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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헌재로 달려간 검수완박... 정치의 진짜 주인은 국회 아닌 법원?

 

헌재로 달려간 검수완박... 정치의 진짜 주인은 국회 아닌 법원?

[주간조선]

김회권 기자
입력 2022.05.08 05:50
지난 4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제396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검수완박’ 법안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검찰청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수정안이 통과된 후 국민의힘 의원들이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그간 정부의 마지막 국무회의가 이렇게 주목받았던 적은 없었다. 지난 5월 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이 자리에서는 국회에서 넘어온 두 개의 법안을 심의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공포했다. ‘검찰청법 개정안’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관보게재 등 실무절차를 거친 뒤 공식 공포 4개월이 지나면 시행된다. 다만 그 이전에 법의 심판대에 오를 수도 있다.

검수완박 정국은 이렇게 정치의 틀을 벗어났다. 대신 이제는 사법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국민의힘은 이미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대검찰청은 국민의힘과 별도로 위헌적 요소를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교수단체는 문제의 법들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3일, 바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미 70년을 훌쩍 넘은 형사사법체계의 운명은 이제 헌재 손에 달린 셈이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라고 불러왔다. 국회가 일단 통과시킨 법안이지만 입법의 완결성을 부정하고 그 결정을 헌재로 미뤘다는 의미다. 헌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또다시 정치적 무대 전면에 등장하게 됐다.

위헌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입법절차의 정당성이다. 법사위 민주당 소속이던 민형배 의원의 ‘위장탈당’이 국민의힘 안건조정위원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는 게 핵심이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 의결의 정족수가 잘못된 것이고 구성상의 하자로 인해 안건조정위 의결의 효력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쟁점은 법률위헌성이다. 국민의힘과 검찰의 주장은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검사의 권한이 두 개의 개정법안으로 침해당했다고 본다. 대검 관계자는 “‘검수완박법’이 검사를 수사의 주체로 인정하며 헌법이 부여한 역할과 기능, 지위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며 침해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권한쟁의심판은 헌재 재판관 전원(9명)이 심리하며 이 중 재판관 과반(5명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인용·기각·각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다만 과거의 권한쟁의심판을 짚어보면 헌재는 입법 절차에 하자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해당 법률이 위헌이라거나 법률안 가결이 무효라는 판단을 내리진 않았다.

‘정치의 사법화’는 국가의 주요 정책 결정을 정치가 아닌 사법의 과정이 작동해 결정하는 걸 말한다. 정치와 행정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사법으로 권력이 이동하는 걸 뜻하기도 했다. 다만 헌재 출신들은 ‘권력의 이동’과 같은 해석을 경계한다. 익명을 요구한 헌재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분쟁을 해결하는 게 법 아닌가. 정치의 사법화 그 자체를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헌재에서도 이번 법안들에 대한 심리에 이미 들어간 것으로 들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사법이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 그 범위나 권한의 한계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정치도 기본적으로 법의 틀내에서 이뤄지는 일이고 이런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인 일이다. 정치의 사법화라고 하면 헌재의 권력화로 오인할 수 있겠지만 판사들은 선비 기질이 강한 사람들이라 진영논리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런 사안이 훨씬 부담스러울 수 있다.”

헌재는 1988년 민주화운동이 만들어낸 조직이다. 군사독재정권 때의 사법부는 부당한 공권력으로부터 시민의 기본권을 지켜내지 못했는데 이에 대해 반성하고 복기하면서 탄생한 게 헌재다. 박정희 정권 때 헌재의 역할을 맡고 있던 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린 경우는 단 한 건에 불과했는데, 이런 판결을 내린 대법관 9명은 이듬해 법관 재임용에서 모두 탈락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반면 1988년 출범한 헌재가 20개 법률에 위헌 결정을 내리는 데는 4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여야 모두가 호출한 헌법재판소

이런 기능 탓에 헌재는 만들어지고 난 뒤부터 기존 정치권력의 견제를 받았다. 특히 중요한 정치적 쟁점에 관해 결정을 내리고 나면 정치권의 압력설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 ‘정치’와 거리를 두기 위해 헌재가 몸을 사릴 때도 있었다. 1992년 노태우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연기한 것에 대해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했다”며 제기된 위헌 확인 심판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심리 자체를 무기한 연기했다. 당시 헌재의 연기 결정에 반대한 야당 추천 재판관은 자진 사퇴했다. 이렇게 미루던 위헌 심판은 1994년 8월에 각하하는데 이유는 이랬다. “새로운 선거법이 발효돼 심판에 이익과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국회가 관련법을 고칠 때까지 미뤄두면서 어려운 상황을 비껴간 경우다.

헌재가 ‘정치의 사법화’ 전면에 등장한 건 2000년대 들어서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기각, ‘관습헌법’으로 유명했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구 인구비율 헌법불합치, 통합진보당 해산 등 정치적으로 굵직한 이슈에 대해 헌재가 결정을 내리고 매조지으며 헌재는 입법·행정·사법부에 이은 권력의 제4부로 주목받았다. 헌재의 판단은 비단 정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호주제나 간통죄처럼 국민의 삶과 가치관을 결정하는 문제도 헌법재판관의 손을 거쳤다. 정치·사회적 이슈는 헌재로 통했고 그래서 ‘만사법통’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러운 시대가 된 셈이다.

 

‘법대로 하자’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히 쓰인다. 법이 공정하게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종 현안을 법에만 기대 해결하려는 경향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공통 견해다. ‘사법지배주의’라는 단어가 먹힐 정도의 세상이 된다면 사법권력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본질을 뒤흔들 수 있어서다.

하지만 정치의 사법화는 사법부의 적극적인 의지로 이루어진다기보다 다른 기관들이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없거나 해결을 꺼리는 문제가 법원으로 넘어오면서 생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건 문제다. 그리고 그렇게 문제를 넘기는 대표적인 곳이 국회다.

이번 검수완박 정국에서도 정치권은 일찌감치 헌재를 호출하고 거기에 기대려 했다. 국민의힘은 헌재 판단이 필수적이라고 일찌감치 판단했고 검수완박 법안들의 위헌적 요소에 대해 외부 자문을 미리 구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 관계자는 “헌재로 간 이전의 다른 사건들과는 그 중요도가 다르다. 개별헌법기관인 의원의 권한을 사실상 박탈하는 방법으로 법안이 심의됐고 통과됐기 때문에 엄중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라고 보고 있고 헌재에서도 우리와 같은 시각으로 볼 거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역시 헌재의 등장을 당연한 수순으로 생각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 심사 과정에서 검찰이 검수완박 법안을 위헌이라고 지적하자 민주당 쪽에서 나온 말은 이랬다. “헌재로 가서 판단 받으시라.” 민주당 역시 헌재를 불러냈다.

헌재는 전통적으로 입법부의 권한을 판단하는 걸 껄끄러워한다. 입헌민주주의의 핵심이 국회인데 그 권한을 침해할 수 있다는 건 꽤나 정치적 부담을 져야 하는 일이다. 이번 검수완박에 있어서도 헌재는 관련 발언을 잘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헌재 관계자는 “다만 과거의 건을 놓고 볼 때 헌재는 국회를 존중해 왔고 가급적 그런 판단을 내려왔다”고 말했다. “2016년에 국회선진화법을 둘러싸고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을 헌재가 각하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헌재 판단은 국회의 내부 문제에 헌재가 개입하면 국회가 정치 행위로 해결책을 찾기보다 사법적 수단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입법부의 일을 스스로 결자해지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흐름에서도 정치의 사법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는 점이다. 학계에서 정치의 사법화는 연구 대상이다. 그리고 가속화되는 이유 중 하나로 제시하는 게 ‘정치권력의 파편화’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적 의사의 결집 정도와 반비례한다는 건데, 정치적 의사가 정당에 집약되지 못하고 흩어질수록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본다. 그만큼 더 이상 시민사회의 요구를 정당이 받들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 문제를 찾고 있다.

지난 2월 24일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2월 심판사건 선고에 앞서 대기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교착과 파행 많을수록 사법부로 달려가

‘사법권의 세계 확장’이라는 책을 펴낸 테이트 C 닐 교수는 ‘의회 내에서 정당 간의 교착과 파행’이 정치의 사법화를 초래한다고 봤다. 그는 여당이 의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거나 정부가 여당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일 때 이런 정치의 사법화를 야기한다고 봤다. 만약 의회 내에서 교착상태가 됐을 경우 야당들이 사법부를 이용해 정부와 다수당에 도전한다고 봤다.

이런 논리는 국내에서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정당이 제 기능을 못해서 문제라고 한다면 정당의 기능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헌재의 개입이 문제라고 해서 헌재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풀 수도 있지만 그렇게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건 이 문제가 보다 구조적이기 때문이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한국에서 분점정부와 정치의 사법화 현상의 상관성’이라는 논문을 내며 이런 문제를 연구해왔다. 채 교수는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자신의 상대 당들과 쉽게 대화와 토론, 합의를 할 수 없게끔 방해하는 사회구조적인 시대 상황의 문제에 봉착했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변화된 시대 상황으로 전통적인 정당의 기능은 이미 타격을 받았고 대화와 타협에 기반한 해결도 어려워졌다고 봤다. 시간을 거꾸로 되감을 수는 없으니 정당 간의 교착과 파행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고 이런 가운데 생겨난 공백을 헌재나 사법부에 떠넘기려는 현상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선거로 권력을 위임받은 여당과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합법이나 불법의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건 대의민주제에 어긋나는 일이다. 하지만 거대 여당이 진영 논리에 매몰돼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지금처럼 극한 갈등이 일어나게 되고 심판은 결국 법원이 맡게 된다. 차라리 중립이라고 보이는 쪽에서 갈 길을 결정해주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더라도 이상치 않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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