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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뜨자, 전성시대 저무는 ‘검찰의 역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뜨자, 전성시대 저무는 ‘검찰의 역설’

등록 :2022-05-01 07:29수정 :2022-05-01 15:07

성한용 기자 사진
 
성한용 기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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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26
‘30년 묵은 과제’ 검찰개혁 당위론

정치권력보다 더 막강해진 검찰
청부-표적-별건수사 등 ‘흑역사’
“찌르되 비틀지 마라” 조언 무시
홍준표-안철수-유승민도 “개혁”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4월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새 정부 내각 2차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공동취재사진
인터넷 포털 검색창에 검찰이라는 단어를 치면 개혁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습니다. 검찰개혁은 대한민국 30년 숙원입니다.역사가 있습니다.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시절 검찰의 위상은 별 볼 일 없었습니다. 중앙정보부, 안기부, 보안사, 기무사, 경찰보다 약했습니다. 법치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1987년 6월 항쟁 이후 직선제로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은 검찰을 통치기구의 중심으로 세웠습니다. 검찰은 공안정국을 조성했고 ‘범죄와의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 안기부장이 검사 출신이었습니다.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이 들끓었습니다.그 이후 들어선 정권마다 검찰개혁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대통령과 대통령 가족, 대통령 측근들의 부패라는 약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정권 전반기에는 전 정권의 비리를 파헤치고 정권 후반기에는 현 정권의 비리를 파헤쳤습니다. 정권 타고 넘기 신공으로 검찰개혁의 칼날을 피해갔습니다.시간이 지날수록 검찰 권력이 정치권력보다 더 막강해졌습니다. 검찰 권력과 정치권력의 대결 차원에서 보면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대통령의 등장은 검찰 권력이 정치권력을 마침내 집어삼킨 꼴입니다.
검찰개혁, 역설의 역설
그러나 세상은 때때로 역설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은 검찰공화국에 대한 정치인들의 우려를 자극했고 검찰개혁 일정을 오히려 앞당기는 촉진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정치권력과의 맞대결에서 화려하게 승리한 바로 그 순간 검찰의 전성시대가 저물기 시작한 것입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입니다.검찰청법 개정안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것 같습니다. 법안은 앞으로 국무회의 의결 및 공포, 헌법재판소 권한쟁의 심판,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추가 입법 등 여러 고비를 넘어야 할 것입니다. 검찰개혁의 시동은 더불어민주당이 걸었지만, 검찰개혁의 완성은 결국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의원들의 손에 달렸습니다.민주당이 검찰개혁을 하필이면 대선 패배 직후에 밀어붙이는 것은 물론 잘못입니다. 대선에서 이겼으면 검찰개혁을 안 했을 것입니다. 소수 정당을 위해 만든 안건조정위원회 제도를 악용한 것도 잘못입니다. 그러나 국회의장과 양당 원내대표가 합의안을 만들고 양당 의원총회에서 추인하면서 그런 절차적 하자는 사라졌다고 봐야 합니다.검찰개혁은 언젠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윤석열 당선자와 국민의힘도 검찰개혁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국회 후속 법안 마련에 협조해야 한다고 봅니다. 윤석열 당선자의 새 대통령 집무실 마련이 국민적 합의 없이 이뤄졌지만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검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검찰이 수사하지 않으면 범죄자를 제대로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국민이 피해를 본다고 합니다. 사실일까요? 일정 부분 사실일 것입니다. 모든 개혁에는 부작용이 따릅니다. 이해관계 집단의 조직적 저항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그러나 부작용과 저항을 감수하면서도 꼭 해야 하는 개혁이 있습니다. 개혁의 당위성이 워낙 크기 때문입니다. 검찰개혁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검찰개혁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보완하면 됩니다. 국가 전체의 반부패 대응 역량이 떨어진다면 경찰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수사 역량을 강화하면 됩니다.문재인 대통령과 가족, 측근들, 민주당의 이재명 고문과 국회의원들에 대한 수사는 꼭 검찰이 해야 하나요?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경찰, 중수청이 수사한 뒤 검찰이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보완수사하고, 기소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기소하면 됩니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검찰개혁의 당위성은 수십년 동안 검찰이 스스로 쌓은 흑역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김대중 자서전에 1989년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에 대한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8월3일, 공안검찰은 나를 구인하겠다고 했다.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야당 총재에 대한 구인 작전이었다. 여의도 사무실에서 강제로 끌려 나왔다. 많은 시민과 당원들이 울부짖으며 구인을 막으려 했다.”“나에게 씌워진 혐의라는 것은 고작 불고지죄였다. 내가 서 의원의 북한 방문 사실을 2개월 전에 알고 있으면서도 은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훗날 서 의원이 법정에서 ‘고문에 의해 자백했을 뿐 사실이 아니다’고 해서 이마저도 깨져 버렸다.”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뒤 1998년 4월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은 뒤 “과거 검찰은 권력의 지배를 받고 권력의 목적에 따라 표적 수사를 많이 했다. 나도 당해봐서 안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선다”고 당부했습니다. 대검찰청에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휘호를 내렸습니다. 휘호는 전국 검찰청사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바로 서지 않았습니다.
서울중앙지검 현관에 걸린 ‘검사 선서' 액자.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권한 독점​이 만든 흑역사
노무현 자서전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검찰개혁의 두 번째 과제는 검찰권 행사에 대한 민주적 통제였다. 사실 검찰은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는 권력이다. 기소독점권을 가지고 있어서 기소권을 부당하게 행사하거나 행사하지 않을 위험이 있다. 검찰의 과거사를 보면 그런 일들이 무수히 많았다.”“검찰은 권위주의 시대 인권 탄압에도 앞장섰다. 수사기관이 무고한 사람을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서 자백을 받아 낸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자백을 근거로 아무 증거도 없이 간첩이나 이적단체로 기소한 사건이 부지기수였다.”이명박 정부에서 검찰은 권력의 주구로 되돌아갔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무리하게 수사했습니다. 혐의를 생중계하듯 언론에 알렸습니다. 비극이 벌어졌습니다.그 정도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국방송>(KBS)이 법인세 취소 소송에서 법원의 조정에 따라 국세청과 합의했는데 정연주 사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을 보도한 <문화방송>(MBC) ‘피디수첩’ 제작진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법원에서 무죄가 나왔습니다.검찰은 정권 청부수사 또는 검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표적수사에 몰두했습니다. 검찰의 무기는 먼지털기 수사와 별건 수사였습니다. 수사권과 기소권 독점에서 나오는 능력입니다.특수부 검사의 전설이었던 심재륜 전 고검장이 검찰의 권한 남용을 경계하기 위해 ‘수사 10결’을 남겼습니다. 첫째가 “칼은 찌르되 비틀지는 마라”였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칼로 여기저기 찌르는 먼지털기 수사, 칼을 찌르고 비트는 별건 수사를 일삼았습니다.여러분은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4월22일 박병석 국회의장 중재안에 왜 합의하고 추인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내놓고 말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내심으로는 검찰개혁에 찬성했기 때문일 것입니다.국민의힘 대선주자급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홍준표·안철수·유승민 후보의 공약집에 검찰개혁 방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검찰과 경찰은 동등한 수사기관으로 인정. 상호 감시 체계화. 개헌을 통해 경찰에 독자적 영장 청구권 부여.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검찰총장 임명 요건 강화. 국회 동의 필요. 자체 승진 금지. 외부인사 영입.”(홍준표)“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검찰총장 국회 임명동의제. 국민 배심원제 도입. 검경수사권 조정.”(안철수)“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여 수사는 제3의 기관인 수사청이 담당. 수사청은 검사(수사검사와 검찰 수사관)와 수사경찰로 구성.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유승민)이 가운데 홍준표·유승민 두 사람은 지금도 생각이 별로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홍준표 의원은 지난 4월25일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습니다.“검찰은 공소제기와 유지만 하고 공수처, 검경수사권 모두 폐지하고 한국형 에프비아이(FBI)로 독립된 국가수사국을 설치해 국가수사국에서만 모든 수사를 담당하게 하는 수사체계 개편을 하면 될 것을…”
스스로는 깨지 못한 ‘카르텔’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해 10월 민주당에 대장동 특검과 국정조사를 받으라고 촉구하며 이렇게 썼습니다.“검찰도 정신 차려야 합니다.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정치권에나 기웃거리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눈치나 보고, 퇴임하면 돈 벌 생각이나 하고. 검찰개혁 요구가 끊이지 않는 것은 검찰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돈과 권력만 좇는 공고한 검찰 부패 카르텔은 스스로 절대 깰 수 없습니다. 검찰과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유승민이 처절하게 검찰 카르텔을 깨부수겠습니다.”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이번 대선에 다시 나서면서 “경찰에는 수사권을, 검찰에는 수사지휘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수사-기소권을 분리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그런데 최근 여야 합의안에 대해서는 “정치인들이 스스로 정치인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받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해 상충 아니겠나”라고 했습니다. 정치인 수사, 공수처·경찰·중수청이 하면 됩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얼마 전 별세한 소설가 이외수씨가 1982년 발표한 <칼>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칼에 천착했던 주인공이 광기에 휩싸여 신검(神劍)을 만들었지만 결국 그 칼에 자신의 목숨을 잃는다는 내용입니다. 저는 우리나라 검찰이 바로 이 무서운 칼을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피에 굶주렸기 때문입니다.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