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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무대

“헌정 질서 파괴한 검수완박 강행… 국민투표 이유 넘친다”

 

“헌정 질서 파괴한 검수완박 강행… 국민투표 이유 넘친다”

[양은경이 만난 사람]
‘문재인 대선 캠프’서 활동했던 헌법학자 신평 변호사

입력 2022.05.02 03:00
 
민주당의 검수완박 추진을 비판해 온 신평 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변호사)이 지난달 30일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진정한 사법 개혁은 ‘공정한 수사와 공정한 재판’”이라며 “경찰에 권한만 몰아 주는 ‘검수완박’은 그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태경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중 하나인 검찰청법 개정안을 국민의힘의 거센 항의 속에 통과시켰다. 오는 3일에는 형사소송법도 처리할 예정이다.

이는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을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서 부패·경제범죄로 제한하고 검사의 수사·기소권을 완전 분리하며 경찰 송치 사건에 대한 검찰의 보완 수사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경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고발인은 이의 제기를 못 하는 조항도 들어간다고 한다.

이로써 지난 74년간 유지돼 온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이 공청회 한번 없이 하루아침에 바뀌게 됐다. 검찰뿐만 아니라 대한변협, 법학단체, 중도·진보 성향 변호사들도 ‘검수완박’이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법안 처리 과정은 위헌성으로 얼룩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헌재 권한쟁의심판 청구, 국민투표 부의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신평(66) 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변호사)도 그들 중 한 명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만난 신 변호사는 그날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청법 개정안이 처리되는 과정을 봤다면서 “참담하더라. 어떻게 이런 일이 오늘의 한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신 변호사는 “‘검수완박’은 경제적 약자의 기본권 침해는 물론 입법 과정에서 헌정 질서의 몰락을 보여 주었다”며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에 해당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대상”이라고 했다. 판사 출신 헌법학자인 신 변호사는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 캠프에서 ‘공익제보 지원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민형배 위장 탈당은 국회 선진화법 유린

―법안 처리의 가장 큰 절차적 문제점은 무엇인가.

“민형배 의원을 위장 탈당시켜 무소속으로 만든 뒤 법사위 안건조정위에 (야당 몫으로) 투입함으로써 최장 90일까지 법사위 안건조정위를 거치게 돼 있는 국회선진화법 규정을 잠탈(潛脫·교묘히 빠져나감)했다. 민 의원 위장 탈당은 진정한 탈당 의사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닌 ‘비진의(非眞意) 의사 표시’로서 민법 총칙에 따르면 무효다. 그에 기반해 안건조정위가 성립된 것은 대단히 중요한 흠결이다.”

―국민의힘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고 가처분도 냈다.

“가처분은 9명의 재판관이 단기간에 결정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이미 법안이 부의돼 실효성도 없다. 그러나 권한쟁의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 위장 탈당은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를 철저히 유린해 위법·위헌성이 크다. 그로 인해 야당 의원들의 헌법상 심의·표결권이 침해된 것은 물론 적법 절차도 침해됐다. ‘적법 절차 원칙’은 헌법의 주요 가치로서 법원이든 헌재든 엄격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에서 헌재 재판관 다수가 자기들이 임명한 사람이라고 결과를 낙관할지 모르지만, 결국 재판관들이 양심의 보루가 될 것으로 믿는다.

법안 내용에는 문제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제일 큰 문제는 작년 1월부터 시작된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힘없는 서민들이 제기한 사건들이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고 하면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이들의 고통을 좀 더 헤아리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을 보완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일말의 고려는 없이 (경찰 사건에 대한) 검찰의 보완 수사권을 더 제한해 혼란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국민 피해가 첫째 문제라는 건가.

“소위 ‘진보’라고 하는 현 여당이 돈 없고 ‘빽’ 없는 서민들이 겪는 피해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저 같은 경우 진보 쪽을 아는 입장에서 어떻게 저런 식으로 행동할까 싶다. 약자의 기본권을 외면한 것이다. 검찰은 3개월 단위로 미제 관리를 하지만 경찰은 그런 시스템조차도 없다. 그러니까 사건 처리가 기약 없이 미뤄진다. 또 공정위, 선관위, 시민단체 고발 사건을 경찰이 불송치(무혐의)하면 고발인은 이의 제기를 못 하게 막아놨다. 이 기관들이 억울한 사람을 대신해 고발하는 경우도 많다. ‘고발인 이의신청권’ 박탈의 피해도 결국 서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검찰 공화국’을 막겠다는데 앞으로 ‘경찰 제국’이 나올 수 있다.”

/이태경 기자

앞으로 ‘경찰 제국’이 나올 수 있어

―'경찰 제국’? 과도한 우려 아닌가.

“이용구 전 차관의 변호사 시절 택시 기사 폭행 사건에서 잘 나타나듯 경찰은 판례를 엉터리로 해석하고 사건 발생 시점을 의도적으로 바꾸었다. 더 무서운 것은 경찰과 지방 토호(土豪) 세력과의 유착이다. 지방에 가면 계(契)나 위원회 같은 모임이 있고 토호들이 거기서 서로의 힘을 빌려주고 빌리고 하면서 지역 이권을 독식해 나간다. 검찰과 비교할 때 경찰은 이들에 견제력이 훨씬 약하다고 봐야 한다. ‘검수완박’은 그런 견제 장치를 허물어 버렸다. 진정한 사법 개혁은 ‘공정한 수사, 공정한 재판’이다. 그런데 경찰에 권한을 몰아주는 것은 ‘공정한 수사’에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다.”

―검찰권을 더 제한해야 할 필요는 없는가.

“저는 평생을 검찰과 싸워 온 사람이다. 형사 단독 판사를 할 때 민주화 운동, 노동 운동 하다 들어온 사람들 다 석방했다. 그러면서 저에 대한 검찰의 냉대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여러 사건에서 검찰권 남용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경찰의 흠결을 덮고 검찰의 잘못은 침소봉대해 검찰 권력을 빼앗아 경찰에 준다? 이건 말이 안 된다.”

 

―민주당은 왜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는 것일까.

“조국 전 장관 수사 이후 검찰의 ‘권력 수사’를 막을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처음부터 공정한 수사나 재판에는 관심도 없었고, 권력 수사를 막을 목적으로 ‘검찰 개혁’이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검수완박’도 그 연장선이다.”

―검찰의 선거 범죄 수사권도 박탈했다.

“선거 당사자인 국회의원이 그런 내용이 포함된 법안을 처리한 것은 이해 상충에 해당한다. 자기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사안에는 리큐즈(recuse, 기피 또는 회피)하는 게 적법 절차의 기본이다. 이번 6월 지방선거는 경과 규정에 따라 검찰이 수사할 수 있게 해놓고 국회의원들은 빠져나갔다.”

―장차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어 6대 범죄를 수사하게 한다는데.

“수사기관을 나눠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 경찰, 공수처, 중수청, 검찰의 관할이 어떻게 되고 어디에서 수사해야 할지 막연해지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개인적으로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하던 공수처의 설립 취지에 공감했었다. 판검사 수사를 통해 사법 개혁의 주요한 축인 ‘사법의 책임’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걸 견제할 기관이 공수처였는데 이런 식으로 전락해서 너무 아쉽다. 공수처는 판검사에 대한 고발 사건 대부분을 검찰에 보내고 있고 기소한 건은 한 건에 불과하다.”

총리가 법안에 서명하지 말아야

―문재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까?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바로 공포를 하려고 할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올바른 판단을 해 주기를 바라지만 지금까지 나온 (문 대통령의) 말로 보면 기대 난망 아닌가.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헌법 82조는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副署·대통령의 서명에 이어 서명함)한다’고 돼 있다. 부서한 총리와 국무위원들도 법안에 책임을 져야 한다. ‘검수완박’ 법안에 부서하면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이고 김부겸 총리가 부서를 거부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도 법안을 공포할 수가 없다.”

―윤석열 당선인도 ‘검수완박’에 대한 생각을 직접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사실 윤 당선인 입장에서도 검찰과 경찰 중 어느 쪽이 다루기 쉽겠나. 권성동 의원이 ‘나도 옛날에 검찰에 당했다’고 했다는데 경찰에 넘어가면 그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이다.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빠져나갈 수 있는 그물코가 넓어지는 셈이다. 그렇지만 정치는 대의명분 아닌가. 여론에 따를 수밖에 없고 윤 당선인 측에서 ‘국민투표 검토’가 나온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윤 당선인 측은 지난달 27일 ‘검수완박’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헌법 72조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돼 있고 대통령도 발의권자 중 하나다. ‘검수완박’이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이냐를 놓고 의견이갈리고 있다. 2014년 재외국민의 국민투표권 행사를 제한하는 내용의 국민투표법 일부 조항이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효력을 상실한 이후 해당 조항이 정비되지 않아 현 상태로 국민투표를 시행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검수완박’을 국민투표 대상이라 볼 수 있나.

“검수완박으로 인한 심각한 국민 기본권 침해, 입법 과정에서 저질러진 헌정 질서의 파괴는 국가의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시켰다. 따라서 검수완박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을 묵과하면 나라의 존립 근거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검수완박’에 대한 국민투표 가능성을 여러 각도에서 검토한 신평 변호사의 페이스북. /페이스북 캡처

―선관위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국민투표법이 개정되지 않아 못한다고 하는데.

“세 가지로 반박 가능하다. 첫째, 헌법은 최상위 법률이므로 하위 법규범의 미비로 무력화될 수는 없다. 둘째, 하나의 조항이 위헌이라고 해서 법률 전체가 위헌이 되는 것은 아니고 재외국민 투표 절차가 상세히 규정된 공직선거법을 준용해 해결할 수 있다. 셋째, 헌법불합치 결정 후 7년 이상 지나도록 개선 입법을 못한 것은 국회의 태만 혹은 무능에 기인한 것이다. 이를 빌미로 위헌적 상태를 바로잡고자 하는 (대통령의) 헌법상 국민투표 부의권을 무력화할 수는 없다.

―국민투표를 통해 어떤 식으로 이뤄져야 하나.

“공포된 법률 자체를 취소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다. 일단 ‘검수완박’ 형태의 국가 형사사법제도 전면 개편이 타당한지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게 맞는다. 찬성 의견이 많다면 법률안에 승복하고 그 반대라면 국회가 법 개정으로 검수완박 법률을 폐지하는 헌법상 의무를 지는 것이다. 민주당 강경파는 다른 의원들을 겁박하듯 검수완박을 끌고 나갔고 공직자로서 제일 하지 말아야 할 이해 상충 행위를 저질렀다. 헌재는 (권한쟁의심판에서) 그 위헌성을 확인해 줘야 한다.”

☞신 평

1956년 대구 출생으로 1974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1981년 2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3년 사법연수원을 13기로 수료한 이후 인천지법·대구지법 판사를 거쳤다. 1993년 법원 내 금품수수 비리를 지적했다가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한 후 변호사 개업을 했다. 1998년 변호사를 그만둔 뒤 대구가톨릭대에 이어 경북대 교수를 지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검찰권 제한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에 대해선 비판적 입장이다. 한국헌법학회장, 사법개혁국민연대 상임대표, 앰네스티 법률가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