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대로면 심각한 상황 온다"…삼성·SK, 서울대서 '혈투'
입력 2022.05.05 17:28 수정 2022.05.05 17:42 지면 A1
서울대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 경쟁
반도체 인력 10년간 3만명 부족
반도체 구인난에
학비 지원·채용 내걸고
전문인력 입도선매 나서
반도체 인력 10년간 3만명 부족
반도체 구인난에
학비 지원·채용 내걸고
전문인력 입도선매 나서
사진=한경DB
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서울대에 내년부터 80명 정원의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해 5년간 공동 운영하자고 최근 제안했다. 학비는 물론 생활비로 쓸 수 있는 장학금을 지원하고 졸업 후 삼성전자 채용도 보장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앞서 SK하이닉스 역시 서울대에 반도체 계약학과 공동 운영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계약학과는 통상 대학과 기업이 1 대 1 계약을 하고 5년간 한시 운영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 같은 경쟁을 벌이게 된 것은 반도체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문 인력 확충을 위해 고민 끝에 마련한 우회 방안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과 연구소 등 반도체업계는 연간 1500여 명의 신규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반도체 관련 학과 졸업생은 연 650여 명으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당분간 반도체 계약학과를 주요 대학에 신설해 ‘비상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임시방편’인 반도체 계약학과 운영 여건마저 녹록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작년에도 서울대에 반도체 계약학과 운영을 비공식 타진한 적이 있다. 당시 서울대 교수와 재학생들은 “학문을 추구해야 하는 대학이 기술 인력 양성소가 되면 안 된다”고 반대해 무산된 바 있다.
반도체 인력 10년간 3만명 부족한데…대학서 배출 年 650명뿐
설비투자 하면 뭐하나…사람 없어 공장 못돌릴 판
3만 명. 올해부터 2031년까지 10년간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내 반도체 인력 규모다. 반도체업계에선 “이대로는 심각한 인력난에 빠지고 말 것”이라고 아우성이다. 글로벌 반도체 설비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인력난이 심화하는 분위기다. “10년 뒤가 안 보인다”는 우려도 나온다. 반도체 인력을 충분히 양성할 범정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설비투자 하면 뭐하나…사람 없어 공장 못돌릴 판
기존 국내 반도체 관련 학과 졸업생 약 650명(연간 기준) 중 현장에 바로 투입 가능한 석·박사급 전문 인력은 150여 명에 그치는 수준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학부부터 박사까지 전액 학비·장학금 지원, 채용 보장’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5년간 반도체 계약학과 운영에 나선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계약학과 전공생은 기업이 참여한 교과과정, 현장 프로젝트 실습 등을 거쳐 전문성을 쌓게 된다”며 “4~5년 뒤엔 졸업 후 즉시 경쟁력을 발휘할 인력이 다수 배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현재 운영에 참여한 반도체 계약학과는 총 7곳이다. 지난해 3곳에서 올해 4곳 추가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세대(정원 50명), 성균관대(70명)에 이어 올해 KAIST(100명), 포스텍(40명)과 협력해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했다. 총 260명 규모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고려대(30명)에 이어 올해 서강대(40명), 한양대(30명)와 반도체 계약학과를 개설했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로는 중장기 전문 인력 확보 및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게 이들 기업의 공통된 반응이다.
두 기업은 내년 서울대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에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국가 산업 경쟁력 차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서울대 교수와 재학생들을 설득 중이다. 급기야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업계 현실을 호소하며 서울대 측에 건의하고 나섰다. 어디든 꼭 한 곳엔 서울대에서 우수 인력을 확보할 기회를 달라는 제안이다.
반도체학과 정원 확대 관건
반도체 계약학과 운영은 당장 급한 불을 끄는 정도라고 업계는 진단했다. 인력난을 궁극적으로 해소하려면 국가적 차원에서 중장기 전략을 짜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구개발(R&D),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늘리거나 인프라를 확충해줘도 관련 인력이 부족하면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업계는 수도권 대학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 확대를 숙원으로 꼽고 있다. 현행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수도권 소재 대학은 ‘인구 집중 유발시설’로 분류돼 정원 확대가 불가능하다. 국가 산업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이 규제를 풀어 반도체 관련 학과엔 예외를 두고, 인력 양성 토대를 마련해달라는 게 업계 요구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 3일 발표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일부에 ‘반도체 학과 정원 확대 검토’가 포함됐다. 업계는 이 과제가 ‘검토’에만 그치지 않고 이른 시일 내 수도권 대학 정원을 늘려줄 것을 건의할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해 5월 ‘K반도체 전략’의 주요 내용으로 반도체 학과 정원을 늘리는 계획을 검토했다가 접었다. 국가 균형 발전 명분에 어긋난다는 게 주된 이유다.
반도체 수요 폭발에 인력난 심화
반도체 인력난은 코로나19 이후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발생했다. 삼성전자와 인텔, TSMC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이 경쟁적으로 시설 투자 등을 늘렸고, 관련 기술 인재 필요성이 커졌다. 미국도 현재 반도체 공장 증설 상황을 감안하면 2025년까지 관련 인력 7만~9만 명을 추가 확보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올해 설비 투자를 늘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 30조원가량을 투자한 경기 평택 3공장 완공을 앞두고 있다. 삼성전자가 20조원을 투자하는 미국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도 올 상반기 착공한다. SK하이닉스는 120조원을 투입해 연내 경기 용인 반도체 생산기지를 구축할 예정이다. 두 곳 모두 반도체 인력 확보가 시급하다는 전언이다. 국내 업계에선 “경쟁국들은 반도체 인력 확보를 중요 과제로 삼아 양성 토대를 마련하는 데 비해 한국 정부는 무심하다”고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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