐 자진월북했다는 정부 발표에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지난 6월, 이 사건 수사를 주도했던 해양경찰청이 먼저 나서 자신들의 입장을 바꿨다. 해경은 “자진월북이라고 판단할 증거가 부족했다”면서 사과했다. 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TF(태스크포스)를 꾸려 이 사안을 즉각 파헤쳤다. 수장이 바뀐 국방부, 국정원, 통일부 등도 사건 규명에 합세했다. 당시 안보라인의 핵심 인사들이 제대로 사안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서둘러 ‘자진월북’으로 판단했다는 증언들이 나왔다. 박 전 원장은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북한군에 피살됐을 때 첩보 관련 보고서 등을 무단 삭제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은 2019년 11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한국 정부가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한 사건이다. 당시 한국 정부가 선원들을 강제로 북송할 당시, 서훈 전 국정원장이 합동조사를 조기에 종료시키거나 취소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돼 국정원에 의해 고발됐다. 통상 탈북민 합동조사는 최소 2주에서 수개월 이상 소요되는데 당시 조사는 3〜4일 만에 끝나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은 검찰로 넘어왔다. 박 전 원장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이희동 부장검사), 서 전 원장 사건은 공공수사3부(이준범 부장검사)에서 수사 중이다.
국토교통부가 문재인 전 대통령 사위와 관련해 여러 의혹이 나오고 있는 이스타항공에 대해 경찰 수사를 의뢰한 것도,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재직 시절 위법한 방식으로 ‘찍어내기’ 감찰과 징계를 당했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이 강제 수사에 착수한 것도 전 정권 사정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찍어내기’ 사건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면 친문재인 정권 검사로 분류됐던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과 박은정 검사도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0년 ‘검언유착’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법무부 감찰담당관실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당시 검사장)과 윤 대통령 부부의 통화 내역을 제공한 바 있다. 채널A와 유착을 했다는 의혹을 받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한 감찰을 진행하겠다는 명분이었다. 당시 법무부 감찰담당관실이 한 장관에 대한 감찰을 명분으로 자료를 받아낸 뒤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 및 징계청구 등의 근거로 자료를 활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은 이 사건을 고발한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에 대한 고발인 조사를 진행한 뒤 지난해 7월 사건을 각하하며 이 연구위원과 박 부장검사를 불기소 처분했다. 이후 서울고검이 지난 6월 사건을 다시 수사하라고 서울중앙지검에 돌려보내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자료가 법무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졌는지, 자료 제공에 위법성은 없었는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감사원 “지난 5년간 감사원 유명무실”
전 정권을 겨누고 있는 기관은 검찰뿐만이 아니다. 최근 감사원도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공직사회에서 벌어진 일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지난 6월 임명된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전 정권 5년 동안 공직사회 청렴·기강 등 가치가 죄다 망가진 수준”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을 정도다. 그는 최근 주간조선과 만난 자리에서 “사실상 지난 5년간 감사원의 역할이 유명무실했다”며 “정치적 의도 없이 감사원 본연의 역할을 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유 사무총장은 2020년 4월 감사원 공공기관감사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진행 중이던 월성원전 감사를 주도하다 좌천당한 바 있다.
감사원은 최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을 겨냥한 감사에 착수했다. 두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들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임기를 끝까지 채우겠다는 뜻을 밝혀 여권으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 위원장의 임기는 8월 말, 전 위원장은 내년 6월까지다. 감사원이 사실상 이 두 인사를 향해 칼을 빼든 것이다. 감사원은 지난 6월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감사에 착수한 데 이어, 지난 7월 28일에는 전현희 위원장의 ‘상습지각’ 등 복무기강 해이에 대해 특별감사에 착수했다. 이에 대해 전 위원장은 자신을 사퇴시키기 위한 ‘표적 감사’라고 반발하면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그동안 감사원은 방통위에 대해선 통상적으로 2년에서 5년 주기의 정기 감사를 진행해왔다. 감사원 측은 이번 감사 역시 주기적으로 예정된 감사라며 정치적 해석에 선을 그었지만, 정기 감사의 주기는 명확지 않고 필요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다. 방통위는 지난 2019년 감사를 받은 바 있다. 때마침 한상혁 위원장이 사퇴를 거부하고 있는 시점에 감사를 착수한 것이다. 두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사퇴를 거부했던 홍장표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지난 7월 초 “감사원이 이례적인 자료제출을 요구했다”며 사의를 표했다.
전 정권뿐만 아니라 대선 당시 윤 대통령과 맞붙었던 이재명 민주당 의원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도 진행 중이다. 이 의원은 8월에 있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선출이 유력한 야권의 현재권력이자 미래권력이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수원지검, 성남지방경찰청 등에서 이 의원 관련 사건 수사를 맡고 있다. 이 의원이 성남시장 재직 시절 특정 업체에 수천억원대 수익을 몰아줬다는 의혹을 받는 ‘성남 대장동 특혜 개발 사건’의 경우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에서 수사를 맡고 있는데, 최근 수사팀이 상당수 교체된 뒤 수사를 사실상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부 검사들까지 충원해서 수사를 할 정도로 검찰의 의지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의원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관련 사건은 수원지검에서 수사 중이다. 성남FC 후원금 관련 의혹은 경기남부경찰청이 맡고 있다. 감사원 역시 문재인 정권뿐만 아니라 사실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겨냥한 감사 결과도 최근 발표했다.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개발 사업 감사를 통해 유동규 당시 성남도시개발공사(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요청했다고 지난 7월 23일 밝혔다. 유 전 본부장이 백현동 개발 사업에서 직원들에게 “사업에서 손을 떼라”고 지시했고, 이로 인해 민간업체가 3000억원대 투자 이익을 독차지했다는 것이다.
야당 “국면전환용 보복수사”
야당에선 윤석열 정부의 취임 초기 국정 지지도가 20%대까지 주저앉자, 전 정권에 대한 사정 정국으로 국면 전환을 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검사 출신으로 과거 윤 대통령과 함께 근무한 적 있는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중순 “지금 서해공무원 피격사건 또 탈북어민 북송사건 이게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신호탄”이라며 대대적인 사정 정국이 펼쳐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의원은 그러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장동 사건, 성남 FC 후원금 사건,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월성원전 사건, 울산시장 선거 하명(수사) 개입 사건 등 전 정권과 관련된 사건들을 아마 일제히 (검찰 수사에) 들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권 도전을 선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지난 7월 20일 “민생보다는 정쟁에 집중하는 국민의힘이나 현 정부의 지향이 매우 안타깝고 아쉽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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